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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May 23. 2022

이 지역에서 그 감정으로 살아가는 것

 나의 학창 시절 친구들은 거의 서울, 경기에 자리를 잡았다. 그 대단한 수능만큼이나 우리들 사이에서는 인서울이 거대한 꿈이었다. 엄친아가 나랑 같은 반 내 앞에 앉아있는 그 놈인, 좁디좁은 시골 바닥에서 그 지긋지긋한 집구석이 아니라 이 지긋지긋한 시골을 떠나는 방법은 우리에게 서울에 있는 대학을 가는 것뿐이었다. 그 대단한 수능에서 대담하게 실패한 나는 거대한 꿈을 이루지 못하고 소박한 꿈이라도 이루고자 광주로 왔다. (실은, 대학 등록금이 너무 비싸 서울 근처의 모 대학 합격을 취소했다.) 그렇게 광주에 와서 알게 된 친구가 있다. 나의 유일한 친구, 광주에서 나고 자란 친구.

 그 친구와 대학교 3학년 때 더욱 친해졌다. 대학을 졸업하기까지 남은 2년을 그 친구와 함께 보냈다. 아침에 같이 도서관에서 만나 모닝커피를 마시고, 밤에는 서로의 버스를 기다려주었다. 따스함과 해이함이 같이 밀려오는 5월, 토익공부를 하다가 이건 아니다 싶어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나가자고, 도저히 오늘은 여기에 못 있겠다고. 그 친구도 알겠다며 밖을 나왔다. 내가 충장로에 가서 영화 보자고 했더니, 그 친구가 5월은 충장로에 가기 싫다며 다른 곳을 가자고 했다. 우린, 중외공원을 갔다. 막상 나와도 갈 곳이 없는 취업준비생들이었다. 아이스커피를 손에 들고 걸으며 물었다. 왜 충장로를 가지 않느냐고. 친구는 그냥이라고 대답했다. 5월에는 그냥 가기 싫다고 했다.

 그 친구는 대학을 졸업하고 갑자기 서울로 올라갔다.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엔 광주에 일자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 하고 싶은 일을 작가였고, 방송작가로 열심히 일을 했다. 내가 서울에 가끔 놀러 가면 월 45만원 창문 하나 없는 고시원에서 나를 재워주었다. 나는 침대에서 자고, 그 친구는 밤새 일을 하였다. 그렇게 하고 싶은 일이 본인의 미래인가라는 고민에 빠진 친구는 갑자기 모든 걸 정리하고 파리로 떠났다. 한 달 살고 오겠다고 한다. 한 달 뒤, 돌아왔다. 그리고 친구는 지금 작가와는 다른 세상에서 묵묵히 자기의 일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친구는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광주로 내려온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갑자기 취업을 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우연하게 빨리 찾았다. 그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운 좋게 광주에서 자취를 하며 열심히 살았다. 친구가 가끔 내려오면 따뜻한 커피정도는 사 줄 수 있는 친구가 되었다. 그렇게 하고 싶은 일에 취해있던 나는 10년을 꼬박 채우고 일을 그만두었다.  


 지난달에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다가 그 친구 생각이 나서 책을 보내주었다. 친구가 책을 받고 연락이 왔다. 본인이 서울 살면서 잊고 있었는데 네가 다시 일깨워주었다며, 내가 광주사람이었다고. 무슨 소리이냐고 다시 묻자, 친구는 나에게 말해주었다. 광주 살 때는 당연했던 그 슬픔과 뭔지 모르는 죄책감과 우울감이 있었는데, 서울에 10년을 살다 보니 5월의 아름다움과 따사로움, 푸르름을 보고 살았다고 한다. 그 친구 말을 들으니 나의 감정도 비스무리하게 떠올랐다. 시골 살 때는 5월의 아름다움과 따사로움, 푸르름만 보고 살았는데, 광주에 10년을 살다 보니 그 슬픔과 죄책감, 우울감이 감싸는 그 기분이 생각났다. 이 친구도 다시 나와 같은 감정에 스며들 것이다. 광주,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이 공간에서는 마냥 봄이 왔다고, 여름이 곧 올 거라며 5월에 방긋 웃을 수 없다는 것을 서로가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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