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건:매버릭>(2021), <탑건>(1986)을 보고
<탑건:매버릭>에서 매버릭(maverick)은 개성이 강한 독립적인 사람이라는 뜻이다. 즉 규칙이나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행동하는 사람이다.
톰 크루즈가 맡은 매버릭은 말 그대로 직관에 따라 창의적이고 과감한 시도로 모두의 감탄을 자아낸다. 관객의 한 사람으로서 나 또한 매버릭의 톡톡 튀는 매력에 빠졌다. 하지 말라는 것을 하는 게 이토록 멋진 법이다. 하지만 군대라는 시스템 안에서 상관들에게 그는 불편한 존재다. 그의 실력이 뛰어난 만큼 불편해진다.
일단 우리에게는 매버릭이 필요하다!
아아 잠깐만.. 그런데 나는 학교 교사다. 우리 학교에 매버릭 같은 학생이 있다고 생각하니 내 입장에서는 환장할 일이다. 과거에는 개성을 묵살하는 학교교육이었다면 이제는 창의성과 개성을 표면적으로나마 갈구하고 있다. 그러니 매버릭이 교실에 있다면 그의 개성과 기발함을 더욱 키워줘야 하겠으나 왠지 부모님 상담이 매우 잦아지는 불안한(?) 그림이 그려진다.
매버릭이 한국사회에서 살고 있다면 어떻게 됐을까? 사회 부적응자로 따돌림을 받거나 실력을 펼칠 기회조차 얻지 못했으리라 조심스럽게 예상해본다. 우리 사회는 나대는 사람을 싫어한다. 시키는 것 먼저 똑바로 잘하라는 질책이 들어온다.
그래도 새롭고 기발하게 일을 해보고 싶다면? 굉장히 잘해야 한다. 기존의 결과와 별반 다르지 않은 성과를 낸다면 새로운 방식은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하던 거나 똑바로 하자는 소리가 들린다. 내가 너무 비관적으로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군대, 공무원, 학교 조직을 떠올리면 금방 납득할 수 있다. 심지어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영화에서 매버릭은 늙어서까지 대령에 묶여 있지만 원칙주의자 아이스맨(발 킬머)은 별을 달고 높은 지위에 올랐다. 미국이든 한국이든 현실에서는 아이스맨이 인정받는 법이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교육이었다.
아이스맨만 있는 조직은 정체될 것이다. 새로움을 시도하지 않고 무사안일주의에 빠져들기 쉽다. 더욱 중요한 것은 아이스맨은 매력이 없다. 우리가 인생을 사는 이유가 별 다는 것처럼 출세하려고 사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내 일을 하면서 행복하고 즐거워야 한다. 조금 나댈 때도 있어야 하고 실패한 뒤 멋쩍을 때도 있어야 한다. 우리 사회가 매버릭의 출현을 짓밟아 뭉개는 것이 아니라 박수를 쳐주는 여유가 생긴다면 보다 재미있고 행복한 삶이 될 수 있다.
매버릭은 가끔씩 필요하다. 그리고 한 명만!
매버릭의 매력은 그 성격이 유일해야만 가치가 있다. 모두가 매버릭일 때 매버릭은 더 이상 매버릭일 수 없다. 특히 자연인으로서 삶이 아닌 조직에 속해 있을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개성과 모험심은 리스크를 동반한다. 모든 집단은 리스크에 대한 허용치가 존재하므로 매버릭의 숫자가 늘어난다면 그 조직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매버릭이 가치 있으려면 수많은 아이스맨이 탄탄하게 조직을 뒷받침하고 있어야 하며 그런 원칙주의 속에서 조직은 매력 있는 매버릭을 잉태할 여유가 생긴다.
영화 속에서 매버릭이 두 명이 있다고 상상해보자. 나는 작전이 100% 실패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둘 다 예측 불가능하고 훈련 중 허가받지 않은 돌발 행동으로 작전 시작도 하기 전에 심각한 안전사고를 유발하지 않았을까? 매버릭은 아이스맨이 같은 조직에 있었지만 매버릭 말이라면 껌뻑 죽는 구스라는 파트너도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절대적인 지원자가 있으니 매버릭의 과감한 시도가 가능했다.
아이스맨도 영웅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내가 담임인 교실에 매버릭과 아이스맨이 함께 있다면 어떨까? 일단 교사 입장에서 아이스맨은 너무 예쁜 학생이다. 하지만 졸업 후에도 오래 기억에 남는 녀석은 매버릭일 것이다. 아이스맨 같은 학생이 오래 기억에 남으려면 아주 뛰어나야 한다. 아이스맨이 평범하다면 기억하기 쉽지 않다. 반면 매버릭은 공부를 못해도, 잘해도 오래 기억에 남는다. 나는 이 사실을 인정할 때마다 불공평하다는 생각을 한다. 유한한 자원인 교사의 관심을 아이스맨 같은 학생에게 공평하게 나누어 줄 수 없단 말인가. 그래서 나는 의식적으로 교실 속 아이스맨을 찾고자 노력한다. 그들에게 관심을 더 많이 주고 칭찬할 거리를 찾아서 칭찬한다.
교실에는 다양한 아이들이 있다. 매버릭, 아이스맨, 구스, 루스터, 행맨 같은 학생들이 있고 이 보다 더 다양한 성격이 있다. 이런 인격체들을 조화롭게 지내도록 하는 것이 교사의 일이다. 각자 다른 환경을 갖고 만난 학생들이 조화롭길 바라는 것은 판타지로 장르가 바뀌어야 할 판이다. 나는 너무 어려운 목표를 세우지는 않았다. 다만 옆 친구가 나대는 것을 참아주는 여유, 나의 개성이 옆 친구에게 피해 주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 친구의 실수를 한 두 번은 봐줄 수 있는 마음. (아, 판타지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