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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학준 Dec 02. 2022

내가 왕년에 돈 좀 썼는데...

22.12.01. 이경혁, 현질의 탄생

#1

오늘은 다른 책모임용으로 이경혁의 <현질의 탄생>을 읽는다. 한 때 지독하게 '현질'도 해 봤던 게이머 입장에서 대체 '이딴 식'으로 게임을 만든 이유가 뭔지 궁금했던 기억이 있어서 나도 모르게 집어 들었다. 처음엔 게임이 말 그대로 잠깐의 머리를 식히기 위해 만들어 낸 무료의 창작 활동이었다면, 지금은 정해진 가격으로 구매해야 하는 것을 넘어서, 게임 내에서 또 다른 재화들을 구매하기 위해 추가적인 비용을 지불하거나, 게임 플레이 자체는 무료지만 게임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추가 결제를 해야 하는 상품이 되었다. 상품이니까 돈을 주고 사는 건 당연한데, 이게 사람들의 입에서 '현질'이라는 비속어에 가까운 표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상황은 무엇을 의미할까? 이 책이 그런 고민들을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약간의 기대를 가지고 읽기 시작했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른바 '결제사'의 관점으로 디지털 게임의 변화상을 되짚어보고, 플레이와 결제 사이의 관계를 토대로 현질의 의미가 무엇인지 설명하고자 한다고 책의 목표를 밝힌다. 그 목표가 달성이 되는지 보자.


솔직히 오실로스코프는 둠 돌리는 데 쓰는 거 아닌가요?

인간은 노동과 휴식 이외에도 꼭 생산적인 무언가를 산출하지 않지만 단순히 즐겁기 위해서 행동한다. 게임은 이 여가 활동 중 하나다. 놀라고 준 게 아닌데 그것으로 노는 방법을 고안하는 건 인간이면 누구나 시도해보는 짓이라, 복잡한 계산을 하라고 사람들에게 컴퓨터를 가져다 준 순간 거기에서 디지털 게임이 나오게 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물론 이 때의 게임은 말 그대로 수단을 목적에 맞지 않게 활용하는 방식이었기에 꼭 상품으로서 개발된 것은 아니다. 처음 등장한 디지털 게임인 <테니스 포 투> 이후, 마그나복스 오디세이라는 가정용 비디오 게임기가 상용화에 성공하고, 상업적으로 성공한 게임인 <퐁>이 등장한 1972년이 오기까지는 아직 14년이라는 시간이 남았다.


이 책은 <테니스 포 투>에서 <퐁>으로 이어지는 게임 상업화의 이야기를 건너 뛰고, 대신 <퐁>이 선택한'동전 투입(insert coin)'이라는 방식의 결제 방식이 게임의 내러티브와 오락실 운영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로 바로 이야기를 전환한다. 지금이야 동전 투입을 하는 결제 방식이 주류는 아니지만, 많은 게임들이 게임 오버 화면이나 시작 대기 화면에 흔적 기관처럼 insert coin이라는 말을 새겨둘 정도로 게이머들에게 각인된 결제 방식이기도 하다. 이 결제 방식은 비교적 오래된 연원을 가지고 있는데, 특히 개인이 집에서 소유하기 어려운 거대한 규모의 기계를 잠깐 빌리거나 사용할 수 있는 '대여료' 명목으로 사용되곤 했다. 이 결제 방식 덕에 주크박스라든지, 핀볼이라든지 하는 대한 규모의 오락 기계는 집이 아닌 공용 공간에 놓일 자격을 얻게 된다. 사람을 직접 거치지 않고 바로 기계에게 돈을 투여하는 일종의 자동화 기계로서, 사람들은 좀 더 편하게 이 기계를 사용할 권리를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이걸 누가 집에 놔요?

<퐁>도 싱글 플레이가 불가능한 게임기였다. 나중에 개인용으로 이식되긴 했지만, 애초에 이건 술집이든 공용 공간에 놓여서 여러 사람들과 함께 즐기라고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게임기들이 한데 모여 있으면 우리는 그것을 '아케이드 오락실'이라고 부르는 것이고. 한국에도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이 오락실이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그 이전까지 아이들의 놀이라는 건 그닥 지출이 필요하지 않은 것들 위주였는데, 이 오락실은 반드시 돈을 내야만 놀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에 색다른 경험으로 다가온다. (물론 머리가 비상한 친구들은 그 때에도 라이터 같은 것을 들고 기계들을 적당히 자극해 돈 없이 즐겁게 놀고 왔다)


솔직히 내가 아직도 멀티 게임을 잘 안하는 건 어릴 적 격겜에서 쳐발려서 그런 게 크다...

그런데 이 동전 투입이라는 게 좀 묘한 특징이 있는게, 일단 동전의 가치는 상당히 변동이 크다. 실력이 좋으면 오랫동안 게임기를 점유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저 꼬박꼬박 오락실 사장님의 사업 번창을 위한 밑거름이 된다. 게다가 인싸가 아니면 할 수 없는 게임들이 있다. 사람들의 관심이 두려운 아이가 어떻게 가장 핫한 게임을 할 수 있겠나. 그런데 실력이라는 건 어지간하면 시간을 투입한 만큼 늘어나기 마련이고, 그러면 시간이 오래될수록 오락실 사장님의 밥줄이 마른다. 회전률이 떨어지니 마진이 줄지 않나. 그럼 사장님들은 아이들을 적당히 얼러 내쫓거나, 인위적으로 난이도륵 조정하여 알아서 떨어져 나가게 한다. 아이들이 무난하게 오랫동안 붙잡을 수 있는 게임은 딱히 사업에 도움이 안 되니 사장님들이 선호하긴 어려웠다. 갑작스러운 난이도 상승으로 사람들이 적당히 떨어져 나갈 수 있도록 내러티브가 조정되어야 할 외부적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물론 아무리 난이도가 상승한들, 오락실에 돈을 바친 만큼 고수가 되므로 결국 언젠간 '돈맥경화'는 일어난다. 그렇다면 방법은? 대전 격투 게임기의 도입이다. 이건 서로의 상대적 실력의 문제로 인해서 최소한 둘 중 하나의 코인은 회전이 된다. 게다가 시간도 빨리 끝난다. 실력이 좋지 못하면 2분도 못 버티고 끝난다. 그리고 굳이 사장님이 난이도를 조절할 이유도 없고. 유저 입장에서도 패턴을 외워서 깨는 게임보다는 사람에 따라 공략법이 다른 쪽이 더 재밌는 법이다. 그러니 사장들은 최신 대전 격투 게임을 계속해서 들이게 된다. 이처럼 동전이라는 독특한 결제 방식이 게임 장르의 유행과 오락실 경제 구조의 형성과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지점을 언급하는 것이 2장의 내용이다. 그렇다면 1980년대 이후 콘솔 게임과 PC 게임이 유행하면서 등장한 새로운 결제 방식은 장르와 경제 구조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그건 오늘은 피곤하니 내일 읽어보는 것으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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