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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학준 Dec 25. 2022

이건 아마도 전쟁같은 도서관

22.12.25. 도서관여행자, <도서관은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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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제목에서 영화 <박물관은 살아있다>의 제목뿐만 아니라 "서울은 싸우면서 건설한다"는 표어를 떠올렸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도서관은 소란스러운 것이 자연스럽고, 동시에 시대와 함께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도서관을 지켜내려는 시도는 순탄치 않고 또 즐겁기만 한 것도 아니다. 유머러스한 영화라기보단, 꽤 진지한 전쟁 기록에 가깝지 않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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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로서 경험한 재밌고 다양한 사건들이 계속해서 등장하다보니 책장을 넘기면서 밑줄을 긋느라 손이 바빴다. 그리고 그 경험들 대다수가 결국 함께 사람들과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고민하는 과정에서 참조점이 된다는 것이, 꽤 부럽고 부끄러웠다. 나 역시 그렇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도 고민을 제대로 확장하지 못한 것 같단 생각이 계속 들었기 때문이다. 도서관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묻는 질문들에 방송은 그럼 무엇을 하고 있고 할 수 있으며 해야 하는지와 같은 질문을 덧대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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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 폐기의 괴로움>과 같은 글은 읽는 내내 즐거웠다. 이게 즐거우면 안 되는 것이긴 한데, 장서 보관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내게 어떤 식으로 이 고난을 헤쳐 나갈지 알려주는 지침들이 좀 엿보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다 읽고 나서 더 좋은 책들을 위한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 무엇을 내 곁에 둬야 할지 정하는 작업을 시작해야겠군, 하다가도 그런데 도서관 로비에 붙어 있는 중고 서점을 다음엔 집중적으로 노려야겠군 하면서 눈에 불을 켜고 있는 내가 그 지침을 제대로 수행할 리 만무하지 않겠나. 호더처럼 또 쌓아 올리는 고통은 영겁에 걸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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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하며 만났던 도서관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여행의 주요 동선에 도서관을 넣은 경우들이 많았기 때문인데, 정작 도서관이 나를 환대할 것이라고 믿지 않아서인지 그 주변에서 조용히 관람하고 훓고 지나간 경우들도 많았다. 하지만 도서관여행자와 같은 사서들이 그곳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나는 좀 더 마음을 열고 도서관에 몸을 맡겼을 거다. 이제라도 알았으니 앞으로는 도서관에 시간을 더 많이 할애할 생각이다. 더 이상은 '도시의 거실' 한 구석을 스치듯 지나치지만은 않으리라. 여행자야말로 집 없는 사람들이고(일시적이지만), 그들에겐 지친 몸을 뉘일 안식처가 필요하므로(숙소가 있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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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이 도시에서 책임지는 영역은 크지만 정작 도서관은 다양한 이유로 미움받는다. 또 도서관에서 조용히 자기 공부를 하고 싶은 사람은 자신과 이용 목적이 다른 사람들을 미워한다. 그러다보면 갑자기 도서관이 독서실처럼 변하기도 하고, 예산 감축으로 장서가 부족해지기도 하고, 아예 폐관되고 상업 건물이 들어서기도 한다. 돈 없고 공간 없는 도시의 사람들이 무료로 머물 수 있는 공공 시설들이 하나씩 사라지면 우리는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지식의 전수도 중요한 역할 중 하나지만 다종다양한 사람들을 한데 엮고 서로를 이해하게 만드는 공동체의 거점을 제공하는 것도 도서관의 주요한 역할이다. 혈관이 막힌 신체가 성할리 없듯이, 도서관 없는 도시는 성하지 않다. 그렇기에 지금도 도서관에 더 많은 사람들이 가 닿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서도, 정치인도, 건축가도 있다. 그들 덕에 우리가 아직까지 버틸 수 있는지도 모른다. 도서관에 삶의 일부를 맡겨 온 사람으로서 도서관을 밀고 상업 시설을 짓겠다는 시장과 그에 호응하는 주변 사람들이 원하는 도시의 모습이 무엇인지 걱정되고 불안하다. 나는 그 도시에 오래 머물 수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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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Library이란 단어에는 책(書, libro)이란 단어가 포함되어 있다. 책을 보관하고 대여하는 것이 주된 역할이니 그러한 것이지만, 이 기관이 지역 주민들과 공유하는 것이 단지 책만은 아니라는 점에서 답답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물론 영어로든 한글로든 도서관은 이제 좀 더 넓은 의미로 어떤 종류의 사물이든 보관하고 대여하는 공간을 뜻하는 경우에 쓰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상상의 한계를 지운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도서관이라는 언어는 그 확장의 한계가 명확해서, 이 기관이 담당하는 가치, 의미를 포함하기 위해선 새 단어가 필요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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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를 앞으로도 여러 번 가야 하겠지만, 다음 번 이사를 할 때가 되면 가장 먼저 근처에 좋은 도서관이 있는지부터 알아볼 생각이다. 사실 지금 사는 곳 직전에 살던 곳은 길만 건너면 새 도서관이 있었지만 바쁜 일정 때문에 도서관 운영시간을 한 번도 맞추질 못해 아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 앞에 도서관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안을 받는 부분이 있다. 이곳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문화 활동, 지역 사회를 위한 활동 등을 알리는 게시판을 스쳐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나는 이 공간에 뿌리박을 수 있다는 얄팍한 소속감을 지니게 된다. 그리고 언젠가 나의 자식 세대가 이용하기에 훌륭한 도서관이 근처에 있다면 더할나위 없이 기쁘지 않을까? 수능 만점을 받는 친구들이 책읽기를 즐겨하지 않는다는 소식에 가슴이 시리더라도 말이다. 앞으로도 나는 도서관을 찾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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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에서 출발한 기차가 서대전을 지날 때 쯤 마지막 장을 펼쳤다. 거기엔 저자가 가보고 싶은 도서관이 몇 군데 나열되어 있었다. 여수 이순신 도서관이 그 목록에 있었다. 뒤늦게 장탄식을 하며 돌아오는 성탄절 밤이다. 모두들, 해피 홀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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