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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문희 Jan 25. 2023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지구가 멸망하거나

230124

  클라이브 제임스의 책 <죽음을 이기는 독서>를 읽었다. 제목이 흥미로워 집어들었는데, 책 표지와 서문 또한 매력적이었다. 분홍색 알약들로 만든 알파벳 네 글자, 'READ'. 동사 '읽는다'로도, 명사 '독서'로도 번역 가능한 단어다. 주어에 외따로 붙이면 정체성 서술이며(나는 읽는다), 홀로 쓰일 땐 '읽으라'는 명령이다. 개중 무엇이라도 말이 된다. 내면의 충동을 따른 행위의 집합, 진실된 자아를 묘사하는 그밖의 명제를 나는 알지 못한다.



  2010년 초, 병원 문을 나서는 내 손엔 백혈병 확진과 함께 폐까지 망가졌다는 진단서가 들려 있었다. 귀에서 째깍째깍 시계 초침 소리가 들렸다. 이렇게 된 마당에 새 책이든 중요한 책이든 간에 책이라는 걸 읽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혹은 내가 이미 아는 훌륭한 책들조차도 다시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지 궁금해졌다. 이제 나에겐 책을 끝까지 읽을 시간이 없을 수도 있기에, 아주 가벼운 책을 읽기 시작하는 것조차도 대단한 일처럼 보였다. ...
  자리보전하고 몸져눕는 대신 다시 한 번 회복해서 두 다리로 설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나중에”라는 개념이 갑자기 비현실적이라기보다는 현실감 있게 다가왔다. 불이 언제 꺼질지 정확한 시간을 알 수 없다면, 불이 꺼질 때까지 책을 읽는 편이 나을 것이다. - 13~14p


  책 곳곳에 기막힌 문장들이 숨어 있는데, 이들 얘기는 나중에.




  고향가기 전 용산역 영풍문고에서 <룩 백>을 샀는데, <죽음을 이기는 독서>와 기막히게 이어졌다. 무언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같은 무언가를 사랑하는 이들과 내밀하게 연결되는 경험이기도 하다. 비가 오건 눈이 오건 바람이 불건, 나는 책을 읽고 영화를 보며 동지와 이야기 나눌 것이다. 다는 못해도 하나는 하겠지. 내일 지구가 멸망한대도 이 다짐은 변하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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