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이번에는 느낌이 좋아. 무조건 될 것 같아.”
“엄마! 망했어! 나 그냥 포기할래. 시험 안 볼 거야.”
하루에도 수십 번씩 오락가락. 아홉 살 아들의 마음은 면접 날이 다가올수록 심하게 요동쳤다. 내년에 있을 영재교육원 3, 4학년 과학반에 지원한 탓이었다.
어릴 적부터 과학을 참 좋아했다. 매일 과학자들의 유튜브 영상을 보며 사슴벌레부터 번데기, 애벌레, 도마뱀과 햄스터까지 방한 구석이 집인지 동물농장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생물에 듬뿍 애정을 쏟는 아이다.
그런 아들이 일 년 전 영재교육원에 지원하고 싶다고 했을 때, 나는 담임선생님과의 상담에서 이렇게 말했다.
“혹시나 아이가 준비하다가 오히려 공부와 멀어지게 되고 정신적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까 걱정이에요. 그리고 저희 아이는 그저 과학을 좋아하는 것이지 영재까지는 아닌걸요.”
그럼에도 아이는 하고 싶어 했다.
“그래, 합격이 되든 안 되든 경험이 중요한 것이니 우리 준비 열심히 해 보자.” 나는 아이를 꼭 안아 주었다.
찬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한 시월의 어느 날, 기다리던 모집 공고가 올라왔다. 그리고 아이는 그날부터 치열한 한 달을 보냈다. 총 삼 주에 걸쳐 세 가지 리포트를 작성해 제출하면서 아이는 기대에 부풀었다 숱한 좌절을 맛보았다.
최종 면접까지 통과해 합격하는 아이들은 스무 명. 그 안에 들 것 같다며 자신에 넘치던 아이는 밤이면 기어이 울고야 말았다.
과제는 생각 이상으로 어려웠고 아이는 내가 해낼 수 있을까, 못 할 것 같아, 너무 힘들어, 망했어, 포기할래를 수도 없이 반복했다.
나 역시 옆에서 격려해주고 지치지 않게 균형을 맞춰 주려 애를 썼다. 그러면서도 아이의 투정과 짜증이 심해지는 날에는 “네가 하고 싶다고 해서 하는 거잖아. 그만 좀 짜증 내고 얼른 집중해!”라며 서로를 더욱 힘들게 하기도 했다.
면접이 며칠 앞으로 다가오니 아이는 더욱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포기하겠다고 말했고 점심을 먹으며 이산화탄소를 모으는 방법을 외우기 시작했으며 저녁에는 다시 안 하고 싶다고 울며 이불에 얼굴을 묻었다. 잠자리에 누워 있는 아이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모든 게 잘 될 거라는 위로뿐이었고 아들은 힘든 하루를 마치기 위해 살며시 눈을 감았다.
아직 어린아이에게 내가 괜히 이러한 수업이 있다는 걸 알려준 걸까. 경험 삼아 도전해 보자고 시작한 일이 이렇게나 아이를 힘들게 할 줄은 미처 알지 못했다.
그렇게 면접 날 아침이 찾아왔다. 밤새 뒤척인 아이는 아침을 싹싹 먹었다. 우리는 공부하던 프린트물과 수험표를 챙겨 교육청으로 향했다.
면접 순서를 기다리면서-
대기석에 앉아 맞은편 벽을 바라보는 아이를 오래도록 눈에 담았다.
지금의 경험이 훗날 더 큰 어른으로 성장하기 위한 밑거름이 반드시 되길 바라면서 말이다. 붙어도, 떨어져도 최선을 다한 경험과 준비하며 공부한 지식은 온전히 너의 것이기에.
힘겨운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와 드디어 끝났다며 오자마자 게임을 켜는 아들. 영락없는 아홉 살의 네가 기특하고 대견했다.
실컷 게임하게 한 하루를 보내고 찾아온 밤.
아이는 또다시 면접에서 실수한 것 같다는 불안이라는 불청객으로 인해 눈물을 보였다.
우선은 자자. 자고 나면 기분이 좋아질 거야. 넌 최선을 다했어. 잘 해냈어.
그렇게 눈을 감은 지 얼마쯤 지났을까. 푹 자길 바랐는데, 아이는 이른 시간에 일어나는 나를 따라 함께 새벽을 보내고 싶었나 보다.
“엄마, 뭐 해?”
“응, 노래 들어. 같이 들을래?”
“응. 무슨 노래”
여기 이어폰 한쪽 껴 봐.
‘어디 아픈 덴 없니. 많이 힘들었지? 난 걱정 안 해도 돼. 너만 괜찮으면 돼. 가슴이 시릴 때, 아무도 없을 땐 늘 여기로 오면 돼. Home, Home, Home.’
“노래 내용 이해가 돼?”
“응. 조금.”
우리는 천장을 바라보고 누워 노래를 들었다.
이어 서로를 안았다.
“다 잘될 거야. 힘내.”
한 뼘 더 성장한 너는 반드시 뭘 해도 잘 해낼 것이라는 믿음이 전해졌을까.
그날 이후 아이는 울지 않고 기분 좋은 날들을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