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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문희 Dec 24. 2022

확신, 불신, 숨은 신

221224

*치명적인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오전에는 <액스>를 마저 읽었다. 조금 희한한 인연이다. 생일날 책장에서 꺼내 크리스마스 이브에 마지막장을 넘겼다. 살인 이야기를 굳이 이 기간에 읽어야 했을까. 진작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잡고 나서 놓지 못했을 뿐이다. 역자는 "롤러코스터를 탄 듯한 플롯", "거의 시각적 표현", "히치콕이 디자인한 놀이공원을 누비는 기분"이란 말로 소설을 평가한다. 나 역시 쫄깃한 영화 한 편을 본 기분이었다.

  1인칭 주인공 시점이 흥미로운 효과를 낳았다. 주인공 버크 데보레는 이상한 인간이다. 해고 후 새 일자리를 구하려는데, 일이 잘 안풀리자 동종업계의 라이벌들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자신보다 능력좋은 구직자들이 사라지면 결국 자신에게 자리가 올 거라고 믿는다. 상식적인 독자라면 받아들이기 어려운 논리적 비약이다. 어딘가 꼬인 주인공의 생각과 주변 또는 사회에 대한 판단을 신뢰하기도 쉽지 않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은 결국 눈을 가늘게 뜨고 텍스트를 따라가게 된다. 주인공이자 서술자가 데보레이니, 책 전체가 불신과 대결의 장이다.


  나는 킬러가 아니다. 살인자가 아니다. 그랬던 적도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다. 무정하고, 냉혹하고, 영혼이 없는 킬러. 그건 내가 아니다. 지금 내가 벌이고 다니는 짓은 사건의 논리에 의해 강요된 것일 뿐이다. 주주들의 논리, 임원들의 논리, 시장의 논리, 노동력의 원리, 밀레니엄의 논리, 그리고 나 자신의 논리. 대안을 알려주면 살인을 멈출 수도 있다. 지금 내가 벌이는 짓은 끔찍하고, 까다롭고, 섬뜩하다. 하지만 내가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다." 162p


  끔찍한 수준의 정당화이지만, 실은 데보레도 알고 있다. 그가 해고당하고 새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까닭은 동료 시민이 아니라 사회다. 경제난이 구조조정을 낳았고, 기술 변화가 그의 업무를 더이상 필요하지 않은 존재로 만들었다. 소설에 직접 거론되지는 않지만, 자기 이득은 줄이지 않는 기업가나 실직자의 삶을 보호하지 않는 복지체계, 사회안전망의 후퇴를 낳은 정치인도 그를 낭떠러지로 몰았을 게다.


  허버트 애벌리, 에드워드 릭스와 불쌍한 그의 아내, 그리고 에버릿 다인스. 그는 나와 같은 처지였다. 내 좋은 친구가 될 수도 있었다. 그를 맹우로 만들어 그와 함께 공동의 적을 처치해나갈 수도 있었다. 그들이 웃으며 내려다보는 구덩이 속에서 우리끼리 치고받고 할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 112p


  하지만 '공동의 적'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가 현실에서 마주하는 적은 같은 업종에서 일하는 인간이 전부다. '좋았던 시절'에는 마음을 나눴던 이들이지만 지금은 잠재적 경쟁자가 됐다. 그것이 데보레를 냉담하게 만든다.


  "지난 5개월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압니까? 한떄 서로 의지하며 친하게 지내온 동료들이었습니다. 나랑 같이 해고된 수백명의 직원 말이죠. 우린 항상 그 신뢰를 앞세워 함께 싸워 왔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내 적이 됐습니다. 서로 경쟁해야 하는 관계가 돼버렸으니까요. 그게 바로 문제의 핵심입니다. 카운슬러들은 절대 이런 얘길 하지 않죠. 우리가 더이상 동료가 아니라는 것. 더이상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 - 253p


  사람을 적으로 삼지만, 그들을 사람으로 여기지는 않는다. 그가 흔들리는 순간은 범행 상대에게 '인간적인 면모'를 느낄 때다.


그들과 인간적으로 가까워지면 안돼. 이 일을 시작했을 때부터 세워뒀던 방침이었다. 아니, 그보다 훨씬 전부터 다짐해온 내용이었다. 그들과 인간적으로 가까워지면 내가 해야할 일을 제대로 처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 97p


  이력서 위의 존재라고 여기기에 죽일 수 있다. 멀리서 관찰할 때 그는 상대를 대상으로 여긴다. 단번에 죽이지 못하거나, 뜻밖에 마주쳐 사람 대 사람으로 대화나 마음을 나눌 때 그는 괴로워한다. 덜덜 떤다. 첫 두세번 살인까지는 그러하다. 이후에 그는 상대방이 일하는 신사복 매장에서 명함을 주고받으며 대화를 나눈 뒤, 퇴근길에 살해하는 지독한 인간으로 변한다. 함께 술을 마시며 고단한 업무와 비정한 사회를 개탄한 뒤 만취한 상대방의 집에 불을 지른다.

  데보레 같은 악한이 합당한 처벌을 받지 않고 끝난다는 게 소설의 흥미로운 설정이다. 데보레는 여러 명 경쟁자를 죽이는 동안 살인에 점점 익숙해진다. 첫 시도는 혼자있던 상대를 한 발 쏘는 식으로 쉽게 끝났다면, 다음 시도는 좀체 상대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서, 아내와 함께여서 같은 이유로 어려움이 크다. 상대방의 집에 쳐들어갔다가 얼결에 잠들어 위기를 겪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 그는 모든 살인에 성공하고 원하던 일자리를 얻는다. 경찰은 그를 붙잡긴 커녕, 그에게 '또다른 희생자가 될 수 있으니 조심하라'고 경고해 준다. 범죄 경험 덕분에 아들의 범행 증거를 숨기는 데에도 성공한다. 용의선상에는 데보레 대신 그가 죽인 사나이의 이름이 오르고, 가족은 '믿음직한 아버지'에게 마음을 기댄다.

  가족 이야기는 책을 입체적으로 만든다. 실직은 실직자 개인의 비극이 아니고 주변까지 힘들게 하는 일이어서, 데보레는 가장의 책임감으로 더 절박하게 일을 구한다. 하지만 가족이 느끼는 마음은 데보레와 꼭 같지 않아서, 그들은 데보레에게 실망하거나 가정 경제에 도움되지 않는 일을 저지른다. 아내 마저리는 처녀 시절 직업을 결혼하면서 버린 것이 후회된다. 긴축 재정으로 버텨보지만, 이내 파트타임 일자리를 얻어 생활전선에 나선다. 아들 빌리는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도둑질하다가 경찰에 붙잡힌다. 실직의 사회적 여파가 더 생생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 책의 아이러니는 그때쯤이면 독자가 주인공을 조금은 이해하게 된다는 데 있다. '인간적으로 가까워지면 죽일 수 없다'는 명제가 '죽이기 위해 인간적으로 접근한다'는 문장으로 변화하는 궤적은 데보레가 최소한의 윤리적 부담을 내려놓는 과정과 일치한다. 동시에 그 과정은 독자가 데보레의 자기변명과 장광설을 내내 들여다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데보레 같은 악한이 합당한 처벌을 받았으면 하는 마음을 느끼지만, 동시에 그가 처하는 위기에 놀라고 어떻게 해결할까 궁금해진다.

  아내 마저리의 외도를 의심할 때 데보레는 편집증자처럼 보인다. 그녀는 "버크, 우리에겐 상담이 필요해요"라고 말하지만, 데보레는 마저리가 다른 남자를 만나고 있다고 확신한다. "결혼 생활을 너무 오래 방치해왔다"고 소리지르는 마저리 앞에서 그녀가 만나는 남성의 정체를 속으로 추리한다. 아내가 왜 '상담' 이야기를 꺼내는지는 별 관심이 없다. 마저리가 견디지 못한 것이 그 무관심이란 사실은 독자만이 안다.

  그는 일거리를 다시 구해서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채찍질하지만, 정작 아내와 아들딸의 마음엔 신경쓰지 않는다. 남편의 실직 후 마저리는 긴축 재정에 돌입하는 등 부히 애썼지만 잘 되지 않았고, 집안에서 점점 자신을 쓸모없는 존재로 느낀다. 그렇게 한심한 데보레를 보며 짜증과 분노를 느낄 때쯤, 이런 문장이 등장한다.


"난 지금껏 얼음덩어리와 살아온 거예요. 그리고 4개월 전, 날 따뜻하게 대해주는 남자가 다가왔어요."


  마저리의 외도는 이상한 주인공과 의심하는 독자 간의 싸움에서 승자가 누구인지를 드러낸다. 도널드라는 숨은 신의 존재를. (역시 성탄에 읽을 만한 소설이었나!)




덧1. 소설 속에서 데보레가 죽이지 않는 사람이 하나 있다. 다섯번째 상대 블랙스톤이다. 데보레가 꿈꾸는 직장은 뉴욕 주 아카디아의 '아카디아 프로세싱'이다. 블랙스톤은 '월리스&캔덜'이라는 회사에 일자리를 구한다. 그 소식을 듣고 데보레는 "춤이라도 덩실덩실 추고 싶다"는 심정이 된다.

"나는 전화를 끊고 보야저로 돌아간다. 마치 내가 재취업에 성공한 것처럼 기쁘다. 진심이다. 그는 자신이 원했던 분야에 다시 몸담아 일할 수 있게 됐다! / 그를 죽여야 할 이유가 없어졌다." - 229p

  직장을 구했기에 목숨도 건진다니, 이렇게 잔인한 설정이 또 있을까.


덧2. 데보레는 세 번째 살해 대상인 에버릿 다인스를 차로 쳐 죽인 뒤 자신의 행동에 회의감을 느낀다. 그 와중에도 그는 종이의 질감에 주목한다. 영화 <아메리칸 싸이코>가 다. 그런데, 이게 정말 싸이코 같은 생각인가. 글로 써놓으니 이상하지만, 어떤 감정 상태에서도 인간은 주변 사물의 디테일에 집중할 수 있다.

"짙은 색의 낡은 나무 서랍장 안을 들여다보니 하얀 종이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나는 맨 아래 서랍에서 두껍고 뻣뻣한 종이를 꺼내 살펴본다. 양면을 손으로 문질러보니 매끄러움의 차이가 확실히 느껴진다. 단순한 기술로 제조된 종이다. (이 상황에서 그런 디테일을 알아보다니 다시 눈물이 날 것 같다.)" 112p


도널드 웨스트레이크의 소설 <액스>의 한 대목. 아이러니와 유머를 한번에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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