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태극기 부대'를 모른다

꼬다리

by 조문희

※2021년 12월15일 주간경향 온라인판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 병원 앞 육교에서 촬영한 도로. 이곳 육교 앞뒤로 272, 470, 750A 등 버스가 지나는 정류장이 자리해 있다. 직접 촬영


지난달 26일 밤 서울 이화여대 후문 인근에서 웬 할머니의 도움 요청을 받았다. “제기동 가는 버스는 어디서 타야 돼? 집 가야하는데.” 마스크 탓에 할머니 나이는 짐작하기 어려웠다. 다만 걸음걸이로 보아 그녀가 버스로 50분 남짓 짧은 거리를 오가면서도 꽤 고난했을 거란 추정은 가능했다. “저 어차피 가는 길이에요. 모셔다 드릴게요.” 그녀는 천천히 걸으며 ‘전두환 장군’의 빈소에 들렀다가 돌아가는 길이라고 말했다. 전 대통령 전두환씨가 사망한 지 4일째 되는 날이었다.


“전두환 장군 때는 대한민국이 참 살만했어. 경제도 좋았고. 길거리에 질서도 있었고.” 걸음이 느린 대신 할머니는 말이 빨랐다. 내 걸음으로 3분이면 도착할 버스정류장까지 10분을 넘게 걸어가면서 근현대사 교과서 한 챕터를 넉넉히 읽은 듯했다. 차마 ‘네’라고 할 수 없어 ‘아’ ‘음’ ‘하하’로 대답을 대신하다가 문득 몇 마디 말에 짜증이 훅 일었다. “5.18 그것도 생각해보면 격변기에는 다 사람이 죽고 그러는 거야. 죽은 사람은 안됐지만.”


“할머니 가족 일이 아니라서 쉽게 말씀하시는 거 아녜요?” 순간 참지 못하고 질문을 던진 뒤 후회했다. ‘이런’ 노인들은 어차피 말이 안통하는 존재 아닌가. 방금 전까지 “젊은 사람들이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된다”고 말했던 걸 보면, 조만간 야단이나 설교가 쏟아지겠구나 싶었다. 할머니 반응은 의외였다. “내 아들도 죽었어.” 충격에 멍해진 귓불 너머로 김대중 때, 생활고, 아팠다 등등 단어가 아득했다. 신호등이 바뀌자 그녀는 버스를 타러 중앙차선을 건넜다. ‘고맙다’는 말에 내가 뭐라고 답을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자 일을 하는 동안 소위 ‘극우’ ‘태극기’ 등 단어로 분류되는 노인들을 많이 봤다. 2년 전 개천절·한글날 열린 ‘문재인 하야’ 집회에서, 코로나19 확산 우려가 컸던 지난해 광화문에서, 매년 퀴어퍼레이드 반대 집회에서 그들은 모습을 드러냈다. 전씨 사망 후 빈소를 찾은 유튜버와 지지자 사이에도 그들은 있었다. 어떤 말을 하는지도 듣기 쉬웠다. 마이크, 확성기를 들거나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으니까.


하지만 나는 정말 그들을 알고 있나. 돌아보면 취재 때마다 그들에게 던진 질문은 “집회에는 왜 나오셨어요?” 같은 피상적인 것이었다. 당장 마감이 급했으니 기사에 인용할 ‘워딩’을 구한 것이지만 그뿐만은 아니었다. ‘지겹다’는 생각이 그들의 말을 채 듣기 전에 먼저 자리했던 것이다. ‘빨갱이’, ‘망국’, ‘동성애 반대’처럼 추상적인 단어가 지배하고 요점이 없는 그들의 말을 듣는 일은 괴로웠다. 그래도 ‘이 사람을 알고싶다’고 생각했다면 어떻게든 대화를 이어갔을 것이다. 죽어간 이들에 무감했던 할머니가 옳다고는 지금도 생각 않는다. 다만 그 삶에 굴곡이 없었을 거란 내 짐작도 섣부른 건 아니었을까.


며칠 전 ‘탐사보도 전문’을 표방하는 매체 ‘셜록’에서 우연히 <태극기 아이돌을 아십니까>라는 기획을 봤다. 기사는 태극기 집회에서 노래 부르는 이들의 거주지, 일터를 찾아 그들 삶과 꿈을 듣고 담았다. 작성자는 이승우라는 이름의 ‘교육생’이었다. 기자 직함으로 나는 뭘 취재하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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