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사물들
#long clothes
결혼과 함께 살던 곳에서 멀리 떨어진 도시로 이사했다. 남편의 직장을 따라가는 다소 구닥다리 방식의 신혼 생활을 하게 된 것이었다. 우리는 낡은 빌라의 꼭대기 층에 살았다. 양가 부모님께서 번갈아 우리의 첫 살림을 보러 기차를 타고 먼 길을 내려오셨다. 우리는 함께 지낼 집이 생겼다는 기쁨에 취해 집이 낡았다는 것도 몰랐다. 엄마아빠는 내 첫 살림을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드디어 저들의 품을 떠났다는 사실에 기뻤을까, 아니면 가까이 살며 반찬을 나눠 먹을 수 없어서 슬펐을까?
우리는 동네의 이곳저곳을 돌며 관광을 하고, 맛있는 식사를 했다. 거실엔 둘을 위한 이부자리를 폈다. 아빠는 누워 TV를 보고 엄마는 내일 입을 옷을 정리하다 말고 나를 불렀다. 이거, 선물이야. 엄마가 무심한 태도로 건넨 것은 한 손에 쏙 들어오는 하얀 천이었다. 이제 막 결혼한 딸을 보러 내려오면서 챙겨온 것의 정체는 내가 갓 태어났을 때 입었던 배냇저고리였다.
어머니의 뱃속에서 나와 처음으로 입은 저고리를 일컫는 말. 깃이나 섶을 달지 않아 깃저고리라고도 부르는 작은 옷은 나의 운동용 양말만큼이나 하얗고, 브라보다도 작았다. 저고리를 여미는 곳은 실끈으로 되어있는데, 아기의 수명이 실처럼 길게 이어지라는 염원을 담고 있다고 한다. 우리 엄마는 자신의 팔뚝만 하던 아기의 하얀 옷에 달린 실을 매일 묶으면서 오래오래 살라고 생각했을까? 나는 얼마나 살게 될까? 엄마랑은 언제까지 살 수 있을까?
그이후로 양말과 브라가 차곡차곡 개켜 담긴 서랍 귀퉁이엔, 내가 삼십여 년 전 입었던 배냇저고리도 고이 누웠다. 매일 아침 속옷을 꺼내 입을 때마다 생각했다. 수십 년 동안 이사할 때마다 엄마가 챙겼을 게 분명한 저고리. 옷장 한구석에서 새하얀 모습 그대로 보관되어 온 작디작은 저고리. 그것을 입힐 존재가 내게도 생기게 될까?
다시 서울로 올라와 지낸 지 3년 차가 되던 차에 드디어 내게도 아기가 생겼다. 이사할 때마다 나는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배냇저고리를 개켜 서랍에 담았다. 그리고 테스트기의 두 줄을 보자마자 바로 떠오른 생각은 이것이었다. ‘드디어 저고리가 세상 밖으로 나오겠구나!’ 한 인간이 나의 몸 밖으로 나오는 것보다, 내가 매일 속옷을 갈아입을 때마다 볼 수밖에 없었던 저고리가 바깥 공기를 쐬는 것이 더 짜릿하게 느껴진 이유는 뭘까. 엄마의 뭉근한 사랑이 드러난 실체이기 때문일까? 인간을 내 속에서 꺼낸다는 사실을 아직 상상할 줄 모르는 초기 임산부인 탓일까?
어떤 이유가 되었든 지금의 내게 더욱 큰 실감으로 다가오는 건 이 하얗고 작은 직물의 질감이다. 엄마가 산 것. 내가 입었던 것. 그리고 나의 아기에게 입히게 될 것. 아주 보드라운 것. 구체적인 기대는 딱 이 정도인 임신 초기의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