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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 율 Aug 15. 2021

-횟집-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브런치 ×저작권위원회] 다시 쓰는 안데르센 창작 공모전  -인어공주-

그 바다에 날이 밝아온다.

속이 보이지 않는 새파란 바닷물

그 끝에 굵은 밧줄처럼 새하얀 파도가 띠를 이뤄 꿈틀거린다.

그 바다를 지켜보는 한 사내의 눈동자가 태양빛을 받아 붉게 젖는다.



-1년 전-

"엄마, 이게 뭐야?"

횟집을 나서던 7살 꼬마 여자아이의 손에 들린 건 500원짜리 동전만 한 작은 비늘이었다.

 색이 화려하기가 무지개 빛을 닮았고 질감은 견고하며 부드럽고

홀로그램처럼 방향에 따라 색이 변하기도 하였다.

"글쎄? 무슨 비늘 같기도 하고... 예쁘게 생겼네..."

친절하지만 별거 아니라는 듯한 아이의 엄마는 그 후 지인과 대화를 이어 나간다.

 사이 아이는 그 비늘을 들고 해를 향해 비춰보았다.

그 안에는 아름다운 용궁이 있었다.

아이는 엄마에게 "엄마 이 안에 성이 있어요!"

하며 엄마의 손을 흔들었다.

아이 엄마는 친구와 얘기를 나누며 건성으로 대답한다.

"그래?... 예쁘겠네... 근데 비린내 날 것 같은 데 갈 때 손 씻고 가야 한다..."

엄마의 지인은 "은지가 참 상상력이 좋네..."라며 (좀 엉뚱하네?) 웃는다.

엄마는 칭찬으로 듣고 대답한다

"요즘 동화책을 많이 읽어요.."

"동화책?"

"네... 안데르센!"

"아.... 인어공주, 성냥팔이 소녀..!"

두 여자는 그렇게 대화를 끝냈다.

아이가 주머니에 비늘을 집어넣으려 하자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 비늘이 아이의 손을 떠난다.

아이가 손을 뻗어 잡으려 했지만 엄마가 아이의 손을 놓지 않았다.

비늘은 아이에게 인사라도 하듯, 잠시 머무르더니 이내 허공으로 사라졌다.




'김만선'

제주도 어딘가 바닷가에 작은 횟집이 있다.

좁은 도로를 사이에 두고 제법 바다와 가까운 허름한 가게.

양옆으로 드문드문 돌담을 쌓은 민가가 있고 그 뒤에는 해녀 대합실이 있다.

간판은 '어부 횟집'이다. 정직한 이름.

자연산 활어, 돌문어, 해삼, 멍게 등이 가게 밖 유리창에 적혀있다.

'김만선'이 이 집 주인이다. 집안 대대로 작은 배를 타고 고기를 잡아 삶을 영위하는 어부가( 漁夫家)

'만선'의 부친은 '만선'의 이름을 시내 유명한 작명가에게 받았다고 한다.

언제나 만선으로 굶어 죽지 말라고...'만선'은 서른두 해나 그렇게 성실하게 '김만선'으로 만선의 꿈을 꾸며

사는 착한 청년이다.




'인어공주'

밤사이 바다가 뒤집혔다.

일기예보는 바다 소식도 전해준다.

그래 봤자 파고 정도! 먼바다는 잔잔 하다는 둥...

인간이 어찌 바닷속 사정까지 알리오.

어젯밤 마녀와 공주는 깊은 바다에서 한바탕 전투를 했다.

타협은 조용했으나 디테일한 협상에서 공주는 마녀의 심기를 건드렸다.

목소리를 내어 주는 대신 다리를 갖게 된 공주는 몇 가지 약관이 맘에 들지 않았다.

왕자님과의 결혼은 필수여야 한다.

하지만 마녀는 공주를 질투하여 공주와의 합의를 일방적으로 깼다.

공주와 마녀의 전쟁은 바다가 뒤집어질 정도의 이른바, 사투였다.

하지만 마녀의 마법을 이길 수는 없었다.

거대한 바닷속, 폭풍이 일었다.

바다가 일순간 뒤집어졌다. 정신을 잃은 공주는 조류에 휩쓸려 어느 바닷가에 겨우 떠밀려 왔다.




해안가에 전에 없던 폭풍 잔해들이 밀려 들어와 있었다.

밤새 잔잔했던 바다를 생각하면 이상한 일이었다.

'만선'이 공주를 발견한 곳은 '만선'이 배를 대는곳 선착장 근처.

 큰 나무기둥을 바위틈에 박아서 배가 움직이게 않게 해 놓은 곳이었다.

전날은 유난히도 바다에 고기가 없어 겨우 활어 몇 마리와 돌문어, 뿔소라 몇 개가 수확의 전부였다.

'만선'은 기운이 빠졌다.

"내일이 주말인데 이게 뭐람?..."

그때 '만선'의 앞에 무언가 사람 같은 실루엣이 희미하게 보였다.

그곳은 '만선'이 배를 대는 곳에서 동굴 쪽으로 꺾인 작은 해변이었다.

만선이 다가가자 점점 사람의 형체가 선명해지기 시작한다.

"뭐지? 사람인가... 여자 같은데...?"

공주는 그곳에 그렇게 엎어져 있었다.

긴 머리카락이 허리까지 내려와 미역줄기와 갈이 엉켜있었고

벌거벗은 몸은 축 늘어져 있었다.

맨발에 파도가 찰랑찰랑 부딪치고 있었다.

'만선'은 관광객의 익사사고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주변 경관이 좋아 가끔 해변에 놀러 오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119를 부르려고 휴대폰을 들었다.

'만선'은 공주의 상태를 제대로 살피지 못한다.

응급처치라도 하고 싶지만 소심한 '만선'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괜한 오해라도 받으면 난처해진다.

'저 여자의 운명이다. '

어부는 소박한 삶을 살지만 때론 냉정하다.

아니, 겁이 났다.


공주가 눈을 떴다.

'만선'이 지켜보고 있다.

공주의 눈에 왕자가 아닌 어부 '만선'이 있다.

병원 침대에서 '만선'과 공주는 첫 대면을 한다.

링거가 희한한 듯 링거줄을 만지작. 병원복을 당겨보고 '만선'을 쳐다본다.


"당신은 왕자님이 아닌 것 같습니다만?"

공주가 만선에게 묻는다.

"네, 저는 김만선입니다! 어부죠."

"아.. 김만선 씨.. 왕자님은 어디 계신가요?"

깨어나자마자 왕자를 찾고, 전혀 이 상황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자초지종을

묻지도 않는 공주에게 만선은 배신감을 느낀다.

자신이 발견하여 병원으로 데려와 살려놓았더구먼 다짜고짜 왕자 타령이다.


"저는 바닷속 용궁에서 올라온 인어공주입니다."

어젯밤 마녀와 전쟁을 하다 무언가에 맞고 정신을 잃었어요!"

'만선'은 이 여자를 어떻게 해야 할지 혼란스럽다.

'경찰에 실종 신고할까?'

'괜히, 곤란해질 것 같아!'

그렇지만 '만선'의 의지를 마비시키는 것은 헛소리를 하는 공주의 상태도.

동화 같은 이 상황도, 곧 알게 될 주변인들의 시선도 아닌 공주의 눈부신 미모였다.

비단결 같은 긴 생머리는 유리가루를 코팅한 듯 부드럽게 반짝거렸고,

서양 인형을 닮은 이목구비는 동양인인 듯, 유라시아인 인 듯 매우 선명하다

특히 까만 눈동자는 그 색이 진하여 유리알처럼 반짝였다.

'만선'은 사랑에 빠졌다. 마법처럼...

'만선'은 그저 좋다.

인어공주는 목소리를 잃어 말을 못 하는 게 맞지만 공주는 지금 말을 하고 있다.

뭔가 이상하다.

'만선'은 어떤 보이지 않는 기운에 이끌리는 것 같다.




공주는 퇴원 후 '만선'과 함께 만선의 집으로 향했다.

호기심 많은 공주의 눈동자는 제주 시내 이곳저곳을 훑기 바빴으며

참새처럼 만선에게 질문을 쏟아냈다.

집으로 가던 중 들른 아이스크림 가게.

그곳에서 공주는 '만선'이 사준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정말 맛있게 먹었다.

마치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이 그랬던 것처럼..

바닷가를 달리는 차 안에서는 먼바다를 보며 잠시 생각에 빠지는 듯하고

바다가 보이지 않으면 또다시 손짓을 해가며 만선에게 뭐라고 질문들을 마구 쏟아냈다.

'만선'은 피곤하지만 싫지 않은 표정으로 공주의 호기심과 육지의 일상을 그렇게 하나씩

알려주고 있었다.

마치 신혼여행 온 신혼부부처럼...  




바닷속 용궁은 공주가 재 시간에 돌아오지 않자 난리가 났다.

바깥세상을 모니터 하던 족집게 문어 집사는 특히 '만선'의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공주가 깨어나기 전 했던 행동, 평소에 어떤 일들을 하는지 등등.

문어 집사는 '만선'을 좋게 보고 있는 듯하다.

"세상에는 감시카메라가 많습니다. 뭍사람들은 하루 종일 카메라에 노출된 채로 살고 있죠!"

문어박사는 용왕님에게 브리핑하며 자료화면들을 보여준다.

"인간들은 자신이 노출된 것도 모른 채 쓰레기를 버리고 침을 뱉고, 나쁜 짓을 합니다."

용왕은 고개를 끄덕인다.

"카메라가 있던 없던 양심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은 드문 편이죠!"

문어 집사는 오늘 많이 들떠있다. 공주의 거취가 걱정되어 그동안 육지를 실시간 모니터를 했다.

문어 집사는 '만선'이 맘에 드는 눈치다.

용왕은 문어 집사에게 '만선'에 대해 묻는다.

"저기 쟤는 누군가?"

문어 집사는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한다." '만선'이라는 어부인데... 그젯밤, 육지로 올라갔던 막내 공주님에게

작은 사고가 있었습니다. 아침까지 돌아오지 않아 걱정을 많이 했는데..."

용왕은 대노한다. "당장 불러들여!"

집사가 대답한다.

"이미 늦었습니다. 막내 공주는 마녀와의 싸움에서 졌습니다!

아마, 공주가 다시 용궁으로 돌아오게 된다면 마녀 군단의 거대한 공격이 있을 것입니다!"

문어 집사는 평소와는 다르게 단호한 입장을 보인다. 눈빛도 마치 미래를 예견 하 듯 가늘게 떴다 크게 떴다를 반복한다.

용왕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온 '만선'과 공주는 한동안 말없이 바다만 바라보았다.

공주는 고향이 그리웠고, 만선은 그런 그가 안타까웠다.

공주에 대해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냥 지켜보기로 했다.


한참만에 침묵을 깬 공주는 배가 고프다고 하였다.

'만선'은 주방에서 뭔가 잠시 뚝딱인다.

이윽고 내온 것은 '해물라면' 이다.

냄비 안에는 돌문어와 새우, 소라 등 해산물이 가득 들어 있었다.

"와...! 얘네들 여기서 보네  맛있겠다!"

공주는 맛있게 라면을 먹는다.

"근데 얘네들 어디서 나왔죠?"

만선은 시큰둥하게 대답한다.

"어디서 나오긴 뭐가 나와요?...내가 직접 잡아온 겁니다.. 바다에서..!"

공주는 재밌다는 듯 박수를 치고 까르르 댄다.

"이걸, 잡아서 판다고요?..."

'만선'은 못마땅하다. 목숨 걸고 잡아온 생선이며 해산물과 함께 무시당하는 느낌!

공주는 어느새 라면을 국물까지 들이켠 후에 덤덤하게 말했다.

"이제부터 내가 가져올게요.. 이런 거..!"

'만선'은 더욱 기분이 나빠진다.

"이런 거요? 가져온다고요...? 뱃일이 그렇게 쉬운 줄 알아요?"

공주가 진지하게 말을 받았다.

"매주 수요일에 용궁 법정에서 재판이 열려요. 인간 세계에선 상상할 수 없지만

바닷속에서도 범죄는 일어나고 사건 사고도 많지요! 형량을 받으면 모든 종을 막론하고

용궁에서 추방당합니다. 그렇게 추방된 물고기가 인간에게 잡히고, 또 다른 포식자에게 먹히고 생태계는 유지되는 거죠! 사실 인간은 바닷속 생태계를 오래전부터 망쳐 놨어요! 하지만 용궁은 그런 인간을 용서해 왔답니다. 인간도 먹고살아야 하니까요...."

"그럼 내가 잡아온 것들도 다 범죄 생선이란 말이예요?"

"호호호...그럴걸요..."공주는 또다시 밝아졌다.

도무지 공주의 카리스마를 이겨먹지 못하는 '만선'이다.

 그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공주는 다시 비장하게 말했다.

"내가 가져다 줄게요!...당신은 부자가 되세요!"




-1년 후-


시간은 흐른다.

연일 '만선'의 횟집은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건물 뒤쪽 해녀 대합실을 허물고 넓은 주차장을 만들었다.

간판도 어부 횟집에서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로 바뀌었다.

그동안 '만선'의 횟집은 많은 변화가 있었다.

공주는 '만선'의 지극정성에 횟집에서 일을 하며 '만선'을 도왔다.

'만선'의 횟집은 싱싱한 횟감으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어느 날, 제주도를 찾은 한 블로거에 의해 횟집이 소개됐고, 전국에서

유튜버와 방송국 사람들이 '만선'의 가게를 찾았다.


사실 그동안 '만선'의 가게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동네 해녀들은 '만선'의 가게에 들러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섭(홍합)을 두고 평생 물질을 했지만

이런 걸 본일이 없다고...이건 수입산 아니면 인공 제품이라고 음해하고 고발한다고 했다.

공주는 밤마다 깊은 바닷속에서 해산물을 따다가 해녀들이 물질을 하는 가까운 바다에 두고

해녀들에게 어디로 가보라고 장소를 알려주기를 반복했다.

해녀들은 공주와 만선의 도움으로 수입도 늘어 '만선'을 적극 옹호하고 나선 것이다.


대기업 프랜차이즈 기업에서는 '만선'의 횟집을 체인화 하는 데 성공했다.

그 이름도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가게의 명예를 걸고 내놓는 생선과 해산물 한점 부끄럼이 없다는 설명이 만선을 설득시켰다.

그도 그럴 것이 싱싱함은 전국 최고이며 그 비밀은 두 사람밖에 모르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장사가 잘 된다는 소문에 또 다른 체인점

 '박수칠 때 떠놔라' 회사도 와서

비밀을 캐보려 애썼지만 끝내 밝히지 못하고 '박수칠 때 떠났다!'




"당신은 왕자인가요?"

이름다운 공주는 이제 전국적인 유명인사 되었다.

그 간 다녀간 방송국, 신문사, 유튜버들에 의해 전국적인 유명인이 되었다.

자연히 공주에 대해 관심이 쏠렸다.

화면에 비친 공주의 미모는 연일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공주는 인터뷰를 일절 하지 않았다.

말을 못 한다는 소문이 퍼지고 벙어리인 게 기정 사실화됐다.

공주는 만선이와 대화를 할 뿐, 일을 할 때는 주로 필담을 나눴다.

그 이유로 더욱 이슈가 되었다.

쓰레기 같은 상상력을 발휘한 세인들에 의해 공주의 소문은 변절되어갔다.

만선이 강제로 잡아 앉혀다느니, 말은 하는데 말을 하면 주인한테 죽도록 맞는다는 둥

그렇게 사람들은 공주를 왜곡했다.

'만선'을 음해하고 네거티브를 퍼뜨렸다.




어느 날, 톱배우 '이동하'가 동료들과 함께 횟집을 들렀다.

매니저며, 스타일리스트, 관계자들에 둘러싸여 마치 왕자처럼 보였다.

자리를 내주고 굽신거리는 주변사랍들!

공주도 그 모습을 보게 됐다.

공주가 찾던 왕자와 닮았다.

이동하'도 공주의 소문을 익히 알고 있었다.

노총각인 톱 배우는 공주를 직접 보고 싶었다.

관계자의 부탁으로 공주와 합석을 하게 된 배우는 공주의 아름다운 얼굴에 반해 버렸다.

그뿐만이 아니다. 뭔가 신비로운 분위기에 한참을 넋을 놓고 쳐다보았다.

공주도 배우를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그 순간 공주는 종이에 질문을 적었다.

"당신은 왕자님인가요?"

공주의 질문에 배우는 잠시 망설이더니 "네" 라고 대답했다.

"그럼, 나를 처음 봤던 섬이 어디인가요?"

공주의 두 번째 질문에 배우는 대답을 못했다.

실망이 가득한 얼굴로 공주가 일어서려 할 때 배우가 공주의 손을 잡았다.

"저기 잠깐만요!"

그 순간 배우는 전기에 감전된 듯 놀라 자빠졌고. 한동안 멍하니 정신을 못 차렸다.

주변 사람들이 그를 일으켜 세워 의자에 앉혔다.

배우는 잠시 후 이유도 없이 횟집을 뛰쳐나갔다.

혼이 나간 얼굴 표정이었다.




'만선'은  부자가 되었다.

그야말로 하루하루가 '만선'인 것이다

세상에 기부도 많이 하고 좋은 일에 아낌없이 돈을 내놓는다.

하지만 공주와의 사랑은 이루지 못했다.

'만선'은 사람 사는 세상에서 공주와 짝을 이뤄 백년해로하기를  원했지만 공주는 떠나야 했다.

마녀와의 전쟁은 끝났지만 공주는 인간세상에서 약속을 깨고 말을 했으며

짧지만 왕자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마음이 흔들렸었다.

왕자를 만나 결혼을 해야 아름다운 목소리를 찾을 수 있고 바닷속에서 300년을 살 수 있으니 말이다.

곧 인어공주로 돌아가야 한다.

공주는 왕자를 더 이상 찾지 않기로 한 것 같다.


그날 밤 용궁의 언니들이 뭍으로 올라와 파티를 열었다.

모두가 아름다웠다.

언니들은 막내 공주와 어울려 신나게  춤을 추며 와인을 마시고 밤새 즐겼다.

'만선'은 그날 밤 언니들과의 파티가 마지막 공주와의 밤이란 걸 본능처럼 알았다.


공주는 '만선'과 마주 앉았다.

"단지 사고 때문에 인간세상에 온 것인가요?"만선이 공주에게 물었다.

공주는 아무 말이 없었다.

잠시 후

"당신은 바닷속 세상을 믿나요? 공주가 말했다.

"못 믿을 만한 이유가 내겐 없습니다!"

만선의 대답 이후 두 사람은 키스를 나눴다.

공주의 입술은 따뜻했고, 만선은 부드러운 공주의 입술을 느꼈다. 사람의 체온이었다.


날이 밝았다.

공주의 방앞에 이름 모를 꽃들이 뿌려져 있었다.

꽃들은 모두 바닷가로 향하고 있었다.

"만선'은 공주가 떠난 걸 알았다.

바람이 차가워진다.


-전날 밤-

파티를 마친 공주들이 떠나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하나둘 입었던 사복을 벗고 공주들은 바닷가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막내 공주도 바닷가로 발걸음을 옮긴다.

발걸음을 디딜 때마다 다리가 비늘로 하나 둘 변하기 시작한다.

곧게 뻗은 다리 위로 아름다운 무지갯빛 비늘들이 피어난다.

종아리에서 허벅지로 비늘이 번진다.

먼저 바닷속으로 들어간 언니들의 손짓이 보인다.

이제 공주의 다리는 지느러미가 되어 있었다.

 예쁜 다리는 사라지고...

바닷가에 다다르자 차가운 바닷물이 공주의 지느러미를 반긴다.

공주는 이내 힘 껏 점프를 하여 물속으로 사라진다.

한참 후에 고개를 내민 공주는 '만선'을 향해 손을 흔들고는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잠시 후 잔잔한 바다 위로 천상의 하모니와 공주의 름다운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다음 날

아침부터 가게 앞은 분주하다.

공주가 떠난 걸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다.

예약 손님에 단체손님까지...

식구들도 모두가 늘 그랬던 것처럼 하루를 시작한다.


한 여자아이가 식당에 들어설 때 몸을 구부려 땅에서

작은 비늘 하나를 집어 다..

"엄마...! 이게  뭐야?...."


공주가 떠난 후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은 더욱 승승장구했다.

'만선'의 귓가에 공주의 목소리가 나지막이 들린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그곳에 가 보세요!

저를 볼 수는 없어도 제가 다녀간 선물이 있을 거예요!"

만선은 미소를 짓는다.


"착하게 사는 거 잊지 말고, 결혼도 꼭 하세요!"


'만선'은 지금 바다를 보고 있다.

오늘따라 바다가 고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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