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지 않는 연습

쓸모없는 시간처럼 보이는 순간에 대하여

by Dean

해야 할 일은 늘 많다.

밀린 메일, 답해야 할 메시지, 미뤄둔 공부와 운동.

앉아 있어도 마음은 늘 다음 일을 떠올린다.


가만히 있는 시간은

왠지 죄책감을 부른다.

“이 시간에 뭘 더 할 수 있을 텐데”

라는 생각이 자동으로 따라붙는다.


'초역 부처의 말'이라는 책을 읽다가 이런 구절을 본 적이 있다.

“마음이 바쁘면, 눈앞의 한 그루 나무도 보이지 않는다.”


생각해 보면

나는 늘 눈앞의 나무보다

아직 오지도 않은 숲을 걱정하느라

바빴던 것 같다.


어릴 때부터 우리는

“시간을 낭비하면 안 된다”는 말을 듣고 자랐다.

빈칸이 허용되지 않는 노트처럼

하루도 틈 없이 채워야 성실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은

게으름처럼 보이고,

쓸모없는 시간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부처의 가르침은

조금 다른 방향을 가리킨다.

욕심을 줄이고, 집착을 내려놓고,

지금 이 순간에 머무르는 것.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힘도

결국은 멈추는 데서 온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어느 날 퇴근 후,

집에 돌아와 침대에 몸을 던지고도

무언가를 또 해야 할 것 같은 마음에

다시 책상에 앉았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날은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했다.


불을 모두 켜지도 않고,

TV도 켜지 않고,

조용히 어두워지는 방 안에 앉아 있었다.


처음에는 그 시간이 불편했다.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 같아

마음 한편이 계속해서 쿡쿡 찔러왔다.


그런데 조금 더 버티다 보니

다른 감정이 올라왔다.


오늘 하루 동안

말로 꺼내지 못했던 감사함,

잠깐 스쳐 지나갔던 기쁨 같은 것들.


부처는

'떠오르는 생각을 억지로 쫓지 말고,

다만 그것이 떠오르는 것을 알아차려라' 라고 말한다.


그래서 나도 그날만큼은

생각을 억지로 밀어내지 않고

그냥 떠오르게 두었다.

아,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알아차리는 것까지만.


차를 우리며 기다리는 시간도 비슷한 것 같다.

뜨거운 물을 붓고 바로 마실 수는 없다.

잠시 기다리는 동안

잎이 서서히 열리고

향이 우러난다.


마음도 그런 것 같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그 잠깐의 시간이

마음이 우러나는 시간이다.


예전의 나는

쉬는 시간을 보상이라고 생각했다.

열심히 산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것.

그래서 늘 열심을 먼저 증명해야

쉴 자격이 생긴다고 믿었다.


불교식으로 말하면

그것 역시 하나의 집착이었다.

‘쉴 자격’에 대한 집착,

‘쓸모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집착.


지금은 조금 다르게 생각하려 한다.

쉬는 시간은 보상의 개념이 아니라

살아가기 위한 기본 비용에 가깝다고.

계속 달리기 위해

반드시 지불해야 하는 유지비 같은 것이라고.


그래서 요즘은 가끔

일부러 아무것도 하지 않는 저녁을 만든다.


일찍 집에 도착한 날에는

굳이 또 다른 해야 할 일을 찾지 않고

그냥 앉아서 창밖을 본다.

쓸데없어 보이는 생각들을

마음껏 떠올려 본다.


그 시간은

누가 보기엔 쓸모없어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 시간 덕분에

내일의 내가 조금 덜 조급해진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믿기로 했다.


부처의 말대로라면

삶에서 중요한 것은

더 많이 가지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하나씩 내려놓는 일일지도 모른다.


해야 할 일에 대한 강박,

늘 뭔가를 증명해야 한다는 마음,

쉼조차 성과로 만들려는 태도 같은 것들.


그것들을 잠시 덜어낼 수 있다면

그 빈자리에

조금의 숨,

조금의 여유,

조금의 자신이 들어올 수 있을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은

쓸모없는 시간이 아니다.

그 시간에 비로소

나는 나를 다시 만난다.


오늘은 그 정도면 충분하다.


오늘은 잠시,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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