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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학준 Dec 02. 2022

아빠 왜 팩 안 사줬어요?

22.12.02. 이경혁, 현질의 탄생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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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에 이어 <현질의 탄생>을 읽는다. 점심시간에 책 펴놓고 자다가 책에 침 흘릴 뻔 했다. 졸리니까 짧게 읽었다. 


2장에서 언급한 아케이드 오락실의 동전 투입 결제 방식은 특정 시간 동안의 기기 대여를 의미한다면, 콘솔과 PC게임이 보급된 1980년대 이후의 시대에 결제 방식은 기계와 게임 소프트웨어를 직접 구매하여 소유하는 것을 의미했다. 이는 디지털 게임의 이용 형태와 게임 장르에도 꽤 영향을 미친다. 


일단 기술이 발달해서 똑같은 연산을 하더라도 필요한 기계의 물리적 크기가 작아졌고, 그 비용도 감소했다. 싸고 작아지면 집으로 들이게 되어 있다. 게다가 집에는 그 동안 TV가 잔뜩 보급되어 있어서 판매자 입장에서 디스플레이를 별도로 팔아야 하는 부담도 덜했다. 오락실에 세워둔 <퐁> 기계가 보통의 콘솔 크기가 되었고, 공룡같은 덩치를 자랑하던 컴퓨터도 개인화되기 시작했다. (PC는 Political Correctness 이전에 Personal Computer의 약자였다)


한국에서는 1980년대 중후반부터 콘솔이 정식으로 유통되면서 대중화가 시작되었고 - 그 전에도 알음알음 보따리상으로부터 사오거나, 출장갔던 아빠로부터 게임기를 선물받은 잘나가는 친구들도 있었겠지만 - PC 역시 교육용 PC 사업을 기반으로 가정에 보급되기 시작했다. 하긴 게임에 관심 없는 아빠도 내가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이전에 세가 마스터 시스템을 사줬을 정도니까 '대중화'라는 게 맞다고 봐도 무방하긴 할 것 같다.

근데 아빠 왜 게임기만 사주고 팩은 안 사줬어요?


그래도 명목이 '교육'용이기 때문에 게임 외에는 별다른 기능이 없는 콘솔에 비해서 PC 보급이 빨랐다. 부모님들 입장에서도 게임기냐 게임도 가능한 교육용 도구냐 선택하라고 하면 당연히 후자를 선택하는 게 더 마음이 편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언제나 놀 궁리를 하며, 교육용 PC는 훌륭한 단백질 공급원 아니 훌륭한 놀이력 공급원으로 전락할 것임을 모르는 아이는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오락실에 코묻은 돈 들고 가는 것과, 그 당시에도 비싸고 지급도 비싼 콘솔 게임/가정용 컴퓨터를 구매하는 것 사이에는 넘기 어려운 비용의 벽이 존재하지 않나? 어떻게 결제 방식의 전환이 이루어질 수 있었을까? 저자는 일단 그 비용의 벽 때문에 오락실이 그 후로도 꽤 오랜 시간 남아 있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게임기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이는 일련의 시도들을 언급한다. 카트리지 대여 및 교환 서비스, 롬 팩 개조나 합팩 제조, 그리고 일부러 뒤에 언급하기 위해 빼 두었지만 불법복제 등. 어릴 적에 나도 비싼 PC 게임은 친구와 함께 돈을 모아서 산 후에 돌아가며 즐기거나, 2CD 게임이면 하나씩 소유하고 서로 바꿔서 게임하는 방식으로 비용을 줄이려 애썼다. (결국 나중에 EA 오리진으로 C&C 시리즈 전체를 사버렸다)


친구야 연락이 되면 소련군 CD좀 빌려줄 수 있겠니? 연합군으로 25년째 하고 있다


저자는 여기서 플레이의 변화가 이루어지는 모습을 포착한다. 1) 조급할 이유가 없으니까 긴 호흡의 게임이 가능해지더라. 이제 오락실에서 게임을 못한다고 쫓겨나지도 않게 되었고, 집에 가서 오래도록 붙잡고 즐기는 게 가능하다보니 게임 제작사도 엔딩에 공을 들일 필요가 생겼다. 가격이 비싼만큼 오래 즐길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저장 기능이 중요해진다. 1987년 등장한 <젤다의 전설>처럼. 그리고 조작이 직관적이지 않아도 괜찮다. 조금 시간이 걸려도 튜토리얼을 통해서 게임 조작 방식을 익힐 수 있게 되었으니까. 반대로 오락실 게임은 더 호흡이 빨라지고, 반복해도 질리지 않고, 튜토리얼 따위가 필요하지 않는 단순하고 화려한 엔터테인먼트형 게임의 본거지로 점차 변모했다고 본다.


2)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게임을 할 수 있게 되니 이전에 비해 숙련도를 올리기가 훨씬 더 쉬워졌지만, 이전과 달리 숙련도가 오르면 오를수록 게임이 빨리 식상해졌다. 지금처럼 인터넷으로 모르는 사람과 대전하는 게 가능한 시대도 아니니 오로지 싱글플레이만이 게임 콘텐츠의 대부분인데, 숙련도가 올라갈수록 플레이 타임은 짧아진다. 그러니 이를 해소하기 위해선 아예 새로운 게임을 사야만 한다. 그게 아니라면 쉽게 숙련되기 어렵고, 다양한 수집 요소를 활용하는 '야리코미' 게임을 해야 하는데 이것도 솔직히 말해서 몇몇 사람들에게나 해당되는 선호고, 일단 이런 게임이 별로 없었다. 숙련도와 플레이타임의 관계가 동전 투입 시기와 전혀 다르게 묶이는 것이다.


아 할 거 없네 진짜


어쨌든 이런 시장의 구조가 형성되면, 콘솔이든 PC든 주기적인 게임 구매와 판매를 통해 산업이 성장하는 그림이 그려져야 하는데, 그게... 안됐다. 왜 일까? 왜긴 왜냐, 불법복제 때문이지. 저자가 이 불법복제로 인해서 우리 게임 산업이 어떻게 무너졌는지를 보여주려는 것이 4장의 내용인 듯 한데, 일단 그건 점심시간이 다 끝나버렸으므로 내일 읽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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