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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인터뷰 한 번만 해봤으면...

누가 나 좀 인터뷰해줘요. 이렇게 튀어 나갈게요.

by 황섬

안녕하세요, 황서미 작가님?

네, 안녕하세요? 인터뷰에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저희가 어렵사리 모셨는데요. 먼저 요즘 근황부터 말씀해주시지요.

요즘, 많이 바쁩니다. 드라마가 될지, 영화가 될지 모르는 이야기 두 개에 대한 기획안을 쓰고 있어요.

시작한 지 벌써 한 3개월이 훌쩍 지났네요.

오, 축하드립니다! 기획안 두 개 작업 한꺼번에 하시기 쉽지 않을 텐데요.

축하는 아직 이르고요. 아직 계약 하나도 안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계약을 하기 위한 기획서 작업입니다.

기획안 두 개가 한꺼번에 진행되니 솔직히 쉬운 일은 아닌데요, 그렇다고 아주 어렵지도 않아요. 주제가 '불륜'과 '이혼'이라는 눈총과 호기심의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는 것이에요. 그때그때 잘 집중하며, 발전시켜 나가고 있습니다.

사실 '불륜'과 '이혼' 이 두 분야는 제가 생각하기에 언뜻 보면 비슷한 것 같지만, 영 다른 분야를 다루어야 할 것 같은데요.

오! 정확히 보셨어요. 우리 이거 사전 질문지 주고받고 진행하는 인터뷰 아니잖아요, 하하하!

그래도 저의 약간의 ADHD 기질이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끝까지 몰두해서 집중하기보다는 음...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까요, 여러 마리의 양을 워워~~ 하면서 몰고 가는 방식으로 작업을 하니까요.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양 세 마리의 특성을 각각 파악하고, 그냥 한꺼번에 우르르 몰고 가요.

양들 주르르 줄 세워서 한 마리 용건 끝내고, 다음 양 들어오세요! 이러는 작업 방식은 제게 영 힘듭니다.

아하. 그래서 한꺼번에 여러 프로젝트를 하시는 것이 수월하시다는 말씀이시군요.

어쩌면 제 기질 때문이라기보다 처음에 '먹고살려고' 이 일, 저 일 닥치는 대로 받던 그 버릇이 남아서 그렇기도 할 거예요. 처음 일 받아서 할 때에는 한꺼번에 일 세 개 이상이 돌아가지 않으면 불안했으니까요.

아, 먹고사니즘의 압박감.... 그럼 작가님, 지금 잡고 계시는 기획안, 이야기 좀 더 들어볼까요?

네. 이혼 이야기는 부부의 이야기라기보다 이혼을 다섯 번한 여자 변호사의 '이혼 변호사'로서의 고군분투기입니다.

주인공 캐릭터에 작가님이 많이 투영되어 있겠는데요?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었네요. 사실 함께 작업하는 제작사의 요청도 있었습니다. 워낙 만드시는 분들은 좀 더 자극적으로, 좀 더 맵고 짜게를 원하시잖아요. 그래서 이혼 다섯 번 한 여자 캐릭터라면 충분히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을 것 같다 판단하신 것 같아요. 마치... 지각한 녀석이 새치기까지 하는 상황처럼요. 비록 눈총이긴 한데, 그래도 시선 끄는 데에는 왔다죠. 얘를 안 쳐다볼 사람이 어딨겠어요.

그렇다면 요즘 넷플릭스 1위 하고 있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와 함께 이야기 나누어 보지 않을 수 없겠는데요.

아아아아!!!! 제가 이 이혼 변호사로 가자는 제안은 지난 4월이나, 5월에 드렸었어요. 그리고 한참을 기획을 하다가 이 돌고래 우영우 변호사가 나온 겁니다.

일단 우영우 변호사와 제가 잡고 있는 캐릭터는 다들 핸디캡이 있습니다. 드라마가 다 그렇듯이 주인공은 이 '흠결'들을 극뽀옥하고, 결국 나중에 극이 끝날 무렵에는 전혀 다른 인물, 성숙한 인물로 거듭하고 변화하죠!

저도 이야기의 중심을 잘 잡고, 삼류 삐끕 이혼녀 이야기로 버무려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더 깊은 내용으로 들어가서 질문을 드리면, 다른 기획사들이 와서 훔쳐갈 수도 있으니까요 그럼 또 다른 기획안 하나 이야기를 좀 들어볼까요?

또 하나는 아까 말씀드린 대로 '불륜'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 기획에 대해서는 더 깊이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요. 첫 번째는 지금 6시까지 집에 들어가야 하는데 딱 30분밖에 남지 않았구요, 두 번째는 이미 첫 번째 기획안에서 중요한 캐릭터 요소를 뽀록을 내는 바람에... 아, 이래서 내가 아직 프로가 아니구나, 이래서 유수의 언론사들에게서 인터뷰가 들어오지 않았구나를 알았기 때문이죠.

하하하! 그렇군요. 좋습니다. 나중에 드라마나 영화로 나왔을 때 그때 보면 세상 사람들 모두 알게 되겠죠?

그래도 사람 일은 모르는 겁니다. 둘 다 엎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때를 대비해서 저는 알바를 두 개나 더 뛰고 있습니다.

헉! 아니 그럼 하시는 일이 도대체... 몇 가지...

이렇게 하지 않으면 저와 같은 무명작가들은 기획 다 박살 나고 나면 손가락과 발가락까지 힘들게 고개 숙여가면 빨아야 합니다. 슬픈 일이죠.

그래서 어제오늘, 망치 맞은 듯 결심한 것 있습니다.

어떤 결심일까요?

더 이상 다른 작가님들 여기저기 강의 불려 나가고, 인터뷰하는 것에 대해서 속상해하고, 질투하고, 슬퍼 말자. 이렇게 내가 내 마음에 모터를 달고 여기저기 달려 나가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것! 아무리 형식 상으로 내 작품이 제작사, 콘텐츠 기획사들에 의해서 간택을 '받아야'한다고 할지라도 꼭 '나와 함께 일하고 싶어 하는 사람', 나를 원하는 이들과 일하자고 기준을 정했습니다. 즉 나의 원고를 기다리고 있는 출판사, 언젠가는 이렇게 계속 쓰다 보면 한 방 터질 거라고 일주일에 하나씩 과제를 내주시는 분... 이런 고마운 분들과 함께 해야 행복할 것 같아요. 저를 너무 시험에 내몰고, 전장으로 내몰며 결과를 천운에 맡기는 짓은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아, 중요한 체인징 포인트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 하나 내려놓기로 했습니다.

저는 그동안 삶의 목표랑 일의 목표가 일치했습니다. 너무 창피하더라고요. 어떻게 한 번 밖에 살지 못하는 나의 삶의 목표가 '드라마 한 편 잘 써내서 돈 벌자!'가 될 수 있었단 말인가요. 저는 사실 그동안 이 목표 하나로 달려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될 일도 잘 안 되고, 세상도 제 눈에 잘 안 들어오고... 심지어는 글 쓰는 일이 세상에서 제일 재밌었는데, 이제는 새벽마다 나를 짓누르는 고통의 원인이 되었더라고요. 저 목표가 잘 안 되었거든요. 부끄럽습니다. 삶의 목표를 '드라마 잘 쓰기'로 잡다니...

그러나, 이제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저는 아직 어리고(응?) 그야말로 여기에서 천운이 작용해준다면 저는 살날이 많이 남았으니까요. 처음 글쓰기로 결심했던 10년 전, 글쓰기가 너무 재미나서 열심히 이렇게 하다 보면 결과는 어떻게든 따를 거라고 했던 때로 초심을 잡으려 합니다.

그리고, 결과 없으면 어떻습니까? 지금 쓰는 기획서 두 개 다 초전박살 나면 어떻습니까? 제가 그것 준비하는 기간 동안 훨씬 성장했는 걸요. 캐릭터도 예전보다 훨씬 입체적으로 보이는 걸요.

제가 결혼 다섯 번 했던 경험. 정말 소중한 글감이고, 놓치면 안 될 아까운 소재이지만, 거기에서 멈추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기획서 둘 다 없는 것으로 된다고 해도, 출판사와 계약한 소설 더 재미나게 쓰면 됩니다. 그것 다 쓰면 또 돈 벌 것 아니에요.

어? 지금 벌써 5시 45분이에요. 오늘은 차도 안 가져와서요, 저 빨리 집에 가야 할 것 같아요! 죄송합니다.

어어? 그럼 마지막으로... 작가님이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 일을 풀어 나가는 작가님만의 노하우가 있다면 공개해주시겠어요?

아이, 아까 다 말씀드렸잖아요.

이젠 몸에 힘 빼겠다고요. 막, 막, 나 잘할 거야, 잘 쓸 거야... 이런 거 이제 안 할 거라고요.

드라마 데뷔 못 해도, 저 재미난 소설 쓰고, 에세이 쓰고, 알바 한 달에 하나씩 하면서 살아도 돼요.

저 돈 되는 글 다 쓰거든요. 영화관 비상구 안내문부터, 회사 홍보 영상 스크립트, 또 뭐도 했더라.... 아, 시리야!!!! 이거 AI 스크립트도 제가 다 짜낸 거예요. 겁나 멋지죠?

그럼 기자님 안녕히 계셔요. 다음에 또 뵐게요.

어? 5시 48분이닷!! 으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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