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1.06. 김인정. <고통 구경하는 사회>
근 한 달만에 뭔가를 읽은 것도 처음이고, 끝낸 것도 처음이다. 김인정의 <고통 구경하는 사회>를 읽으며 프로그램 촬영을 위해 취재를 다니던 날들을 하나씩 떠올렸다. 그리고 그 때마다 차마 묻지 못했던 - 아니면 깜냥이 되지 않아 묻지 않았던 - 질문들이 되살아났다.
고통을 팔아야 살 수 있는 일을 하면서, 고통을 판매하는 일로부터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그러한 판매의 공익적 가능성을 '믿어야'하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하면 '부작용' 없이 고통을 판매할 것인지를 배우고 다듬어왔던 시간들을 곱씹는다. 나는 고민을 끝까지 밀어붙였던가?
끝까지 밀어붙이면, 무너질 것 같아서 그만두었던 질문들이 되살아났다. 끝까지 밀어붙인 질문들이 절망으로 끝나지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믿음과 희망으로 끝나는 이 책을 읽으며, 그 때 끝내지 못한 질문들을 이참에 좀 마무리 지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다짐을 하니, 문장을 쓸 힘이 생겼다.
최근에 계속 글을 쓸 수 없었던 건,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삶의 궤적을 더듬어 보면서, 그 숱한 기회들에도 불구하고 나는 '답습'을 선택했다. 하던 대로, 그래서 남들에게 욕을 먹지는 않는 방식을. 하지만 그래서 남은 것이 뭔가? 보여줄 이유가 없는 삶이었다.
그래서 주저했다. 바쁨은 핑계에 가까웠고, 사실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자신을 포함해 저널리즘 전반에 대한 고민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글을 읽으면서도 죽어있기는 어려웠다. 과거를 인정하고, 과거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방식이 내가 다시 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 책은 이태원과 같은 최근의 비극으로부터 시작해서 매일 반복되지만 그렇기에 뉴스거리가 되지 못하는 산업재해들을 지나, 이제는 울지 않으면 반응하지도 않는 5.18과 같은 고통스런 사건들을 관통하며, 어떻게 하면 다시 사람들이 행동에 나서게 할 것인지를 묻는다.
고통은, 전시하는 이들로 하여금 고통스러운 윤리적 질문을 거치도록 만든다. 이것은 구경인가, 아니면 새로운 변화를 이끌기 위한 환기인가. 그것은 사전에 결정되는 게 아니라, 고통을 전시한 이후에 벌어질 상황에 달려있다. 우리는 구경꾼의 자리를 벗어날 마음이 있는가?
파는 사람의 자괴감, 자기 정당화, 또한 사회적 파급력 등 '고통'을 전시하며 생을 이어가야 하는 저널리스트가 거쳐야 할 고민들이 담겨 있다. 그 과정을 어설프게나마 지나왔던 나로서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 때 제쳐두었던 질문들에 명확히 답하길 요구받는 느낌이었다.
앞으로의 시간은 그 질문들에 대답하는 과정이 되어야 할 거라고, 책을 덮기 전에도 어렴풋이 가늠했다. 완전히 읽고 나니, 이제 그것은 벗어날 수 없는 책임처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