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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W Aug 01. 2022

학생의 비밀, 그 비밀이 멈추는 곳

교사에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은 학생이 위험하다면…?

교사들은 학생들과 상담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을 보호자에게 알려야 할지 고민되는 순간을 마주한다. 어렵게 형성한 라포(Rapport)가 한순간에 무너질까봐 혹은 학생에게 상처를 더 큰 상처를 주는 것은 아닐까 부담스럽기만 하다. 하지만 학생이 갖고 있는 문제를 보호자 모르게 하는 것은 과연 옳은 일일까, 혹시 내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학생의 비밀을 쉽게 포기해버리는 비겁한 교사는 아닐까 고민스럽다. 실제로 교사로서 책임에 대한 현실적인 문제도 모른 척할 수는 없다. 학생의 비밀을 교사가 알고도 아무런 조치 없이 비밀로 간직했다면 이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서 교사는 그 책임을 면할 길이 없다. 조치를 취하면 된다고? 보호자 동의 없이 할 수 있는 조치에는 한계가 있다.


A학생은 최근 정서행동검사에서 우울감과 자해행동, 자살 충동이 심각한 상태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꽤 높은 점수로 고위험군에 속했고 상담교사는 전문가 상담이나 병원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의견을 냈다. A는 지금까지 대화가 잘 통하는 보건 선생님에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놨고 자신의 우울함을 고백해왔다. 그리고 커터칼로 자신의 팔뚝에 깊은 상처를 내고 쓰라린 통증이 느껴지면 그 우울감이 해결된다는 사실도 말했다. 보건교사는 위로와 공감으로 마음을, 약과 밴드로 팔을 치료해줬다. A는 보건교사에게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다. 자신의 마음과 팔에 약을 발라 주고 밴드를 붙여주는 유일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사실을 부모님에게 절대 말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자신의 문제는 불안정한 가족관계 때문이며 자신의 문제가 드러났을 경우 가족들이 또 한 번 휘청거릴 것 같다고 말했다.

상담교사는 이 사실을 부모에게 빨리 알려야 한다고 주장했고 보건교사는 반대했다. 보건교사는 만약 비밀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이 학생은 두 번 다시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할 것이고 이는 나중에 이 아이를 붙들어줄 마지막 끈이 끊어지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교사의 업무로서 책임을 덜기 위해 보호자에게 알리고자 하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아이와 어렵게 형성된 라포를 저버릴 수 없다”는 말도 했다.


비밀을 지키기로 한 학생과의 약속이냐, 학생의 문제를 보호자에게 충실하게 알리는 교사의 책임이냐


이런 딜레마 앞에서 교사의 확고한 신념이 요구된다.

나의 기준은 이렇다. 교사는 정신과 의사가 아니며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슈퍼맨이 아니다. 불이 났을 때는 119에 신고를 해야 하듯 학생의 정서적 문제가 심각할 땐 전문가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받아야 한다. 교사가 고민하고 있는 시간에 학생은 위기의 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 학생을 위한 어떠한 도움을 주더라도 보호자의 동의는 필수적인 절차다. 보호자 모르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또한 아무리 결함이 있는 보호자라 하더라도 자녀의 문제 상황에서 교사가 임의로 보호자를 배제해 버린다면 이것은 보호자에게 자녀를 위해 무엇인가 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는 일이다.


세상의 일은 복잡하고 흑백이 명료하지 않다. 위의 모든 상황을 고려한다 해도 교사는 신념에 따라 보호자에게 알리지 않기로 결정할 수도 있다. 그럴 땐 마지막 질문을 해야 한다. 그 학생을 교사가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가? 책임질 수 없다면, 그럴 자신이 없다면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할 것이다.


책임은 비밀이 멈추는 곳에 있다. 교사는 학생에게 심각성을 감지하고 조치가 필요하다는 판단이 들었다면 학교 관리자에게 보고하고 필요한 절차를 밟아야 한다.


[자해행동을 보이는 학생을 돕기 위한 교사용 가이드](경기도 교육청, 2017), 에 따르면 학생이 심각한 상태에 있을 때 교사는 학생과의 비밀을 무효화할 것을 고지하고 보호자에게 사실을 알려 긴밀하게 협조해야 한다고 안내하고 있다.

학생과의 비밀 약속을 쉽게 버릴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기한을 정해놓고 학생에게 부모님께 알려야 하는 이유를 설득하면서 비밀이 취소될 것이라는 사실을 납득시켜야 한다. 어려운 일임이 분명하지만 교사가 혼자 모든 책임을 감내하는 것보다 수월한 일일 테니까 명확한 방법을 제시한 셈이다.

부모에게 알리지 않겠다는 생각은 한편으로는 교사의 오만함일 수도 있다. 한 학생의 문제는 혼자서 해결할 수 없다. 교사, 보호자, 전문기관이 같이 들여다보고 협조해야 한다.

최악의 상황이 발생했다고 상상해보자. 교사 또는 학교 내부적으로는 비밀을 유지한 합당한 이유가 있을 테지만 학교 밖 외부의 시각은 그렇게 너그럽지 않을 것이다. 사회는 그동안 교사와 학교는 무엇을 했느냐고 따져 물을 것이고 보호자는 왜 자신이 막을 기회를 주지 않았냐고 목놓아 울부짖을 것이다.


교사의 일은 시간이 지나도 익숙해지지 않고 쉬워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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