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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학준 Dec 03. 2022

'복사집'의 기억

22.12.03. 이경혁, 현질의 탄생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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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모임을 앞두고 <현질의 탄생>을 마저 읽는다. 어렸을 적 기억들을 새삼 떠오르게 만드는 내용이라 막힘없이 읽힌다. 저자가 불법복제 시기에 대해 서술한 4장을 읽는다.


1990년대 유년기를 겪었던 사람은 대부분 알텐데, '복사집'이라는 게 있었다. 들어가면 한편엔 동전을 넣고 즐길 수 있는 컴퓨터가 늘어서 있고, 다른 한 편엔 게임의 이름과 용량이 빼곡히 적힌 목록이 꽂혀 있는 카운터가 있었다. 당시 CD의 용량은 650MB이라, BGM처럼 게임 실행에 필수적이지 않은 요소를 전부 제외하여 용량을 줄인 립버전 게임들을 적게는 한 두 개, 많게는 십여 개 가까이 우겨넣을 수 있었다. 용량에 맞춰 목록을 작성하면, 아저씨는 CD를 '굽기' 시작했다. 그 사이 아이들은 동전을 넣고 컴퓨터에서 스타크래프트를 즐겼다. 지금 생각하면 그 게임도 아마 립버전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놀다가 15분 정도 지나면 아저씨는 따끈따끈한 CD를 게임 표지를 복사한 종이를 끼워 둔 케이스에 담아 우리에게 던져줬다. 이게 어디 지하에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라, 신도시 상가 한 복판에서도 일어나고 있었으니 게임 회사들이 제대로 돈을 벌 수 있었을 리가 만무하다.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죄책감을 지우기 위해 재발매된 고전 게임을 사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불타는 로마 아니 백업 CD 너 참 아릅답다...


아케이드 게임기처럼 기판에 소프트웨어가 아예 이식되어 있어서 복사하거나 분해하기도 어려웠던 시대와 달리, 가정용 게임기의 카트리지나 CD/플로피 디스켓은 복제 난이도나 비용이 상당히 저렴했다. 제작사들은 계속해서 복제 방지책을 개발했지만, 대부분의 복제 방지 기술은 우회 가능했다. 공CD나 플로피 디스크가 비싼 것도 아니었고, 컴퓨터 보급도 활발하게 이루어진 상태라 조금만 공부를 하면 손쉽게 집에서도 복사를 할 수 있었다. 과거에도 게임에 돈을 지불하지 않으려는 욕망들은 있었겠지만, 기술과 도구가 갖춰지니 본격적으로 이를 시도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이다. 특히나 해외의 게임들을 정식 수입하는 데 약간의 시간적 틈이 있었던 터라,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자리잡지 못한 상태로 불법 복제는 일상으로 파고들었다. 소비 문화라는 게 한 번 만들어지면, 그것이 부도덕하다고 여긴다 한들 손쉽게 변하진 않는다. 여기에 PC통신까지 활성화 되었으니 불법 복제된 게임에 대한 정보를 구하기가 그렇게 어렵지도 않았다. 


발표일이 97년 3월인데 11월에 번들이 (출처 :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504186 )


여기에 본격적인 장작을 땐 것이 게임 잡지들의 경쟁이었다. 잡지의 영향력이 줄어드는 데 따른 고육지책이었겠지만, 경쟁이 심해지면서 발매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게임도 부록으로 제공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대체 누가 게임을 제 돈 주고 사려고 할까? '복돌이' 이미지는 잠깐이고, 싼 가격에 게임을 즐기는 기쁨은 영원하리라는 믿음이 형성될 수밖에 없다. 게임을 제 돈 주고 샀던 나는 꽤 억울했다. 그거 복사집 가면 몇 천원에 구할 수 있는 건데, 그걸 3만원을 주고 산다고? 와레즈 사이트에서 다운 받으면 공짜인데 그걸 5만원 주고 샀단 말야? 


그런 '야만'의 시대를 헤쳐 온 오늘날의 중년게이머들이 게임 소비의 중심축을 형성하고 있으니, 온라인 게임들에 프리 투 플레이Free to play 시스템이 정착된 것도 당연해 보일지 모른다. 게임에 비용을 지불할 마음이 없는 게이머들에게 소구하려면, 일단 게임 자체는 공짜로 하게 해줘야 눈이라도 돌릴 것이니까. 하지만 땅 파서 장사하는 게 아닌 이상, 매출은 어떻게든 확보를 해야 했다. 그럼 어떤 방식으로 이 짠돌이 게이머들의 주머니에서 돈을 꺼낼 수 있을까? '온라인' 시대에 본격적으로 돌입하면서, 게임 제작사들은 새로운 게임 결제 방식을 찾아낸다. 그게 뭐냐? 그거 5장 읽어야 하는데 아내가 집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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