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절차대로 했을 뿐인데 이 과정이 과연 교육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학교폭력과 관련된 법과 절차는 과거에 비해 발전했다. 학교에서 주관적인 판단으로 사건을 키우거나 덮을 수 없도록 했고 피해자를 보호하는 것에 무게를 뒀다.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학폭예방법)을 통해 절차도 명료하게 정리됐다. 교사의 부담을 줄여주고 교육지원청이 업무를 담당하는 방향이다. 물론 완벽할 수는 없다. 현장에서 학교폭력 사안을 직접 접하는 실무자는 아귀가 딱 들어맞지 않는 상황을 두고 고민하게 된다. 사건은 크기와 형태가 각기 다른데 표준화된 절차에 대입하여 해결하자니 사건의 진실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는 것이다. (반대로 이토록 명료한 표준화된 절차가 없고 학교에서 각자 재량껏 해결해야 한다면 더욱 끔찍한 일이 될 것이다.)
*아래 사건과 이름은 내용을 수정하고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광훈이(가명)는 종호(가명)가 새 신발을 신고 온 것을 보고 발을 밟는 장난을 쳤다. 종호는 복수라도 해보려 했지만 날쌘돌이 광훈이 발을 밟기란 불가능했다. 종호는 조금 세게 밟힌 것인지, 비싼 돈을 주고 산 한정판 신발을 밟힌 것이 약이 올라서인지 이를 학교폭력으로 신고했다. 개인적 복수가 아닌 학교폭력이라는 제도로 정의를 실현하겠다고 한다. 엄밀하게 따지면 신체폭력과 재산상의 피해에 해당된다.
<학교폭력 신고 및 접수>
교사의 입장에서 솔직한 마음으로 광훈이를 불러서 종호에게 사과를 하라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종호는 단단히 화가 나있고 화해를 제안하는 선생님이 학교폭력 신고를 안 받아준다고 느낄지 모른다. 그럴 순 없다. 절차대로 접수받은 뒤 48시간 내로 교육지원청에 보고해야 한다. 이제 ‘즉시 분리 조치’로 최대 3일 동안 광훈이는 종호와 같은 교실에 들어가지 못한다.
<피해학생과 가해학생 분리조치 및 보호자 통보>
종호와 광훈이의 부모님께 오늘 있었던 일을 알려드렸다. 종호의 부모님은 화가 났고 광훈이 부모님은 어이없어했다. 종호의 어머니는 아이가 얼마나 약이 오르고 힘들었으면 학교에 도움을 요청했겠느냐고 마음 아파하셨다. 평소 광훈이가 종호를 놀렸던 과거를 모두 소환하여 그놈 자식은 이번 기회에 혼이 나봐야 한다고 하신다. 광훈이 어머니는 쓰러지기 직전이다. 발을 밟은 게 그 정도까지의 잘못이냐고 따진다. 아이가 발을 밟은 죄로 교실에 들어가지 못하고 죄인처럼 낙인찍히는 상황이 옳은 것이냐고 재차 묻는다.
여기서 교사는 조심해야 한다. 공감하는 말하기를 자칫 잘못하면 형평성 시비가 걸린다. “아 그렇게 생각하시는군요.”, “속상하시겠어요” 정도로 답해야 한다. 자칫 “어머님 말씀이 맞아요, 그건 잘못된 일이죠.”라고 말했다가 나중에 선생님도 자신의 말에 동의했다는 소리를 듣게 된다.
잠시 후 자녀와 이야기를 나누어 본 광훈이 어머니가 득달같이 전화를 걸어왔다. 광훈이는 언어폭력을 당했다고 한다. 종호가 복수하려고 쫓아가면서 욕설을 했나 보다. 종호가 욕을 했다는 증거도 없고 증인도 없으나 신고를 해야겠다고 한다. 쌍방 학교 폭력이 되어가는 중이다. 이제 종호와 광훈이는 피해, 가해 학생이 아니라 관련 학생이 된다.
이 대목에서 광훈이 부모님이 사과를 하겠다는 의사를 보였다면 교사가 연락처를 전달하거나 한 자리에 양쪽 부모님을 모셔서 자리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 자리에서 서로 화해하고 학교장 자체 해결로 마무리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광훈이 부모님이 사과의 뜻을 직접적으로 나타내지 않았다. 여기서 교사가 사과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넌지시 물어볼 수도 있겠으나 나중에 화해를 종용했다느니 사과를 강요했다느니 비난을 받지 않으려면 입을 다물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상대방의 신발을 밟는 행위는 분명 잘못됐다. 그리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비싼 신발을 밟히면 신체적 고통을 넘는 재산상의 피해도 있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실수가 아니라 장난으로 밟았기에 고의성도 분명하다. 하지만 과연 이것이 부모님께 학폭사실을 통보하고 학폭 절차에 들어갈 일인지는 사람마다 다른 판단을 할 것이다. 사람마다 입장이 다르니 정해진 절차로 방법을 통일해야 형평성을 찾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사견은 접어두고 절차대로 처리한다.
<전담기구 개최>
결국 학교 내의 학교폭력 전담기구에서 사안을 심각성을 평가한다. 학부모 위원, 교원 위원이 사안을 살펴보고 심각성, 지속성, 보복성, 재산 상의 피해 여부 등 객관적 요건을 따진다. 그런데 이번 사안은 따져볼 것이 별로 없다. 어차피 피해학생 측에서 학교폭력심의위원회 개최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사는 한걸음 떨어져서 이번 사안을 다시 검토해본다. 왜 발을 밟는 작은 사건이 이토록 감정적인 사건이 됐을까. 접수를 받으면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명확했고 한치의 오차도 없이 처리했는데 그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던 건 아닐까. 그리고 각 부모에게 사안 내용을 전달할 때 과장하거나 축소하지는 않았는가 고민한다.
<학교폭력심의위원회 개최 및 조치사항 결정>
결국 이번 사안은 두 학생 동일하게 1호 서면사과 조치가 나왔다. 가장 작은 처분이지만 그래도 징계다. 그리고 1~3호는 처음 발생한 사안일 경우 생활기록부 기재가 유보되지만 다음번에 또 이런 일이 생기면 한꺼번에 같이 기재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보름에서 한 달가량의 기간 동안 양쪽 학생과 학부모는 마음고생이 심했다. 발을 밟는 장난이 낳은 결과다.
작은 갈등도 제도 안에서 처리하는 것이 교사에게도 편하고 논리적으로도 명쾌하다. 그런데 친구의 발을 밟는 장난이 부모의 갈등이 되고 오랜 기간 감정싸움을 하며 징계까지 받는 일이 된 것은 어딘가 잘못된 것 같다. 이게 과연 교육적인 일인가?
20개월에 조카에게 플레이-도(Play-Doh)를 선물했다. 찰흙을 별 모양 틀로 눌러 도형을 찍어낸다. 찰흙 반죽이 얼추 틀 모양과 비슷하면 잘려 나가는 여분이 적다. 하지만 아직 아기 손으로 만진 반죽으로는 반 이상이 잘려 나가고 별 모양도 뒤틀어져있다. 우리가 다루는 학생들의 갈등 상황이 플레이-도처럼 제로도 눌러 일정한 모양으로 만들고 있는 것 같다. 학교폭력은 A가 B를 때리는 명료한 상황이 오히려 드물다. 틀 밖으로 벗어나 있는 진실들을 제도 안으로 밀어 넣기 어려워 오늘도 고민이 깊다.
종호와 광훈이의 갈등은 어색한 서면 사과문으로 일단락됐다. 하지만 아직도 서로 머쓱하고 멀어진 느낌이다. 나중에라도 두 학생이 허심탄회하게 풀기를 기대한다.
p.s. 이런 일을 겪은 두 녀석이 두 번 다시 이런 일을 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중학생은 그 고생을 하고도 또 장난을 친다. 에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