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7.29. 고레에다 히로카즈, <그러나 복지를 버리는 시대로>
오랜만에 인디스페이스에 왔다. 기획전인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처음: 초기 다큐멘터리에 관하여>를 보기 위해서였다. 영화제가 아니면 보기 힘든 그의 초기 TV 다큐멘터리 두 편을 볼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러나... 복지를 버리는 시대로>와 <또 하나의 교육> 그리고 송경원 기자의 토크까지 한 번에 다 보려고 둘 다 예매했다. 아내는 흔쾌히 주말을 내어주었다.
두 다큐멘터리는 모두 1991년 후지 테레비의 논픽션 프로그램 <NONFIX>에서 방영되었다. 하나는 정부 관료와 전직 호스티스의 두 죽음을 통해 일본 사회의 그늘을 드러내는 사회파 르포라면, 다른 하나는 송아지를 키우는 초등학교 학생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비교적 밝은 이야기다. (쓰다보니 길어져서, <또 하나의 교육>은 나중에 다시 다뤄 볼 생각이다.)
업력이 쌓인 사람들일수록 자신의 초기 작품들의 한계를 알기에 언급을 꺼리는 경우가 많지만,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예외다. 그는 자신의 원점으로 이 TV 다큐멘터리와 이를 바탕으로 쓴 <구름은 대답하지 않았다>를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나... 복지를 버리는 시대로>는 환경청 기획조정국장 야마노우치 도요노리山內豊德의 자살과 난치병으로 고통받으며 고립된 전직 호스티스 하라시마 노부코原島信子의 자살이라는 두 사건을 통해 당시 일본 사회가 직면한 위기를 그려낸다.
보호과장은 생활보호 행정의 사무처 책임자입니다. 게다가 복지에 대해 쓴 그의 책 두 권에는 생활보호 행정의 어려움이 상당한 페이지에 걸쳐 열정적으로 쓰여 있었습니다. 야마노우치 씨는 후생성에 들어간 이후 30년 동안 일관적으로 복지 행정에 몰두해 온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좌절하여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 -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일, p.69
한 때 문인을 꿈꿨으나 오에 겐자부로에게 밀려 공무원의 삶을 택한 야마노우치는 훌륭한 성적에도 불구하고 성공이 보장된 대장성이 아닌 후생성을 선택할 만큼 신념을 가진 사람이었다. 선한 사람이었고, 경제 발전의 그늘에서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챙겨야 할 임무가 국가에 있다고 믿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국가는 법원의 화해권고에도 불구하고 미나마타병의 책임을 지기를 완고히 거부했고, 심지어 그 거부 의사를 야마노우치의 입을 통해 피해자들에게 전하도록 했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통해 국가가 국민의 고통에 응답하기를 요구했다.
복지를 둘러싼 트러블이 연달아 일어난 아라카와 구에서 취재를 진행하던 중, 마흔일곱 살에 자살한 호스티스의 고백 테이프를 발견했습니다. 테이프에서 그녀는 "여자니까 돈을 벌 방법은 얼마든지 있잖아"라는 말을 복지 사무소에서 들은 일, 월세 4만엔짜리 아파트가 비싸서 어쩔 수 없이 이사해야 했던 일, 입원 중에 생활보호 중지 신청서를 억지로 써야 했던 일 등 자신이 받아 온 '복지'에 대해 적나라하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일, p.68
그의 반대편엔 하라시마 노부코가 있다. 3살에 도쿄 공습으로 부모를 잃은 그녀는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밥벌이를 위해 긴자 캬바레에서 호스티스로 일하게 된다. 언젠가 자기 이름으로 된 바를 내는 것이 목표였지만 30대 중반이 되자 몸에서 이상 증상이 나타난다. 낭성 신장 질환(PKD), 신장에 물혹이 생기는 병이었다. 그를 도와줄 가족은 없었고, 아파서 일을 하지 못하면서 집세가 밀리고 병원비가 밀리기 시작했다. 그녀가 복지 당국에 도움을 요청하기 시작한 때인 1981년, 국가 복지에 거대한 변화가 있었다. 간단히 말하면 신자유주의의 습격이다.
1979년 총리 오히라 마사요시大平正芳는 복지 행정에 있어서 '일본인이 가진 자립, 자조 정신'과 '상호 부조 구조'를 조화시킨다는 방침을 제시한다. 말은 번드르르하지만, 결국 복지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포기하고 싶다는 속내를 비친 것이다. 1982년에 정권을 이어받은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曽根康弘도 자립 자조의 정신을 내세우며 '강인한 문화와 복지'라는 슬로건을 내세운다. 복지를 축소하고,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시대적 흐름이 강화되던 때다.
이 시기 후생성이 발표한 소위 '개혁안'은 노인에 대한 무료 의료 서비스를 축소하는 게 골자였다. 야쿠자 같은 조직폭력배들의 수당 부정수급을 방지하겠다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실제로는 노부코와 같은 사람들에게 '모욕'을 가하는 일을 정당화시켰다.
이 개혁안이 담긴 보고서는 후생성 사회국 보호과장과 감사지도과장의 명의로 발표되었는데, 당시 후생성 사회국 보호과장은 야마노우치였다. 이 보고서는 수급 심사를 엄격하게 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이로 인해 실질적으로는 모자 가정이나 독신 노인들에 대한 생활보호가 주로 끊기게 되었다. 노부코 역시 이 보고서의 여파로 생활보호 조치를 제때에 받지 못한다. 야마노우치는 당시 필명으로 신문에 칼럼을 연재하며 이 보고서의 방향과는 배치되는 방향의 주장을 펼치기도 하고, 이후엔 책을 내며 반대 의견을 표명하기도 했지만 흐름 자체를 막을 수는 없었다.
경제 성장만을 강조하고 그 과정에서 탈락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데 인색한 사회에서 양심을 가진 사람이 살아남기는 어려웠다. 그렇다고 그가 주어진 권한과 역할을 버리고 야인으로 돌아가 완고하게 주장을 펼치는 것만이 답은 아니었을 것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자신이 바라지 않는 방향으로 업무를 진척시키고 그것을 자신의 이름을 걸고 해내야 한다는 사실은 좌절감뿐만 아니라 부채감까지 키웠을 것이다. 하라시마 노부코와 같은 사람들에게 가해진 모욕과 냉소, 그로 인한 사람들의 죽음을 목도하면서 무력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목숨을 던짐으로써 사죄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취재를 시작했을 때에 이미 야마노우치와 하라시마는 사망한 상태였으므로, 그들의 목소리를 직접 싣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라시마의 목소리는 녹음이 남아 있었고, 야마노우치의 경우 보도 화면들이 남아있긴 했지만 일부에 불과했다. 오히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주변 사람들의 말을 통해서 두 사람을 재구성한다. 그 과정에서 사회 자체가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은 아니나, 인물이 부각된다. 증언을 통해 우리는 두 사람이 버텨 온 순간들, 그리고 끝내 사라지는 순간에 몰입하게 된다.
제게는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남편의 죽음일 뿐이지만, 남편의 직업상 아주 공적이며 사회적인 죽음이라는 측면도 있겠지요. 그러니 남편이 인생을 걸고 힘쓴 복지에 대한 방송이라면, 아마 제가 그것에 대해 말하기를 그이도 바랄 거라고 생각해요. - 야마노우치 도모코의 말,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일, p.72
서로는 서로의 존재를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을 한 데 세우는 편집을 통해, 한 스크린에 동시에 놓이면 관객은 그 두 사람의 삶을 뒤틀어 놓은 사회의 모습을 스스로 그리고 채우게 된다. (그러므로 그의 작품에서 '사회'가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사실은 초기부터 확인할 수 있다) 추상적인 사회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통해서 구체화된다. 카메라가 어떤 사회가 좋은 사회인지, 어떻게 우리는 나아가야 하는지를 정해놓고 묻기보다, 부재를 전하는 이야기들을 듣는 데 집중하며 관객이 스스로 채우게 돕는다. 파편적인 경험과 사연들이 그의 영상 건축의 주재료임이 시작부터 드러난다.
야마노우치는 창작시 <그러나>에서 자신을 버티게 만들어 주었던 '그러나'라는 말이 점차 들리지 않게 된 상황에 절망하면서 다시 한 번 그 열정을 되돌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려는 의도를 드러낸다. 다큐멘터리는 그와 같은 '이중적'인 삶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는다. 왜 일을 그만두지 않았는가, 왜 더 강하게 이야기하지 않았는가를 묻지 않는다. 오히려 아내 도모코의 목소리를 통해, 친구들의 목소리를 통해, 익명의 칼럼니스트로서 쓴 글들을 통해 그의 삶이 어떤 굴곡들을 거쳤는지만을 보여준다. 판단은 시청자의 몫이지, PD의 몫이 아니라는듯이.
'우연히 내가 카메라를 드는 쪽이 되었고 당신이 찍히는 쪽이 되었지만, 그로써 만들어지는 작품 혹은 프로그램에서 서로의 노력으로 뜻깊은 공적 장소와 공적 시간을 창출해 나가는 것, 그것이 방송이다'라는 사고방식이 만약 성립한다면, 취재자와 피취재자가 대립하지 않고 같은 철학을 바탕으로 방송을 공유할 수 있습니다. 이상론일 수도 있지만 제가 이 방송을 성립시키는 근거는 거기에 있었습니다. -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일, p.75
독백을 대화로 만들어 내는 일, 그는 다큐멘터리를 통해 자신이 만들어가는 영상의 목표와 의미를 분명히 했다. 그 스스로는 이 과정에서 자신이 저널리스트가 아님을 명확히 깨닫고 극영화로 나아가게 되는 계기가 되었음을 고백하기도 했지만, 아직 방송에 남아 있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언젠가는 독백을 대화로 만들어나가고 싶은 사람의 입장에서, 이 작품을 다시금 마주하게 된 것만큼은 좋은 경험이었다. 입사할 때 방송이 무엇이어야 하냐고 물었을 때, 목소리를 빼앗긴 자들을 위한 귀가 되어야 한다는 이상론을 펼치던 순간이 떠올랐다. 나는 충분히 '귀'로서 살았는가. 끝에 그리하여 다큐멘터리는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君たちは どう生きるか)
이 책의 독자 여러분이 나와 마찬가지로 야마노우치 도요노리라는 사람의 삶과 죽음을 접함으로써 자신과 자기 직업의 관계에 대해, 그 자리에서의 기술 연마 방식에 대해, 그리고 이 시대와 마주하는 방식에 대해 사고를 심화시키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기를 바란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구름은 대답하지 않았다, p.277
<구름은 대답하지 않았다>는 야마노우치의 이야기만 중점적으로 다루지만, <그러나... 복지를 버리는 시대로>는 하라시마가 없었다면 만들어질 수 없었다. 그가 다큐멘터리를 시작하겠다고 마음먹었던 것도 하라시마의 분노하는 목소리가 담긴 테이프를 들었기에 가능했다.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경제 발전의 부산물로서 걸리적거리는 사람들을 시야에서 지워갈 때, 그렇게 지워질 수 없는 삶임을 외친 그녀의 목소리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존재할지 모를 일이다.
스탭스크롤이 올라가기 전 마지막 장면은 그녀의 사진이었다. 그녀는 잊혀진 기원인 셈이다. 무엇을 살리기로 마음먹었는가, 그것이 고레에다의 오늘을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