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와 불신 사이

꼬다리

by 조문희

*2022년 11월9일 주간경향 온라인판에 게재한 글입니다.


2022년 11월 1일자 경향신문 지면 갈무리


현재 시각 11월 1일 화요일 오후 6시43분. 작성을 마친 글을 지우고 새로 이 글을 쓴다. 주간경향 칼럼의 마감 시점은 수요일. 온라인에는 다음주 수요일이나 돼야 풀린다. 지금 써도 독자들은 오는 9일에야 글을 읽게 될 것이다. 그때는 상황이 어떻게 바뀌어 있을지 모르겠다. 다만 기록을 위해 쓴다. 이 공동체를 비탄에 빠뜨린 사건과 그에 대한 반응, 책임 회피, 며칠 사이 뒤바뀐 사실관계에 관해.


지난 29일 밤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서 156명의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밤새 카카오톡 단체채팅방의 알림과 전화가 끊이지 않았다. 가족은 “이태원 가지 않았니”라고 물었고 친구들은 “넌 괜찮냐”고 물었다. “집이야”라고 답하면, “대체 이게 무슨 일이냐”는 한탄이 이어졌다.


그 와중에도 ‘누구 책임이냐’는 물음은 쉽사리 나오지 않았다. 비극이 벌어졌는데 잘못한 이는 보이지 않았다. 경찰과 소방당국에 따르면 이태원 참사 직전 119에 첫 신고가 들어온 시각은 그날 밤 사고 발생 시각으로 추정되는 10시15분이었다. 경찰·소방의 출동이 늦은 것이 당연해 보였다. 더구나 핼러윈은 축제 등 행사가 아니고 자발적 인파가 모인 곳이었다. 안전 관리 의무를 가진 주체가 없는 ‘사각지대’였다. 왜 미리 관리하지 않았느냐고 따지기도 어려운 듯했다.


그래도 답답했다. 경찰청장의 소속 상관이자 재난 대응 책임자인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30일 긴급 브리핑에서 “경찰이나 소방인력을 미리 배치해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다음날 오전 서울광장에 마련된 사망자 합동분향소를 찾았을 때도 “경찰·소방 인력 배치 부족이 사고의 원인이었는지 의문이 든다”고 했다.


책임자 규명을 외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있었지만, 여당은 “지금은 애도의 시간”이라고만 했다. 한 의원은 식사자리에서 이 장관에 대해 “정치적인 감각이 없는 것”이라며 “법적 책임 유무는 나중에 따지면 될 일이고, 일단은 사태가 벌어진 데 대해 국민들에게 공감과 유감을 표현해야 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비판 같지만 기실 법적 책임은 묻기 어렵다는 뜻이었다. 이 장관이 “사과”라는 단어를 입에 올린 건 참사 발생 4일째인 이달 1일 오후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현안보고에서였다.


그리고 이날 오후 늦게 경찰의 ‘112 신고 접수 녹취록’이 공개됐다. 처음 신고가 접수된 시각은 29일 오후 6시34분으로, 119 최초 신고 시각이라던 10시15분보다 4시간 가량 빨랐다. 신고자는 “해밀턴 호텔 골목 이마트24”라며 “그 골목이 지금 사람들하고 오르고 내려오고 하는데 너무 불안하다”고 했다. “압사당할 것 같다”고 했다. 경찰의 답은 “알겠습니다. 확인해볼게요”였다. 비슷한 신고가 10시 11분까지 총 11건 이어졌다. 경찰은 한결같이 “알겠습니다” “출동해볼게요”라고 답했다.


ㅠ이 장관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할까. 사람을 살릴 수 있던 기회가 4시간 있었다. 29일부터 1일까지 4일 동안 사과할 수 있었지만 말을 아꼈다. 때늦게 사과했지만 믿음이 안 간다. 녹취록 공개 직전에야 한 사과를 면피용이 아니라고 생각할 사람 얼마나 될까. 그 사이 경찰 수사는 사건 현장에서 ‘토끼 머리띠를 한 남성’과 5~6명 무리들이 사람들을 단체로 밀었다는 의혹에 집중됐다.


이 글이 온라인과 지면에 실릴 때쯤엔 상황이 어떻게 바뀌어 있을지 짐작도 되지 않는다. ‘또 뭐가 있으려나’ 궁금하다가 ‘분명히 또 있겠지’ 한다. 체념적 예측이다. “알겠습니다”라는 답에서, “애도의 시간”이라는 일축에서 “가만히 있으라”던 2014년의 안내방송이 떠오른다. 참담하다. 슬픔만으로 버거운 때에, 불신을 어떻게 치유할까 물어야 하니.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입시를 마친 당신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