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문희 Dec 03. 2022

가슴이 뻐렁친다

221203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카카오톡 단체채팅방에 메시지 400여건이 쌓인 것을 봤다. 한국이 월드컵 16강에 진출했다는 소식이었다. 채팅방 메시지 8할이 환성과 기대였다.


22년 12월 3일지 한겨레 1면. 스크랩마스터 캡쳐.


  지난 밤 같이 술을 마신 후배가 '뻐렁친다'는 표현을 쓴 것이 기억났다. 맥락상 '웅장해진다'는 말과 비슷하겠거니 짐작했지만 표준어인지 여부는 딱히 묻지 않았다. 새삼 궁금해 네이버에 검색하니 역시나 아니었다. 잡지 마리끌레르의 인터넷판 기사가 해당 서술의 기원을 다루고 있었다. 어디까지나 추정이라는 단서와 함께. 첫 용례는 "가슴이 '뻐렁쳐' 부풀어 오른다".


https://www.marieclairekorea.com/lifestyle/2020/08/the-origin-of-the-world/


  뒤늦게 본 포르투갈전 마지막 장면은 놀라웠다. 후반전 추가 시간에 역전골을 집어넣다니. 어젯밤 잠들기 전 78분까지 봤나. 졸음을 못이기고 잠든 것이 후회스러웠다. 골 장면을 담은 하이라이트 영상을 몇 번이고 돌려봤다. 와, 손흥민 드리블 봐라. 황희찬 침투력 무엇. 가슴이 뻐렁쳐, 손흥민, 황희찬, 김영권 같은 선수의 이름을 검색창에 연신 두들겼다. 국민영웅 호날두와 함께.

  친구들도 다들 신났던 모양이다. 대한민국 주민등록증, 여권, 국가대표 증명사진과 단체사진에 호날두 얼굴을 합성한 사진이 채팅방에서 인기였다. '등어시스트'가 고마워서라고 하지만, 조롱의 의미가 더 커 보였다. 언론 보도를 보니 기자들도 신이 났다.


  "3년 전 ‘노쇼’ 파문으로 한국 축구팬 마음에 큰 상처를 남겼던 포르투갈의 세계적인 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무소속)가 한국의 월드컵 16강 진출 도우미가 됐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32/0003190493?cds=news_edit


  밤에는 웹소설 '재벌집 막내아들'을 봤다. 약육강식의 정글 같은 세계관. IMF 구제금융은 주인공이 더 많은 부와 기업 내 지분을 얻는 계기일 뿐. 이런 자본주의판 궁정 드라마가 인기를 끄는 게 신기했다. 근데 왜 재밌지? 실은 축구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평소엔 올림픽이고 월드컵이고 별 관심 없는 내가 왜 가슴이 뻐렁치느냐. 이상한 기분에 '상상의 공동체'니 '일상적 국민주의'니 하는 책들의 제목과 국가주의의 미시적 재생산 같은 외계어를 네이버에 쳐보게 되는 것이다...

  친한 선배 결혼식이라도 다녀왔으니 그나마 도리는 하고 살았다 싶다. 말 배우고, 놀고. 입학 전 아동 같은 하루가 지나간다.

매거진의 이전글 '복사집'의 기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