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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학준 Dec 26. 2022

'때문에'가 아니라 '덕분에'

22.12.26. 그레천 매컬러,  <인터넷 때문에> 2

그레천 매컬러,  <인터넷 때문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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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부터 끝까지 단숨에 읽었다. 분량이 만만치는 않은데 각종 밈과 이모티콘들, 문장부호에 얽힌 이야기들이 재미있어서 손에서 책을 놓기 힘들었다. 다 읽고 나서 느낀 감상은 한줄로 말하면, 우린 서로 달랐고 달라질테니 겸손해지자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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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나 화 안났는데." 라는 문장에서 불안함을 느낀다면 당신도 나처럼 "활자로 표현된 어조"에 익숙한 사람이다. 그저 문장이 종료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부호일 뿐인데, 마침표 너머에 말하는 사람이 어떤 감정과 어조로 문장을 쓰고 있는지 보인다. 문장 부호를 있는 그대로의 의미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불안할 게 없지만, 어떤 사람들은 마침표가 수동적 공격성을 전달하는 데 쓰이곤 한다는 사실을 알기에 불안에 휩싸인다. 대면하지 않고 말하는 데 익숙한 사람들은 문장만으로는 맥락을 전달하는 것이 불충분함을 깨닫고 다양한 수단들을 쓰기 시작했다. 부호, 괄호 넣기, 대문자 쓰기 등등. 다만 서로가 같은 인터넷 민족이라면 뜻이 통하겠으나, 그렇지 않다면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십상이다.



예전에는 이 오래된 짤방을 보며 웃음밖에 안 나왔다면, 이제는 조금 다른 감정들도 느껴진다. 문자를 보낸 사람이 여전히 보통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은 들지만, 사람은 누구나 문자 너머로 전달되는 어조, 감정을 정확히 파악하고 싶어한다. 그렇다면 넘겨짚는 게 아니라 질문하는 게 외려 더 친절한 건 아닐까? 두 사람이 느낌표라는 문장 부호에 부여하는 의미가 다른데 이를 대충 자기의 입장에서 판단하기 전에, 너 혹시 이런 뜻으로 썼냐고 물어보는 게 무례한 것인지 이제는 확언하기 어렵다.


누군가는 말줄임표를 띄어쓰기의 대용이나 문장을 마무리짓는 부호로 쓰지만, 누군가는 그것을 감정 상태의 표현으로 읽는다. 오죽하면 네/넵/넹/네네가 각각 어떤 뉘앙스를 담고 있는지 정리한 짤방이 디지털 풍화에 시달릴 때까지 인터넷 공간을 돌고 있을까. 이건 그만큼 사람들이 문자 정보만으로는 담을 수 없는 감정과 어조를 특정한 문장 부호, 단어 조합 등을 통해서 전달하려고 시도하고 있지만 여전히 소통에 실패하는 경우가 적지 않음을 반증한다. 다들 성공했다면 이런 짤방은 등장하지도 않았을 거다.


문자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오해는 쉽고 자주 일어난다. 그러니 가능하면 상대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다. 혹시 그 문장은 어떤 의미인가요? 물론 그런 질문을 한다는 것 자체가 '당신은 우리 세대 사람이 아니네요'라는 답변을 듣기 딱 좋은 행위지만, 솔직히 내가 당신들과 세대가 다른 사람인 것이 무슨 문제일까? 오히려 이 인터넷 세계가 서로 다른 민족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고 겸허해질 필요가 있지 않나?체득하고 있는 쓰기/말하기 습관이 같은 게 당연한 게 아니다. 누군가는 편지를 쓰면서 하던 인삿말을 이메일에 여전히 쓰고, 누군가는 전화가 집에 하나씩 있을 때의 통화 예절을 여전히 중요시한다. 누구에게나 당연한 맥락은 없다. 이것이 책을 관통하는 메세지다.


그레천 메켈러의 <인터넷 때문에>는 기술의 변화에 따른 인구 집단의 변화, 그리고 그들이 사용하는 인터넷 공간 내에서의 사용 언어 습관의 변화를 추적한다. 기술과 문화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에 대해 이해하기 좋다. 또한 인터넷 이후 민족인 나에게는 역사서이자 예언서로서 기능한다. 어떻게 우리는 갈라졌고, 앞으로 우리는 또 어떻게 변할 것인지를 파악할 수 있기에, 그만큼 겸손해질 수 있다. 두 편의 글로 길게 나누어 설명했지만 결국 우리가 서로 소통이 잘 안되는 이유는, 그냥 우리가 꽤 다르기 때문이다.


3장에서 뒷부분에 이르기까지 저자는 '텍스트'로 의사소통하는 인터넷 공간에서 텍스트만으로는 부족한 감정, 어조,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사용자들이 채택한 이모티콘, 문장부호, 이모지 등이 어떤 기술적 조건들과 조응하며 확산되었는지를 정리한다. 대부분은 성공적이었지만, 동시에 특정한 민족들 내에서만 공유되면서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디지털 메시지로 감동을 받거나 해를 입는 진짜 사람들의 공통된 인간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문제들이 계속해서 발생했다.


이 때 필요한 것은 겸손이다. 언어는 원래 변해왔다. "디지털 어조가 대문자로만, 혹은 소문자로만 이루어진 문장이나 이모티콘과 이모지가 들어간 문장으로 발전했듯 우리가 단어 이면의 의도를 전달하는 방식도 기술이 진화하면서 함께 발전할 것이다." 인터넷 때문에 변하는 것이 아니고, 인터넷 덕분에 그 변화를 알아채게 되는 것이다. "나는 대화의 규범이 언제나 유동적이고, 같은 시대에도 사람에 따라 다르니  지나치게 성급한 판단을 내리지 말라는 말을 하고자 한다. 서둘러 결론을 내리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에게 무슨 뜻인지 확인하는 질문을 던지자. 우리에게는 당황스럽게 느껴지는 의사소통 관습에도 그런 관습을 활용하는 사람들에게는 진정하고 중요한 의미가 있다는 점을 잊지 말자."


가끔 '문해력'이란 이름으로 싸잡아서 문제시되는 다양한 실패들을, 조금 더 면밀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예컨대 왜 젊은 세대는 단어를 적게 사용하려 할까?가정통신문 해석에 실패하는 어른들은 문해력이 갑자기 나빠진 것일까? 게다가 문해력 논란은 결국 개인의 능력 부족을 비난하는 쪽으로 흐르기 마련인데, 많은 실패와 오해는 사실 개인의 능력 부족과는 무관한 공통 지반의 상실로 인해 벌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차이와 연결, 이 책이 그 지점을 고민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기서 말하지 않은 수많은 밈들과 이야기들을 읽는 재미가 상당하니, 읽어볼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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