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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문희 Oct 24. 2023

마르틴 베크를 빙자한 요즘 얘기

231024

  저녁에 마르틴 베크 시리즈 7권 <어느 끔찍한 남자>를 읽고 있다. 원래는 저녁 약속이 있었는데 불가피하게 취소하면서 시간이 났다.

  평소 차지도 않는 손목시계를 하나 구입한 것이 계기였다. 영화 <패터슨>에 나온 시계로, 반복되는 노동 한복판에 시적인 것을 안고 사는 주인공에게 꽂혀 구매했다. 막상 토요일에 배송온 걸 보니 스틸 줄이 영 맘에 안들었다. 크기도 크고 재질도 구렸다. 대략 4만원 짜리라 부담없이 해체 수순에 들어갔다.


영화 <패터슨>에선 이런 시계(왼쪽)였는데 말이죠...


  문제는 내가 시계를 수리해 본 적 없다는 것. 시계줄도 갈아끼워본 적 없는 주제에 유튜브니 블로그니 찾아보지도 않고 그냥 만지작대다 사이 났다. 시계 본체를 꽉 물고 있는 브레이슬릿 접합부를 벌리려고 집에 있던 칼을 가져다 낑낑대다가 삐끗하면서 몸을 베었다. 상처는 자체킄 크지 않았으나 주말 내 낫지 않 점점 벌겋게 불고 진물이 났다. 마침 오늘 오전 오프여서 정형외과에 갔더니 대충 이런 문답.


"이물질은 안 들어갔나요"

"네"

"칼 녹슬진 않았나요"

"어, 아무래도 최대한 낡은 칼을 쓰긴 했죠. 물건 수리 때 쓰는 거니..."

"파상풍 예방접종은 했나요"

"음... 기억에 없습니다"

"소독은 했나요"

"집에 약이 없어서..."


  젊은 의사 선생님은 고개를 살살 젓더니 곪은 부위를 째 소독부터 하자고 제안했다. 진물을 뺀 뒤 소독을 다시 하고 파상풍 약, 항생제를 투여하고 나니 열이 오르고 몸살 기운이 돌았다. 회사에 재택 근무를 청하고 간신히 일을 마쳤다. 그리고 대충 멍때리다 보니 지금.


대충 이런 느낌(아님). 출처 : 네이버 블로그


  브런치 글은 이따금 쓰지만 책과 영화는 꾸준히 보고 있다. 시간이 꽤 있을 땐 종이책을 보고 이동 중엔 '밀리의 서재'로 짧은 글을 읽는 습관을 어느 정도 정착시켰다. 최근 온라인으로 본 책은 대부분 대만 지식인(?) 양자오의 원전 해설서. 마르틴 베크 시리즈 덕에 <추리소설 읽는 법>을 오랜만에 찾아 봤다. 쉬운 글인데 추리 장르의 기원과 변화를 잘 정리해 머리가 맑아진 기분이었다. 영화는 지난 주 <양들의 침묵>을 다시 봤고, 새로이 <프리 가이>를 시청했다. 둘 다 너무 잘 만든지라 감탄감탄.

  취향이 점점 강해지는 걸 느낀다. 예전엔 이도저도 다 좋았는데, 요즘엔 소설이든 뭐든 명료하고 현실을 반영한 글이 잘 읽힌다. 같은 범죄, 추리물이라도 최근 읽은 아베 고보(<불타버린 지도>)는 영 와닿는 데가 없었던 반면 마르틴 베크 시리즈는 새벽 늦게까지 집중해서 읽었다. 영화는 창의적이다 못해 추상적인 영상도 여전히 볼 맛 나는데, 어쩐지 내가 수동적인 인간인가 의문이 든다. 글을 토대로 내가 이론을 짜맞추고 그림을 그리는 일은 버거운 반면 영상은 화면에 뜬 걸 받아들이고 해석하기만 하면 되니까 그런 것 아닌가 싶은 게다. 음, 강해진 게 아니라 협소해진 것인가.

  마르틴 베크 시리즈는 이제 세 권 남았다. 원서는 열 권인데, 한국어 번역본이 아홉 권까지 나온 상황. 다 읽기고 나면 마지막권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할텐데, 그럴 자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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