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mom say, no! 7)
엄마가 잘 자라며 볼뽀뽀를 해주었다. 그리고 머리맡에 있는 카세트테이프의 재생 버튼을 눌렀다. 검정우산 동화가 흘러나왔다. 엄마는 일어나 방 불을 끄고 으스스한 불빛을 내는 스탠드를 켜 두고 방을 나갔다. 눈을 뜰 수 없어서 잠이 들었다. 나는 검정우산을 외워서 아침마다 엄마에게 들려주었다.
#9
운동회 날 아침, 엄마는 분주했다. 김밥을 싸고 있었고 나는 꽁다리를 먹으며 오늘 달리기 계주를 하니 그전에 와서 구경하라며 신신당부를 했다. 엄마를 알았다고 대답했다. 계주가 끝나도 엄마, 아빠는 오지 않았다. 윗집 이모는 엄마가 동생을 낳으러 병원에 갔다며 도시락을 대신 가지고 오셨다. 그 이모네 언니, 오빠들과 돗자리에 앉아 김밥을 먹는데 엄마가 온다고 했는데 안 와서 서운했다. 동생 때문에 엄마가 못 왔다고 생각하니 동생이 태어나자마자 미웠다.
#15
학교가 끝나고 학원 갈 시간이 조금 남았다. 친구가 집에 가서 잠깐 놀다 가자고 해서 알았다며 친구 집에 놀러 갔다. 친구 집에는 아무도 없었고, 방에 들어가 히히덕거리며 놀았다. 친구가 베란다로 나가더니 갑자기 초록색병을 가지고 왔다. 너도 한 잔 마실래라고 물으며 친구는 잔에 따라 소주 한 잔을 했다. 순간 나는 친구에게 거리감을 느꼈다. 친구가 어른 같아 보이면서 친구가 무서웠다.
#18
머리가 깨질 것 같아서 양호실에 누워있겠다며 담임선생님께 허락을 받았다. 어제의 숙취이다. 어제는 내 생일이었고, 친구들과 야자 끝나고 학교 옆 마을 정자에 가서 술을 마셨다. 처음 술을 마셨다. 어제는 기분이 좋았는데, 오늘은 죽을 것 같다. 몰래 마신 술은 재미있고 즐거웠다. 하지만 처음 마신 술은 주량을 몰라 이틀을 고생했다.
#20
내 생일날이었다. 스무 살에 맞는 생일은 특별하였다. 첫눈이 왔다. 소복소복 내리는 첫눈은 아니었지만 첫눈이라는 설렘과 알딸딸 취한 나의 온기가 좋았다. 그리고 내 손을 잡아주던 나를 집까지 데려다주던 그 아이의 온기는 따스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가 되기 전, 우리는 그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한 달 정도의 짧은 연애였지만 후회는 없다.
#32
오늘은 점심을 거하게 먹어야지 생각했다. 어제저녁 독서모임이 있어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하여 더욱 배가 고팠다. 아침에 정기검진을 갔고, 양수가 새고 있다는 말과 함께 의사 선생님은 나에게 아침을 먹었냐고 물었다. 안 먹었다고 하니 다행이라고, 금식하라고 했다. 나는 의사 선생님께 점심 먹고 다시 오면 안 되냐고 했더니 선생님은 나를 빤히 쳐다보며 지금 입원하라고 했다. 그렇게 나는 배를 쫄쫄 굶고 촉진제를 맞으며 진통을 맞이했고 입맛이 뚝 떨어졌다. 그리고 이틀 뒤, 아이를 낳았다.
# 20, 에필로그
한 달 정도로 짧았지만 후회 없는 연애였다. 후회는 없었지만 눈물은 났었다. 예의 없이 전화로, 싸가지 없이 그의 생일을 일주일 남기고 이별을 통보했다. 며칠을 생각한 이별이었지만 만나서 말하기는 겁이 났다. 헤어지자는 말을 하고 끊었는데 핸드폰은 밤새 울었다. 핸드폰을 보면 계속 눈물이 나서 핸드폰 전원을 끄고 잠들었다. 꺼진 핸드폰은 더 이상 울리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 핸드폰을 켤 용기가 나지 않아 꺼진 핸드폰을 들고 학교에 가려고 나왔다. 버스정류장을 가니 그 아이가 앉아있었다. 밤새 잠을 자지 못 한 듯한 행세였다. 그 아이를 보자마자 나는 바로 뒤돌아서 걸어갔다. 눈물은 나지 않았다. 그렇게 다른 정류장을 가서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갔고 우리들의 아지트에서 친구들과 나의 이별을 위로하며 또 술을 마셨다. 술을 마시며 또 울었다. 거하게 취했고 택시를 탔다. 아파트단지 앞에 내려 걸어가는데, 우리가 항상 새벽녘에 이야기를 하던 그 벤치에 그 아이가 앉아있었다. 술이 깼다. 낮부터 마신 술이 아깝게 맨 정신이 되었다. 나는 바로 뒤돌아서 걸어갔다. 그렇게 나는 한 달을 다른 버스정류장을 다른 길을 통해 다녔다. 그 아이를 마주칠까 봐 겁이 났다.
그 뒤 두 번의 연애도 한 달, 세 달의 짧은 연애였다. 이번엔 내가 이별통보를 받은 자가 되었다. 한 아이는 싸가지 없이 배를 탄다며 연락이 두절되었고, 또 다음 아이는 예의 없이 전화로 이별을 통보하고 연락이 두절되었다. 나는 울면서 그 아이의 핸드폰을 울렸다. 그 아이도 나처럼 핸드폰을 끄고 잠들었을 것이다. 아침이 되어도 돌아오는 연락은 없었다. 그렇게 나의 세 번의 연애가 끝나고 내 인생에 연애는 더 이상 없다며 친구들에게 선언하였다. 술을 마시며 또 울었다. 그리고 스물두 살 생일, 더 이상 연애는 없다고 선언한 지 한 달 된 시점에 한 남자를 소개받았다. 그렇게 나의 네 번째 연애는 시작되었다. 나는 친구들에게 선언을 취소한다며 술을 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