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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문희 Aug 05. 2023

상식이 기우는 나날

230804

  상상할 수 없던 일이 매일 어지고 있다. 어제(8월3일)는 분당 서현역에서 칼부림 사건이 있었다. 지난달 신림역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난 지 불과 13일 만 일이다. 이런 사건 자체도 충격이지만 신림역 살인사건 피의자인 30대 남성 조선씨가 경찰 조사에서 했다는 말은 더 듣기 괴로웠다. "나는 불행하게 사는데 남들도 불행하게 만들고 싶었다."

  온라인상에선 모방 범죄 예고가 유통됐다. "신림역에서 여성 20명을 살해할 것이다", "잠실역에서 20명을 죽이겠다" 등등. 예고자들은 의정부역, 왕십리역, 모란역, 이대역으로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평상시라면 개소리로 치부하겠으나 대다수 시민을 공포스럽게 한 사건 직후 아닌가. 경찰이 당장 수사에 나섰다지만 안심이 되지 않는다. 길거리에서 괜히 주절거리거나 소리지르는 사람들마저 어쩐지 두려워진 요즘이다.

  실은 이런 이상행위자들만 무서운 게 아니다. 멀쩡해 보이는 사람들에게서도 기이한 말과 행동이 나온다. 오늘 하루 벌어진 일들만 간단히 정리해 본다.


JTBC 뉴스룸이 8월4일 저녁 공개한 분당 서현 흉기난동 피의자의 모습. JTBC는 이 장면 직후 화면엔 피의자 이름과 나이를 적시했다.


1.

  "먼저 이번 사건을 저지른 피의자의 신상을 전해드리겠습니다. 이름은 000, 0000년생 00살입니다. 아직 경찰이 신상공개 여부를 결정하지 않았지만, 저희 뉴스룸은 국민의 알 권리, 또 범죄 예방 효과를 고려해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JTBC가 4일 저녁 뉴스룸에서 서현역 흉기 난동 사건 피의자 신상을 공개하며 한 말이다. 내가 000으로 표기한 부분에 JTBC는 피의자 이름, 생년, 나이를 적시했다. 국가기관인 경찰이 별도의 신상공개심의위원회에서 강력범죄 피의자의 신상공개 여부를 결정하기도 전에 언론사가 마음대로 공개한 것이다.

  신상공개심의위원회란 기구가 설치된 근거를 보면 JTBC의 이 결정이 얼마나 황당한지 알 수 있다. 강호순의 연쇄살인사건이 논란이던 2009년 조선일보와 중앙일보가 강씨의 얼굴을 앞다퉈 공개한 것이 설치 계기였다. 언론이라도 자의적으로 얼굴 및 신상을 공개해선 안된다는 게 당시 합의였다. 미국처럼 강력범죄 피의자의 신상 공개를 언론의 자체 판단에 맡기는 사례도 없지 않으나 언론 공개에 따른 우려점을 숙고해 찾은 중간지대였다.

  무죄 추정의 원칙이 기본인데 재판 결과가 나오기 전 신상 공개가 타당하느냐는 물음이 일단 있었다. 실제 신상공개됐던 모씨의 범죄사실 대부분이 이후 혐의없음으로 판단돼 불기소에 이른 사례가 존재했다. 피의자 신상공개에 따른 연좌제 우려도 컸다. 게다가 대부분 범죄 연구자들은 흉악범죄자의 신상공개가 범죄 예방엔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것으로 분석한다. 신상공개 필요성이 논의될 만큼 끔찍한 범죄에 이르는 이들이 신상공개를 신경쓰겠는가. 돌팔매질이 무서운 이들은 흉악 범죄를 저지르지 못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기준을 JTBC가 허문 것이다. 조두순 출소 날 '참교육' 명목을 내세웠던 유튜버들과 다른 점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2.

  보건복지부는 이날 '정신질환TF' 구성 계획을 발표했다. "일련의 '묻지마 폭력·살인'으로 인한 국민 불안을 최소화하고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관계부처 합동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제도개선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취지에서다. 분당 서현역 흉기난동 사건 피의자 최모씨의 진술("특정 집단이 자신을 스토킹하고 괴롭히며 죽이려 한다")과 정신의학과 진료 및 '조현성 인격장애'(분열성 성격장애) 진단 이력을 고려한 접근이란다.

  이같은 방식으로 정신질환자에게 낙인찍는 것이 더 문제라는 지적은 오래 전부터 나왔다. 범죄 예방 효과부터 의문이다. 오히려 사회적 배제가 범죄 동기를 더 키우는 계기일 수 있다. 보편적 인권에는 당연히 반한다.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가둬두어야 하나? 나도 거리에서 '이상한 사람'을 보면 무섭다. 하지만 아직 저지르지 않은 일을 이유로 그들을 감금해야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과거 형제복지원이니 선감학원이니 하는 정화시설이 다 이런 논리에서 정당화됐다. 정신질환자들과 어떻게 더불어 살 것인지로 논의 초점이 이동하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그 고된 진전을 지금 정부가 앞장서 무너뜨리게 된 것이다. 걱정스럽다.


3.

  최승호 전 MBC 사장은 이날 페이스북에 '공영방송 장악 문제가 흉기 난동·잼버리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취지의 글을 적었다. 전체 워딩은 "윤석열 대통령이 공영방송 KBS와 MBC를 동시에 장악하려는 불법, 탈법적인 시도를 하고 있는데 언론보도를 보면 한가하기 짝이 없다" "분당 흉기 난동이나 잼버리, 폭염 같은 사안도 국민이 알아야겠지만, 공영방송 장악 문제는 그것보다 훨씬 중요한, 우리 사회의 근본을 완전히 파괴하는 문제다. 중요도로 따지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하다"이다.

  흉기 난동 결과 사람이 죽고 다쳤다. 시민들은 누가 언제 어떤 방식으로 범죄를 저지를지 몰라 불안해하고 있다. 잼버리 행사 중 수십명 아이들의 온열질환으로 이어졌고, 세계에서 찾아온 이들뿐 아니라 대한민국 시민들이 국가 시스템을 불신하는 계기로도 나아가고 있다. 이게 작은 일인가.

  나 역시 공영방송 장악 문제가 작은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나, 사람이 목숨을 빼앗긴 일과 비교해 더 큰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더 작은 일이란 뜻이 아니라 서로 비교할 대상이 아니라고 본다. 왜 비교를 해야하나. 오랜 기간 방송 프로그램을 만들고 방송사 사장까지 지내셨다는 사람이 이정도 균형감과 양식도 없나.


  표준국어대사전은 '기울다'라는 동사의 뜻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1.비스듬하게 한쪽이 낮아지거나 비뚤어지다. 2.마음이나 생각 따위가 어느 한쪽으로 쏠리다. 3.해나 달 따위가 지다. ..." 다들 어느 한쪽으로 쏠려서 그러는 것인가. 모르겠다. 다만 내가 속한 업계 내지 사회의 규율과 신뢰를 보내던 대상의 태도가 해나 달처럼 저물어가는 느낌만은 분명하다. 상식이 기운다.





p.s.

  웹툰 작가 주호민씨가 자폐증을 지닌 자녀를 학교에 보내면서 가방에 녹음기를 넣고, 여기서 얻은 증거를 토대로 교사를 신고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었다. 서이초등학교 선생님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과 비슷한 시기의 일이었다. '서이초 사태' 원인은 학부모의 악성 민원 내지 갑질로 추정됐다. 주씨 사건에서도 비슷한 정황이 엿보였다.

  여론은 주씨를 악성 부모로 몰았다. 사건의 실체가 파악된 바 없는데도 그런 일이 벌어졌다. 주씨 자녀가 특수교육이 필요한 아동이란 맥락은 특별히 고려되지 않았다. 오히려 자폐증세를 일종의 '진상' 비슷하게 보는 듯했다.

  특수교육 관련 칼럼 하나를 인용해 둔다. 주씨 사건의 실체가 어떻든, 그와 별도로 고민해볼 문제라고 생각한다. 나는 주씨 사건과 서이초 사태를 구분해서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서이초 사태가 덜 심각해서가 아니라, 주씨 사건의 쟁점이 더 복잡하기 때문이다. 섬세하게 보지 않을수록 더 폭력적이 되기 때문이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469/0000751843?sid=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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