누구 말을 믿어야 하지?
평소 치마를 입지 않는 딸이 주말에 외할머니와 함께 마트에서 노란색 원피스를 샀다.
월요일 아침, 딸은 일어나자마자 옷장을 열고 외할머니께서 사주신 원피스를 꺼냈다.
유치원에 입학하고 처음으로 치마를 입고 간 딸. 치마 입은 모습을 처음 본 선생님과 친구들의 반응이 좋았는지 그다음 날도 딸은 치마를 입었다. 딸의 행동이 마냥 신기했던 나는 딸에게 물어보았다.
“딸아, 오늘도 노란 원피스 입고 갈 거야?”
딸은 마트에서 장난감을 고르는 아이처럼 신나는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응! 치마 입을 거야.”
그동안 치마를 입고 싶다는 표현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던 딸의 변화가 궁금해 질문을 이어갔다.
“요즘 갑자기 왜 치마만 입어?”
순간 볼이 분홍빛으로 물든 딸이 옅은 미소를 보이며 이야기했다.
“선생님이 나 예쁘대...”
선생님과 친구들이 예쁘다고 한 말이 딸에겐 자존감을 상승시켜 주는 계기이자 치마를 사랑하게 된 계기가 되었나 보다.
며칠 후 아침, 유치원에 등원하기 위해 일찍 일어난 딸에게 오늘도 당연히 치마를 입고 갈 거라는 생각으로 물어보았다.
“딸 오늘도 원피스 입고 갈 거지?”
갑자기 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지고 양팔로 ‘엑스’를 만들며 대답했다.
“아니! 절대 입지 않을 거야.”
‘절대’라는 표현을 쓰는 딸의 모습을 보고 놀란 나는 힘겹게 입을 떼어 딸에게 말했다.
“혹시 화장실 가는 게 불편했니?”
“아니...”
“그러면 왜 치마를 안 입어?”
딸은 거실 바닥을 보며 거친 한숨을 내쉬었다.
“선생님이 입지 말래.”
딸의 이 말은 나의 마음을 어지럽게 했다.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자연스레 ‘선생님이 우리 아이를 싫어하는 건가?’라는 생각으로 근심의 크기는 커져만 갔다.
이러다가는 더 나쁜 생각을 할 거 같아 고민 끝에 담임 선생님께 여쭤보았다.
선생님은 치마에 대해 특별한 사건은 없었다고 말씀하셨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선생님께서 또 다른 질문을 했다.
“선생님, 보영이가 혹시 화장실에서 대소변을 보다가 치마가 길어서 불편해하지는 않았나요?”
선생님께서는 보영이가 특별히 불편해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고 하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선생님이 치마를 입지 말라고 했다는 사실의 여부를 여쭤보고 싶었지만 왠지 선생님께서 언짢아하실 거 같아 차마 이 질문은 하지 못하고 마음속에 꾹꾹 눌렀다.
통화를 마친 후 나는 여전히 답답하고 궁금했다. 보영이가 갑자기 치마를 강하게 거부한 이유를...
보영이와 선생님의 대답만으로는 나의 궁금증이 완벽하게 해결되지 않아 며칠 동안 부정적인 생각들이 더 나의 마음을 졸여왔다.
‘혹시... 친구들이 이상하다고 했나?’
보영이의 치마 거부 선언에 대한 원인을 알아내지 못한 나는 결국 지금의 걱정이 잔잔해지기만을 기다리며 시간에 맡기기로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한 달 후 또 선생님을 의심하게 되는 순간이 찾아왔다.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 아들 우진이의 대성통곡으로 하루가 시작되었다.
아무런 문제 없이 밤새 잘 잤던 아들. 갑작스러운 울음에 다급하게 우진이에게 달려가 물어보았다.
“아들, 왜 울어? 무슨 일 있어?”
30초 동안 쉬지 않고 눈물을 보이던 아들은 조금 진정되었는지 힘겹게 입을 뗐다.
“엄마, 오늘 유치원 가요?”
“응! 오늘 가는 날이야. 왜?”
“엄마, 유치원에 가기 싫어요.”
평탄하게 유치원을 잘 다니던 아들의 등원 거부 선언에 나는 잠시 할 말을 잊었다.
“엄마, 우리 반 규진이가 자꾸 나를 괴롭혀요.”
우진이는 친구가 괴롭힌다는 말만 계속 되풀이했다.
하루 종일 우진이의 말이 신경 쓰였던 나는 고민 담임 선생님과 상담을 했다.
“선생님, 우진이 친구들과의 사이는 어떤가요?”
담임 선생님께서는 맑은 목소리로 차근차근 이야기 해주셨다.
“우진이 친구들과 잘 지내요. 친구들에게 양보도 잘해요.”
오늘 아침 우진이가 울면서 말한 내용과는 전혀 다른 말씀을 하시는 담임 선생님께 아침에 있었던 일을 간단하게 말씀드렸다.
“어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우진이 친구들과 큰 문제 없어요.”
담임 선생님과의 통화가 끝나고 큰 문제가 없다는 선생님의 한마디에 무거운 마음을 잠시 내려놓기로 했다. 그러나 다음 날 아들의 유치원 등원 거부는 계속되었다.
하염없이 울고 있는 아들에게 우는 이유를 물어보았다.
“규진이가 자꾸 내가 만든 장난감 뺏으려고 해.”
며칠 동안 보인 우진이의 반응은 그냥 넘어가도 되는 상황이 아닌 거 같았다. 또다시 나의 고민은 시작되었다.
‘선생님은 큰 문제 없다고 하고 아들은 울고... 누구 말을 믿어야 하지?’
아들의 아픈 눈물을 떠올리며 또 다른 생각이 나의 마음을 어지럽게 했다.
‘선생님께서 나 걱정할까 봐 그냥 잘 지낸다고 말씀하신 건가?’
어두운 생각의 크기들이 커지며 나도 모르게 선생님 말씀보다 아들의 행동을 점점 더 믿게 되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 끝에 선생님을 함부로 의심하기 싫었던 나는 일단 며칠 더 우진이를 지켜보기로 했다. 그리고 나흘 후 나의 걱정과는 다르게 우진이는 더 이상 친구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나의 근심도 점점 옅어졌다.
유치원 생활의 모든 모습을 가까이에서 볼 수 없는 상황에서 누구의 말을 더 믿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으로 심란한 며칠을 보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땠지?’
교사 삼 년 차 되던 해에 나는 네 살 반 담임 선생님이 되었다. 우리 반에는 재원한 아이들 다섯명과 신입생 두 명이 있었다. 신입생 중 유난히도 말수가 적고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던 소희.
소희와 함께 지낸 지 두 달이 되어 가던 어느 날. 소희 어머니께서 원장님에게 상담 신청을 하셨다.
원장님께서는 소희 어머니와 상담하신 후 나에게 내용을 간단하게 말씀해 주셨다.
“소희가 집에서 선생님이 계속 때린다고 하네요. 처음에는 소희가 장난 하나보다 했는데 수십 번 같은 이야기를 하면서 눈물을 보이더래요.”
그 순간 나의 머릿속이 하얀 백지가 되었고 이어지는 원장님의 말씀이 웅웅~ 울리듯 흘러갔다.
너무 억울했다. 화가 나기도 하고 답답하면서 두 눈에는 뜨거운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당장 소희 어머니께 가서 직접 말하고 싶었다.
‘저는 아이를 때리지 않았습니다. 왜 소희 이야기만 듣고 저를 학대 교사로 판단하시죠?’
하고픈 말은 마음속에서 뒤엉켰다.
다음날 나는 겉으로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아이들을 지도하고 마음속에서는 계속 억울함을 호소하는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때의 일을 하나하나 되새긴 후 나에게는 씁쓸한 결론만 남았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라는 말처럼 믿음이라는 마음의 용량도 남보다는 가까운 가족에게 더 많이 할당 될 수밖에 없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