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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문희 Jun 06. 2023

그녀가 말했다 1

230605


  <그녀가 말했다>(2022)를 봤다. 영화의 장점을 한시간 내내 떠들 수 있겠다. 마음을 흔든 장면 하나만 일단 남겨둔다.

  어슐러 르 귄의 단편소설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 줄거리를 많은 사람들이 안다. 2010년대 초반 대유행한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덕분일 것이다. 가상 도시 오멜라스가 유토피아에 가까운 번영을 누릴 수 있는 배경엔 한 아이의 고통이 놓여 있다는 이야기다. 아이는 지하에 갇혀 나가지도 못한 채 굶고, 보살핌 받지 못한 채 상처를 입고 자신의 배설물 위에서 먹고 잔다. 오멜라스 주민들은 누구나 8~12살쯤 이 사실을 들어 알고 있다. 하지만 진실을 마주한 뒤에도 대다수 주민들은 그 아이의 희생을 받아들인다. 누군가 아이를 돕는다면 도시의 풍요가 사라진다는 조건이 존재하는 탓이다. 다만 몇은 오멜라스를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이전엔 해당 단편의 행위자를 개별 '주민'으로 여겼다. 오멜라스를 하나의 거대한 세계로 상상했기 때문이다. 오늘 <그녀가 말했다> 속 한 여성의 표정을 보며 그 생각을 바꿨다. 미라맥스 전 재무팀장의 부인인 그녀는 뉴욕타임스 기자 메건 투히의 방문을 받는다. 메건은 미라맥스에 제기된 성추행 신고 기록을 조사하던 중 그녀의 남편을 찾아온 참이다. 미라맥스는 하비 ‘와인스틴 컴퍼니’의 전신으로, 메건은 취재 중 16년 여 전 이곳에서 성추행 신고가 있었다는 것을 막 알아냈지만 관련 기록은 캘리포니아주 내부 규정에 따라 파기돼 입수하지 못했다. 간신히 찾아낸 피해자도 가해자와의 합의 탓에 증언을 조심스러워 했다.

  메건은 전 재무팀장에게 묻는다. "합의한 여성은 입을 열지 못해요. 그랬다간 소송당하니까요. 그런 제약이 없는 누군가가 합의금에 관해 말해준다면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사진은 메건의 대사 직후 등장하는 장면이다. "무슨 합의금, 존?" 이후 "생각 좀 해볼게요"라는 전 재무팀장의 답변에 이르기까지 10초 남짓 짧은 쇼트는 불편한 침묵, 그리고 불안과 의심이 담긴 아내의 시선을 담아낸다.

  전 재무팀장이 오멜라스에 살았듯, 아내도 남편의 경제활동이라는 오멜라스에 거주했던 것 아닌가. 자신의 오멜라스가 품은 비밀을 그녀는 마주했고, 조만간 무언가를 선택할 것처럼 보인다. 그 선택이 남편의 변화에 영향을 미치지 않겠는가.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 이상을 말하기 위해선 복수의 오멜라스를 가정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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