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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문희 Jul 29. 2023

사람들은 죽은 유대인을 사랑한다

230729

  주말엔 데어라 혼의 <사람들은 죽은 유대인을 사랑한다>를 봤다. 이런저런 인상깊은 주장과 예화가 많은데, 이 책을 통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미 기사화된 듯하다. 한국일보 최문선 기자의 칼럼을 인용하는 것으로 갈음한다. 제목은 "사람들은 죽은 피해자를 사랑한다"이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받는 유대인이 누구인지 아는가. 미국의 유대인 작가 데어라 혼이 주장한 바에 따르면, 안네 프랑크다.

안네는 나치의 인종학살을 피해 2년간 숨어 살다 발각돼 수용소에서 사망했다. 은신 기간에 쓴 '안네의 일기'는 1947년 출간 이후 전 세계에서 3,000만 권 이상 팔렸고,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은신처 '안네의 집'은 매년 100만 명 넘는 관람객이 찾는다.


나치의 만행을 기록으로 남긴 유대인은 많다. 10대 소녀 안네가 그들의 대표가 된 이유를 혼은 최근 번역돼 나온 책 '사람들은 죽은 유대인을 사랑한다'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책 제목대로 안네는 죽었다. 그래서 피해자의 권리를 찾으려 하지 않는다. 가해자의 사죄, 배상, 처벌도, 진상규명도 요구하지 않는다. 안네의 일기가 불러일으키는 주된 감정은 수동적인 슬픔이다. 미래를 갈망했으나 15세로 삶이 끝나버린 소녀의 비극을 애도하기만 하면 된다. 안네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일은 더 이상 없다.


나치는 600만 명을 학살했으나 안네는 학살에 대해 쓰지 않았다. 아니, 쓰지 못했다. 수용소로 끌려가면서 일기 쓰기를 중단당했기 때문이다. 적나라하고 직설적으로 묘사된 고통은 거북하다. "몸의 모든 구멍에서 체액을 흘리며 산처럼 쌓여 가는 소녀의 시신들"(유대인 생존자 그라도프스키의 수기)을 상상하는 것보단 아무것도 목격하지 못한 소녀를 통해 참상을 짐작하는 쪽이 편하다.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사람들의 내면은 진정으로 선하다고 믿어." 안네의 일기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이 문장을 통해 우리는 마음을 놓는다. 인간은 그렇게까지 악하지 않다, 홀로코스트는 특수한 범죄다, 그러므로 우리에겐 책임이 없다고 자위한다. 안네가 진정으로 선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끌려가기 3주 전에 쓴 문장이라는 것은 알려고 하지 않는다.


요약하자면 안네는 '불편하게 하지 않는 피해자'여서 널리 사랑받는다. 혼의 주장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게도 들어맞는다. 100년 전 단발머리 소녀들의 아픔에는 눈물을 떨구면서 살아남아 할머니가 된 피해자들에겐 냉정해지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할머니들이 불편하게 하기 때문이다.


죽어서 말이 없는 소녀들과 달리 할머니들은 요구가 많다. 끝까지 죗값을 받아내 달라고 한다. 그들의 기억이 역사요 몸이 피해의 장소이므로 참상을 적당히 가릴 수도 없다. 죄책감을 덜어 주지도 않는다. "해결하지 못한 과거는 지금 우리의 책임"이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일깨운다.

불편해하기 싫은 사람들은 과거를 편리하게 편집한다. 할머니들이 충분히 사과받았다고 우긴다. 돈에 눈 멀어서 혹은 못 배워서 거짓말을 한다는 더러운 소문을 사실처럼 퍼뜨린다. 과거를 편집해 이용하려는 사람의 힘이 셀수록 편집은 간편하고 효과도 빠르다.


대선 후보 시절 윤석열 대통령은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를 만나 "일본의 사과를 반드시 이끌어 내고 할머니들이 마음의 상처를 받았던 것을 다 해드리겠다"고 약속했다. 손가락까지 걸었다. 대통령이 된 뒤엔 "100년 전의 일을 가지고 (일본에) 무조건 안 된다 무조건 무릎 꿇어라 하는 이거는 저는 받아들일 수 없다"(워싱턴포스트 인터뷰)고 했다. 둘 중 하나는 편집이다. 어느 쪽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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