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수사를 할 수도, 판결을 내릴 수도 없다.
학교는 정의로워야 한다. 정의를 가르치는 곳이지만 정의를 실현하는 곳은 아니다. 오해 없도록 다시 한번 이야기하자면 학교는 교육기관이고 수사기관은 경찰, 사법기관은 법원이다.
최근 학교폭력에 대한 사회적 민감도가 높아졌다. 전에는 학교폭력 사건을 뉴스로 접했을 때 “애들이 크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제 더 이상 그런 분위기는 자리 잡기 어렵다. 폭력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진 덕이다. 다만 실제로 학교폭력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아는 사람은 실무자를 제외하고 거의 없다. 심지어 동료 교사들도 해당 업무를 경험하지 않았다면 잘 모른다. 감정적인 반응을 하기 전에 누가 어떻게 학교폭력을 다루는지 살펴보자.
학교에서 치고받고 싸우면 선생님한테 혼나고 반성문을 쓰고 화해를 하는 동화 같은 시절이 있었다. 2022년 현재 학교는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학폭예방법)’에 따라 적법하게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치고받고 싸웠다면 학폭 신고 접수를 받아 교육지원청에 보고해야 하고, 선생님한테 혼나는 것이 아니라 학교폭력 전담기구에서 실태조사와 학교장 자체 해결 여부를 심의해야 한다. 또 반성문을 쓰고 화해하는 것이 아니라 교내에서 학교장 자체 해결을 하거나 교육지원청의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학폭 심의위)의 결정에 따라 조치를 이행해야 한다. 이제는 법률이 정한 절차에 의해 조치를 내리도록 되어 있다. 즉 가해학생이 어떤 잘못을 저질렀다 할지라도 학교폭력 예방법 제17조 1호~9호까지 범위 안에서 조치가 결정된다.
1호 서면사과, 2호 접촉 금지, 3호 교내봉사, 4호 사회봉사, 5호 특별교육, 6호 출석정지, 7호 학급교체, 8호 전학, 9호 퇴학(중학교 과정은 의무교육과정이므로 9호 조치를 내릴 수 없다.)
여기에는 귓방망이, 빠따 등의 태형은 없다.
아이가 심하게 맞은 상황에서 위에 나열된 조치 중에 피해학생과 보호자가 납득할 만한 것이 있을까? 애당초 폭력을 당한 피해자를 위로하고 만족시키는 것은 요원한 일이겠으나 응당한 벌을 받았다고 생각할만한 항목이 9가지 조치 중에 없다는 것에 주목하자. 왜냐하면 학교폭력 조치는 처벌이라기보다는 교육적 조치에 가깝기 때문이다. 법으로 정해진 조치 범위가 이러하니 늘 피해학생과 보호자는 학폭 심의위 결과에 대해 불만족스럽고 화가 나는 것이다.
심신의 상처를 입은 피해자와 그 보호자는 학폭 절차를 통해 학교에서 가해자를 처벌해주기를 기대했는데 그 결과가 5호 특별교육이라면?(최근 르세라핌 김가람이 학폭 5호 조치를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죄를 벌하는 것은 학교의 권한이 아니다. 그것은 사법기관을 통해 구현해야 할 정의다. 그 대신 학교는 생활지도를 통해 예방교육을 하고 추후 지도를 할 뿐이다. 쇠귀에 경읽는 마음이지만 0.1%의 효과라도 있길 바라면서 반복적인 경 읽기를 한다.
다시 한번 9가지 조치사항을 읽어보자. 이 조치 중에 합당한 것이 없을 때에는 차라리 경찰 신고를 하고 재판을 받도록 해야 정의 구현에 가까워진다. 날이 갈수록 악랄해지는 학생들의 폭력을 ‘학생’, ‘자라는 아이’, ‘사춘기’, ‘초범’ 등의 말랑말랑한 말로 윤색하는 것은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용서는 오롯이 피해자의 몫이고 화해는 벌을 받고 난 뒤의 과정이다. 처벌이 없는 죄는 반복되지 않았던가.
그럼 학교는 과연 학교폭력에 대해 무엇을 하는가? 자주 듣던 비난이다. 학교폭력 담당자로서 자주 들었던 말들을 바탕으로 학교의 역할을 확인해보자.
1. 가해자 측 보호자: “아니 이런 것도 학교폭력입니까? 우리 애는 그런 애가 아닙니다. 학교폭력에 해당하는 행동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가르쳐 줬어야죠!”
학교폭력 예방법 제15조에 따라 학기당 1회 이상 학교폭력 예방교육을 실시하고 실태조사도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 이것은 교육과정을 편성할 때부터 계획 아래 이뤄진다. 실수로 깜빡하고 빼먹을 수도 있는 교육이 아니라는 뜻이다. 오히려 담임교사와 교과교사가 학교폭력에 대해 지겹도록 지도하고 학교 복도에는 온갖 학교폭력 예방 포스터가 덕지덕지 붙어있다. 다만 학생들 한쪽 귀에서 다른 쪽 귀로 흘러나갈 뿐이다. 교육전문가로서 학생들 뇌리에 박히는 학폭예방교육을 하지 못하는 것은 새겨들어야 할 비판이다. 한편 최근 연예인들의 과거 학폭 논란이 교사보다 더 교육적 효과를 발휘하기도 한다.
인터넷에서 하나의 표현으로 자리 잡은 말들이 문제가 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느금마~”로 시작하는 문장은 학생들 사이에서는 일종의 관용어구처럼 됐지만 명백한 패드립이다. 짜증 내거나 화를 내는 사람에게 “너 생리하냐?”는 핀잔은 남자끼리도 주고받는 표현처럼 됐지만 이는 여성의 생물학적 특성을 인격과 결부시키는 부적절한 표현이므로 이 또한 언어폭력으로 분류될 수 있다.
2. 피해자 측 보호자: “선생님이 가해 학생을 따끔하게 혼내주세요!”
학교폭력은 특정 교사의 판단으로 처리돼서는 안 된다. ‘법률’로 정한 절차와 전담기구가 있다. 학폭예방법 제16조에 따라 피해학생을 보호하고, 제17조에 따라 가해학생 조치를 이행한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명확한 경우에는 그나마 교사의 부담이 덜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안은 쌍방으로 흘러간다. 실례로 A학생이 심한 패드립을 했고 B학생이 주먹으로 A를 때렸다. A의 보호자는 패드립의 잘못을 인정하더라도 신체폭력을 가한 B에 대해 강력한 처벌을 주장했고, B학생 보호자는 주먹을 쓴 것은 잘못이지만 그런 패드립(언어폭력)을 듣고 가만히 있을 수 있겠냐며 A의 처벌을 주장했다. 이렇게 서로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경우 교사의 말은 신중해져야 한다. 교사는 판단하지 말고 기계적으로 중립을 지켜야 한다. 단순한 갈등 상황을 지도할 때에는 교사가 신념에 따라 입장을 정하고 생활지도를 할 수 있겠으나 학교폭력이라는 법적 절차를 시작했다면 철저히 중립을 견지해야 한다.
* 사안이 발생한 뒤 보호자와 상담하던 담임교사가 공감해주기 위해 “A가 물론 잘못했죠”라는 말을 했다. B의 보호자는 담임교사가 A가 잘못했음을 인정했다고 주장하고 A는 이를 두고 학교가 편향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겠네요” 정도가 문제 되지 않는 공감하기 아닐까)
* 사안을 처음 인지한 담임교사가 B에게 “화가 나도 참지 그랬니”라고 말을 했다가 보호자로부터 “패드립한 학생이 잘못이지 참지 않은 우리 애가 잘못이냐”며 민원을 제기했다.
* 갈등 중인 양측을 화해시키려 한 교사는 화해를 종용했다며 민원을 들어야 했다.
교사도 사람이기에 사안에 대해 자신만의 생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잔뜩 예민해진 양측은 교사의 말에 온갖 의미를 부여하니 말을 삼가는 것일 뿐. 학교폭력은 교사와 학부모로 구성된 전담기구와 교육지원청에 설치된 학폭 심의위를 통해서 판단되고 처리돼야 한다.
3. 피해자 측 보호자: “일을 크게 만들어 학교에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
이 말에는 다른 뜻이 숨어 있다. ‘알고 보니 심각한 문제는 아니었네요, 학폭 심의위 참석 절차를 보니 부담스럽네요’ 또는 ‘보복이 두렵다’, ‘아이들끼리 앞으로 얼굴 보고 지내야 하는데 껄끄럽게 하고 싶지 않네요’
전자의 경우는 결국 학폭 신고를 했으나 생각해보니 번거로우니 발을 빼고 싶다는 의미다. 다만 그 명분을 학교의 업무량 증가(?)로 삼을 뿐이다. 이유야 어쨌든 피해자와 보호자의 판단을 존중해야 하니 명분을 무엇으로 삼든 중요치 않다. 분명한 것은 학폭 심의위를 요청은 일을 크게 만들어 학교에 부담을 주는 작업이 아니라는 점이다. 개정된 학교폭력 절차에 따르면 학교장 자체 해결(교내에서 원만하게 합의)이든 학폭 심의위(교육지원청 심의) 요청이든 학교의 업무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학교를 대신에 고생하시는 장학사님들께 감사할 뿐이다.) 피해자 측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학교에서 교육지원청으로 발송하는 서류의 종류만 달라질 뿐 어느 한쪽이 특별히 부담스러울 일이 없다.
사후 보복과 껄끄러운 관계를 우려하는 후자의 경우는 빨리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다. 2호 조치 접근금지 조치가 있으나 실제로는 같은 반에서 수업을 받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피해학생 측에서는 보복이 신경 쓰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특히 여학생이 피해자일 경우에는 보복에 대한 두려움이 더 많이 나타났다.
4. 보호자 “지인 중에 변호사도 있고 기자도 있어요. 일을 똑바로 처리하지 않으면 바로 일을 크게 만들 겁니다.”
이런 말을 하면 교사가 긴장해서 갑자기 본인의 편을 들어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부류다. 우선 변호사가 있다면 교사 입장에서는 오히려 반가운 일이다. 보호자는 감정적으로 지쳐있고 화가 나있으므로 법을 초월하는 요구를 할 때가 있고 심해지면 거의 떼를 쓰고 한탄을 한다. 상대 학생의 개인정보를 요구한다거나 교사가 우선 처벌을 해달라고 하는 등의 일이다. 하지만 변호사는 해당 업무의 전문가이고 매우 객관적으로 일을 처리하므로 교사도 지치지 않고 일을 처리할 수 있다. 학교폭력 전담 교사로서 정말 고된 일은 서류를 작성하고 학생들을 지도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적인 학부모를 대할 때다. 보호자가 변호사 비용을 들여가면서 교사의 스트레스를 줄여주는 일이라고 생각하니 오히려 감사한 일이다.
기자를 통해 언론에 제보하겠다는 말도 자주 듣는다. 학교, 경찰, 법원 어느 기관이든 합당한 민원을 합법적으로 처리하지 않거나 공정하지 않을 때에는 언론을 활용하는 것이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학교폭력 처리 시스템에 맞게 진행 중인데 본인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제보한다면 기관은 황당하고 제보를 받은 기자 입장에서도 난감하지 않을까 싶다.
현명하게 학폭을 처리하는 방법
1. 학교에 요구할 것과 경찰과 법원으로 가야 할 것을 명확히 한다. 학교에는 자녀가 안전하게 교육받을 수 있도록 보호조치를 요구하면 된다. 그리고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재발방지 대책을 요구하자. 여기에 소홀한 학교는 직무를 유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학폭 절차는 절차대로 진행하고 이와는 별도로 경찰 신고를 추가적으로 진행하면 된다. 학교는 수사기관과 사법기관이 요구하는 자료를 충실하게 제공할 것이다. 만약 학교, 경찰, 법원이 민원을 묵살한다면 그때에 상급기관이나 언론을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2. 자신의 주장을 입증할 근거를 모아 제출한다. SNS에서 발생한 경우 화면을 캡처해두고, 통화는 녹음하고, 병원에서 진단서를 받는다. 이런 일을 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안타깝지만 현실적으로는 도움이 된다.
3. 가정에서 입장을 분명히 정리하여 의사를 전달해야 한다. 사과를 받거나 할 것인지, 쌍방으로 대응할 것인지 선처를 구할 것인지 명확할수록 의지가 분명히 전달된다. 그리고 학교폭력 절차를 이해하지 못했을 경우에는 담당교사에서 설명해줄 것을 요구하면 된다. 옛날과 많이 달라서 절차와 법을 새롭게 이해하고 접근해야 한다.
학교폭력 예방법을 중심으로 한 우리 교육현장의 대처 방법은 조금씩 발전해왔다. 그리고 지금도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 보인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학교는 정의로워야 하고 정의를 가르쳐야 하지만 정의를 구현할 권한은 없다. 학교는 교육을 하는 곳이므로 학생들이 안전하게 공부할 수 있도록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그리고 가해학생도 처벌을 받고 난 뒤 잘못을 뉘우쳤다면 다시 교육받아 좋은 사회 구성원이 되도록 학교가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학교폭력 처리 방법은 교육적 신념에 따라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법률이 기준이다. 교사가 자신의 신념으로 융통성을 보이거나 법률 외의 행위를 해야겠다면 그 책임은 온전히 자신의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