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이 없거나 의도가 있거나

꼬다리

by 조문희

※2022년 2월23일 주간경향 <꼬다리> 코너 온라인판에 연재된 칼럼입니다. 데스킹 이전의 초고를 올립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을 찾은 건 지난달 10일이었다. 기사는 그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면담하며 “여성가족부 없으면 저희가 죽는다”고 말한 데 초점을 맞췄는데, 나는 기사 작성보다는 다른 데 신경이 쏠려 있었다. ‘할머니’가 그를 지칭하기에 적절한 호칭일까. ‘위안부’라는 수식은 합당한가.


할머니 호칭이 내게는 식당에서 일하는 중년 여성을 ‘이모’라고 부르는 것과 다르지 않아 보였다. 그가 ‘할머니’ 호칭을 원치 않을 수도 있다. 특히 기사를 쓸 땐 나이를 불문하고 사람을 ‘씨’라고 부르라고 배웠다. 가장 가치중립적으로 어떤 인물을 표현하는 단어이기 때문티다. 표준국어대사전도 의존명사 ‘씨’를 “사람의 성이나 이름에 붙여 그 사람을 높이거나 대접하여 부르거나 이르는 말”이라고 정의한다.


그렇다고 ‘씨’를 고집하기엔 요즘의 언어 관습이 마음에 걸렸다. 일상적으로 ‘씨’는 나이나 지위가 발화자와 동등하거나 낮은 사람에 대해 쓰이지 않나. <한겨레>도 이 정권 초기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을 ‘여사’가 아닌 ‘씨’로 불렀다가 논란에 휩싸인 적이 있다. 고민 끝에 찾아본 ‘경향신문 기사 표기 원칙’은 “나이에 따라 적절한 호칭을 쓴다”며 만 70세 이상 인원에 대해 ‘할아버지/할머니’라는 예시를 들었다. 이번 기사에서 호칭으로 ‘할머니’ 단어를 사용한 이유다.


‘위안부’ 호칭은 어떨까. 시민사회단체는 한때 ‘종군위안부’ 단어에 맞서 ‘성노예’라는 명칭을 고민했다. 이전까지 사용된 ‘종군위안부’가 듣는 이들로 하여금 피해자를 자발적으로 따라간 존재로 인식케 할 수 있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이용수 할머니는 2020년 기자회견에서 성노예 명칭에 거부감을 표현했다. 당사자가 “그 더러운 성노예 소리를 왜 하느냐”고 반발하는데 시민단체가 굳이 그 용어를 고집하는 건 무리였다.


내가 속한 회사는 ‘위안부’ ‘위안부 피해자’란 단어를 기사에 써왔다.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를 정의한 정부의 피해자 지원 법률을 따른 것으로 짐작한다. 일제가 ‘위안부’라는 용어를 부러 만들며 여성을 성적으로 동원한 당대 상황을 잘 보여준다는 강점도 있다. 나는 특수성을 드러내 부러 쓴 말이라는 취지에서 작은 따옴표를 붙여 ‘위안부’라고 적었다. 그래도 확신이 들지 않아 남들은 어떤 용어를 썼는지 포털사이트에 검색했다. 검색 결과는 아찔했다. 일부 매체의 기사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 호소인”이란 조어가 보였다.


“어떤 사안을 어떤 단어로 표현할 때는 늘 충분히 고민해야 한다. 말은 존재를 정확히 드러내기도 하지만, 문제의 본질을 희석시키기도 한다.” 학부 때 청강한 사회학 수업에서 선생님은 베트남전, 이라크전, 한국전쟁 당시 노근리 등에서 미군이 벌인 학살을 예시로 들며 물었다. 민간인 학살인가, 부수적 피해인가. 후자는 죄 없는 시민의 죽음을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만든다. 책임을 회피하려는 미군의 꼼수이다. ‘피해 호소인’이란 말은 어떨까. 정치권에서 그 단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2020년 7월,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사망 직후 여당에 의해서였다. 고민이 없던 것인가 의도가 있던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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