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202
"3월의 나는 도무지 나란 사람을 견디기가 어려웠다. 너무 성급한 나. 조급한 나. 나약한 나. 연약한 나. 친절한 사람에게 나 자신의 순간적인 기분을 이기지 못하고 함부로 대해버린 나. 어떻게든 관심을 얻고 싶은 마음에 비굴하게 행동해버린 나. 무엇도 믿지 못하고 끊임없이 의심하는 나. 한편으로는 너무 쉽게 마음을 주는 나. 너무 쉽게 타인을 깎아내리는 나.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해버리는 나. 충동적인 나. 너무 많은 말. 너무 성급한 행동. 작은 호의를 큰 마음으로 오해한 것. 타인에게 지나치게 기대려 한 것. 너무 많은 것을 멋대로 기대하고 서둘러 실망한 것. 그 밖에 수없이 많은 한심한 나. ... 알고 지내던 누군가가 나에게 말한 적이 있다. “넌 싫어하는 게 왜 그렇게 많아?” 그 말을 한 그 사람을 용서할 수 없었고, 결국 삶에서 밀어내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그의 말이 맞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알고 있어서 용서할 수 없었다. 3월은 마치 그때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노력하면 할수록 내가 얼마나 엉망인지를 깨닫는 기분이었다. 연기에 무척이나 서툰 배우가 된 느낌. 실수를 연발하고 헛발질을 하고 누가 봐도 진실되어 보이지 않는 가짜 연기를 하는 사람. 어떨 때는 마냥 형편없는 사람 같았고, 또 다른 때는 나의 어설픔과 경박함을 남들이 꿰뚫어 볼까 두려웠다. 때로는 나도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 <내가 되는 꿈> 소개
"그다지 윤리적인 사람이 되지 못함에도 사는 동안 흔히 말하는 불법적인 일을 저지른 적이 별로 없는데, 이러한 까닭은 아마도 어린 시절의 경험 때문일 것이다. 도둑질을 시작하고 발각되었던 경험을 통해 스스로가 중독에 매우 취약하며 무언가를 쉽게 끊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배웠기 때문에, 한번 시작하면 멈추지 못하는 사람임을 알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의 의지로 그만두지 못할까 봐 두려웠고, 그렇기 때문에 늘 이성의 끈을 가까스로 붙들며 살아왔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이 마찬가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정말 반듯하고 이성적인 사람이어서라기보다는 모두 안간힘을 쓰며 억누르고 있는 것이다." - <종이달> 소개
"사람은 절망이 너무 커지면, 모든 것을 돌이키기에 너무 늦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오히려 더 극단적으로 행동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그 절망감을 잠시라도 없애기 위해서. 언젠가 잡힐 것이 뻔한 범죄자로서의 암울한 미래는 모두 잊고 지금 당장 터지는 샴페인과 호화로운 서비스를 누리며 잠시 잠깐이라도 착각에 빠지고픈 욕구를 느끼는 것이다." - <종이달> 소개
"이 소설을 통해 나는 스스로의 모순을 깨달았다. 나를 비롯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가능한 한 무지하길 바라는 나도 모르던 내 마음. 많은 이들에게 무지할 수 있는 것이 특권이라 외치면서도, 정작 나와 가까운 이들은 내내 무지하길 바라는, 세상의 쓴맛 따위에 노출되지 않고 계속해서 모르길 바라는, 그럼으로써 행복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기를 바라는, 그런 나의 시시한 마음." - <음복> 소개
"무엇이 진실이냐를 넘어서 진실의 윤리, 그러니까 진실이 늘 바람직한지에 대해 시간이 흐를수록 생각이 많아진다." - <나를 보내지 마> 소개
"A가 나에게 한 말과 행동, 내가 A에게 보인 호감과 열망을 생각할 때마다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이것이 성폭력이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분명 그렇게 말하기에는 모호한 부분이 있었다. A가 나를 협박했는가? 아니오. A가 나에게 무언가를 강요했는가? 아니오. A가 나를 만졌는가? 아니오. 그렇다면 A가 나를 존중해주었는가? 아니오. A의 행동이 정당했는가? 아니오. A와의 만남에 어떠한 문제도 없는가? 역시나 아니오. 이때의 상황에 대해 누군가 윤리적이냐고 묻는다면 분명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그렇기 때문에 A를 떠올릴 때마다 오래도록 화가 났다. 마주치면 욕을 퍼붓고 싶을 정도로 분노가 치밀었다. 하지만 더욱 싫은 것은 나 자신이었다. 내가 나 자신을 그런 상황에 처하게끔 만들었다는 사실이, 내가 나를 취약하게 만들었다는 것이, 내가 나를 너무도 무방비한 상태로 놔두었다는 것이 정말이지 참을 수가 없었다. 설명할 수 없게 되어버린 나. 인정을 받고 싶은 마음과 특별해지고 싶은 열망과 관심을 받고 싶은 욕구를 조절하지 못해 내가 나를 ‘낭비했다’는 사실을 참기가 버거웠다." - <조명등 아래서 보낸 시간들> 소개
"너’는 일상에서 사소한 것 하나 놓치지 않을 만큼 섬세하게 마음을 쓰지만, 동시에 마음을 지나치게 쓰는 까닭에 공과 사, 일과 생활의 경계를 흐트러뜨리는 사람이기도 하다. 한편 다른 사람을 배려하느라 그런 ‘너’를 지켜보는 ‘나’의 마음이 망가지는 것에는 무심한 사람이며, 환경과 인간을 고려한 ‘윤리적’으로 생산된 제품만을 고집하느라 정작 그것을 사 오는 과정에 수반되는 나의 수고와 피로에는 무신경한 사람이기도 하다. 모든 사람의 말을 귀 기울여 들으면서도 정작 가장 가까이에 있는 나의 목소리는 무시하는 너라는 존재." - <너라는 생활> 소개
"소설 속에서 어른이 된 태희는 “또 울겠지만 절대 같은 이유로 울지는 않을 것”이라 다짐한다. 하지만 아마 멀지 않은 시기에 미래의 나는 다시 한번 울 것이고, 소설 속 태희의 결심과는 다르게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와 같은 이유로 울고 있을 확률이 높다." - <내가 되는 꿈> 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