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동 GS25 이편한 점, 이진경 사장 인터뷰
소설 <불편한 편의점>이 공전의 히트를 치고, 이어 2편이 나와서 선전하고 있다. 이 소설은 남영동 한 편의점에 정체 모를 ‘독고’라는 사람이 나타난 후 벌어지는 소소한 사건과 동네 사람들이 사는 이야기로 버무려진 작품이다. 우리 동네에는 ‘이 편한’ 편의점이 있다. 자주 하루 일과를 마치고 들르는 편의점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편의점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가게가 꼭 손님들에게 ‘이야기’를 건네는 것 같았다.
작년 봄이던가, 여름이던가… 편의점 앞에 담요로 두른 작은 박스가 하나 등장했다. 노랗고 조그만 아기고양이(치즈냥이라고 한단다)를 위한 공간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동물 공포증이 있어서 지금도 길에서 동물을 보면 멀리 돌아서 가는데, 이런 나도 편의점의 새 식구에게 관심이 갔다. 이름은 막둥이. 사장님은 고양이 집 앞에 막둥이를 소개하는 문구를 붙여 놓았다. 그리고, 막둥이가 편하게 쉴 수 있도록 툭툭 치지 말아 달라는 당부까지…
편의점 고양이는 이 동네 초, 중, 고 학생들에게 인기 짱이었다! 여자친구들은 막둥이네 집이 된 박스에서 발길을 못 떼고 쭈그리고 앉아 조심스럽게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고, 막 변성기를 맞은 남자아이들도 와! 고양이! 와! 하면서 신나게 쇳소리를 냈다. 가끔은 지나가면서 저렇게 사람 손 타서 어디 아프기라도 하면 어쩌나 싶기도 할 정도였다. 그만큼 동네 아이들의 고양이 사랑은 최고였다. 그러던 어느 날, 편의점 문 앞에 막둥이는 성묘가 되어 자유를 찾아 떠난다는 마지막 소식이 전해졌다.
그뒤 뒷산 봉화산에서 발톱이 빠져서 피를 흘리고 있는 막둥이를 가게 자주 오시는 손님이 발견하시고는 입양해서 2023년 새해에도 잘 키우고 계신다는 소식이다.
이 편한 편의점 덕에 기억에 남을 일이 또 있다. 추적추적 비 오던 날, 편의점에 맥주를 사러 들어가는데 문 앞에 웬 비둘기 한 마리가 죽어 있었다. 깜짝 놀라서 편의점에 들어가 먼저 알바생을 붙잡고 이야기했다. 밖에 비둘기 죽어 있다고.
구청에 로드킬 당한 동물, 혹은 갈 길 잃어 죽은 길고양이들을 치우는 담당 부서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아 어디에라도 연락을 취해야 했다. 그런데 조금 뒤에 이 알바생이 장갑을 끼더니만 빗자루를 들고 유유히 나간다. 그리고는 그 비둘기를 고이 싸서 올려 드는 것이다! 아니 도대체 이 편의점은 어떤 곳이기에 알바들이 이렇게 ‘사장같이’ 일하는 걸까. 그때부터 궁금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편의점 앞에 ‘천 원’ 매대를 보게 되었다. 월급 빼고 다 오른 지금, 모든 물건이 너무 비싸서 이 매대에 있는 모든 물건 1000원에 판매한다는 것. 그리고 사장님의 센스있는 마지막. ‘GS 본사 말 안 듣는’ GS 이 편한 점 올림.
이 한마디로 왠지 모를 묘한 동질감과 함께 심리적 단합을 도모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단 번에 결심하게 되었다. 편의점 사장님, 도대체 누구신지 만나서 이야기해봐야겠다고 말이다. 다행히도 흔쾌하게 허락해주셔서 만나게 된 GS 묵동 ‘이 편한’ 편의점의 이진경 사장님. 오후 8시부터 밤새워 가게를 보는데, 새벽 시간이 조금 한가하다는 말씀에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 이곳에 들를 때마다 음악 선곡이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시간대마다 맞춰서 틀어요. 야간에 일할 때는 조용한 것 틀어놓기도 하고, 아침에는 클래식이나 재즈나 피아노 같은 것 틀어놓고요. 근무자들마다 원하는 음악 틀어서 듣곤 합니다. GS에서 주는 것 틀면 계속 나오는 광고 싫어서요.
- 지난 봄이었나요, 코로나 시기에 장문의 편지를 편의점 유리문에 써놓으셨던 것이 기억납니다. 그걸 보고 여기 사장님은 소싯적에 ‘문청(문학청년)’이셨나 싶었어요.
한 곳에서 오래 일하다 보면 익숙한 손님들이 생기잖아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여기 알바 안 구해요? 하고 물어보시는 거예요. 왜요, 자녀분 하시게요? 하고 물어보면 본인들이 일하고 싶으시다고… 전에는 양복 입고 회사 다니셨던 분들, 아니면 이 근처에서 가게 하셨던 분들이거든요. 코로나 때문에 직장도 없어지고, 너무 힘들어서 이러다 안 되겠으니까 알바자리를 구하는 거죠. 뉴스에서 나오는 것들을 현실에서 접하다 보니… 그리고, 그때가 5주년 되기도 했고요. 우리 가게 있는 이유가 바로 손님들이잖아요. 그래서 힘내시라고 썼지요.
- 맨 처음 이 편의점 여셨을 때 사연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우리 편의점 맨 처음 열었을 때 담배가 없었던 것 기억하시죠?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이 편의점 놔두고 저 밑에 있는 가게까지 갔었다)
그런데, 편의점은 담배 판매권이 있어야 점포를 오픈해주거든요. 그때만 해도 이 근처에 담배 판매자가 없었어요. 오픈할 때가 되어서 구청에 신고를 하러 갔더니 바로 아래에 (지금은 없어진) ‘** 부동산’이 딱 1주일 전에 취득을 해버린 거예요. 그러면 거리 제한 때문에 가게가 안 나오는 거죠. 담배 판권을 서로 거래하는 것은 불법이기 때문에 일단 찾아갔어요. 편의점을 열어야 하는데, 담배 판권이 있어야 한다, 양보를 좀 해달라 하고요.
그런데, 거기에서 2000만 원을 달라고 하더라고요. 하하하! 나중에는 본사 직원하고 부동산 팀원하고 함께 가서 비는 거예요. 그럼 그 돈을 누가 내요, 저도 가게 준비하면서 돈이 없는데. 그리고 담배 판권을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신고라도 들어가면 판권이 날아가요.
제가 편의점 열기 전에 했던 일이 ‘손해사정사’였거든요. 그건 하루 종일 하는 일이 합의 보고 다니는 일입니다. 회사 다닐 때 알았어요. 어려운 일이 있으면 무조건 정면 돌파, 부딪혀서 이겨내어야지 돌아서 편법을 쓰면 나중에 언젠가는 문제가 된다는 것을요. 그래서 ‘담배 많이 파셔라, 무슨 이천만 원 같지도 않은 소리, 그만하시고.’라고 인사하고 나왔죠.
- 그럼 원칙상, 편의점 오픈을 못하는 것 아닌가요?
본사에서는 열어줄 수밖에는 없었어요. 왜냐하면 미리 담배 판권을 미리 받아놓자고 제가 그랬거든요. 그래서 ‘담배 없는 편의점’으로 문을 연 거예요.
저희 가게가 담배가 없었을 때 손님들이 제일 많이 했던 얘기가 이거였어요. 어떻게 담배도 없이 편의점 차리냐. 주로 나이 드신 분들이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하셨죠. 담배 사러 오면서 음료수라도 하나 집어서 사는 건데, 많이 불편하시다면서. 그래서 저는 반대로 ‘담배는 딴 데에서 사고, 음료수는 우리 가게에서 사게 만들면 되겠네’ 이런 마음 먹고 일했어요.
창업 설명회 같은 곳에 가면 ‘경영주’ 누구누구라고 이야기를 해요. 편의점도 사업체인데, 이를 경영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이윤을 뽑아내야 하고, 좋은 전략을 잘 짜서 손님들 지갑을 열리게 하는 것이 저희 목표잖아요. 오히려 처음에 담배가 없었기 때문에 지금 여기까지 끌고 왔던 원동력이 되었던 것 같아요. 더 좋은 판을 만들기 위해서 이런저런 궁리들을 많이 할 수밖에 없잖아요. 그리고, 제일 고마웠던 것은 나는 담배 밑에서 사 가지고 와도 되니까 괜찮다고, 힘내시라고 했던 손님들이었어요. 그게 아직도 안 잊혀요. 정말 너무너무 고마웠어요. 그 말 한마디 한마디가 위로가 돼서, 밖에 천 원짜리 행사를 그래서 하는 거예요. 그때 힘이 되어주셨던 손님들에게 감사의 의미로요.
편의점 열고 한 1년 6개월쯤이었어요. 어떤 ‘상권 분석가’라는 사람이 찾아왔어요. 딱 봐도 놈팽이 같았어요. 지금도 이 근처 사는데요. (웃음) 젊은 사장님이 지금 담배도 없이 고생 많은데, 본인이 합의 봐줄 수 있다면서 담배 판권 가지고 오라고 하더라구요. 자기가 이런 데에 경험이 많기도 하고, 저쪽(부동산)에서 먼저 이야기가 나왔다고 해요. 그래서 ‘만 원 드릴게요, 만 원 주면 합의한다고 하세요’ 그랬지요. 그런데, 그 사람이 또 왔어요. 그쪽 부동산 사장이 제가 주고 싶은 만큼만 달라고 했대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담배 판권 이렇게 주고받는 것 이 사람이 알잖아요. 그러면 바로 구청에다가 찔러서 신고하는 겁니다. 그리고는 또 오겠죠. 자기가 신고할 건데, 백만 원만 달라고. 이렇게 꼬투리 잡힐 일은, 다른 모든 일에도 그렇지만, 장사하려면 더더욱 하면 안됩니다. 그러더니만 대박 부동산은 갑자기 이삿짐 싸서 나갔어요. 새로 들어온 아파트 단지 분양이 다 끝나고 전세까지 다 끝나면 2년 동안 할 일이 없거든요. 그러면 딴 데로 가야 해요. 그래서 결국 담배는 1년 9개월 만에 들어 왔죠.
- 그럼 가장 평범하고도 궁금한 사적인 질문을 드려볼게요.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두시고 편의점을 오픈하게 된 계기는 뭘까요?
아, 그건 세 가지가 있어요.
- 하하하! 답변이 미리 마련되어 있는 ‘준비된 인터뷰이’시네요!
원래 늘 생각하고 있던 거라서요.
예전에 사무실이 문래동에 있었어요. 요즘이야 주 52시간 지켜야 한다고 해서 저녁 6시 되면 냉난방 꺼지고, 컴퓨터 꺼지고 그런다던데, 제가 회사 다닐 때는, 아침 8시에 출근하잖아요? 그럼 이상한 눈으로 봤어요. 왜 늦게 오냐고. 특히 보상일 자체가 남자들이 많이 하기 때문에 문화도 군대식이었어요. 6시 정시에 땡! 퇴근하면 집에 뭔 일 있냐고 물어요. 손해사정 하면서 서류 보고, 소송 건 서류 접수하고 업무 마감하고 집에 바로 오면 11시 반? 현장 사고 조사도 하고, 정비 공장도 다녀야 하니까 외근을 많이 다니거든요. 그래서 차를 가지고 다녀야 하는데, 내부 순환 도로가 출근길에 너무 많이 막히는 거예요. 그래서 새벽 6시 전에 나가야 안 막힙니다. 그런데, 신호등에서 잠드는 경우가 너무 많았어요. 와, 정말 이러다가 죽겠구나. 그래서 지하철 타고 다녔는데, 그러면 내릴 역에서 못 내리고 지나가는 경우가 태반이고요.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매일 애들 잘 때 새벽에 나가서 또 애들 잘 때 한밤중에 들어왔죠. 인생에서 황금기가 아이들과 놀아줄 수 있는 3~40대라고 해요. 그런데, 사람들은 그걸 몰라요. 인생의 황금기를 놓치기가 싫어서 회사 그만두기로 한 거죠. 다들 제정신 아니라고 했어요. 그때 아이들은 유치원 다닐 때였어요.
- 아, 아이들 제일 예쁠 때 계속 자는 것만 보신 셈이네요. 그리고 아빠도 일하느라 힘들었겠지만, 엄마도 혼자 아이들 보느라고 힘들었겠어요.
아내가 2년 육아휴직을 했죠. 지금은 이 근처, 농협 다니고 있고요.
- 그럼 지금 아이들은 몇 살, 몇 살 됐을까요?
제가 2011년도에 결혼해서요, 첫째 12년생, 열한 살, 둘째가 14년생, 아홉 살입니다. 아이들 자랄 때 맞벌이를 하면 장모님 댁에 얼마 드리고 맡기고들 그러잖아요. 그런데 저희는 그러고 싶지는 않더라고요. 그리고, 저 어렸을 때 아버지가 하셨던 이야기가 애들은 크면서 엄마, 아빠의 습관과 지식과 세계를 배운다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애들 등·하원도 시킬 수 있고 급여도 그 정도 수준으로 벌 수 있는 일이 뭘까 고민을 한 겁니다. 그중에서 찾다 보니까 편의점이 교집합이 된 거죠.
- 편의점을 해야겠다는 첫 번째 이유가 사장님 삶의 대 지각변동이 일어날 정도의 큰 이유였네요. 그렇다면 두 번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회사가 문래동에 있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상가가 쭈욱 늘어서 있는데 이상하게 망하는 자리는 계속 망해서 나가는데 편의점은 안 망하더라구요. 직장인들이니까 나가는 시간이 딱 점심 시간이잖아요. 그럴 때 보면 항상 손님들로 바글바글하는 거예요. 그때 제가 깜짝 놀랐죠. 와 장사 정말 잘 된다! (하하하) 주말엔 사람 하나도 없어서 장사 안되고 파리 날릴 텐데…
- 그러게요, 오피스 상권이라서 말이죠. 그렇다면 지금 이 편의점 자리는 주말하고 평일 매출 차가 크게 있지는 않겠어요.
그래도 요즘에는 주말에는 요즘엔 놀러들 많이 나가시기 때문에 조금 영향은 있는데요, 큰 차이는 없습니다. 그런데, 사무실들만 있는 오피스 상권은 주말이면 거의 반토막 혹은 그 이상 나요.
- 그렇다면 세 번째 이유는요?
직장인들이라면 다 느끼는 불안함이죠. 회사가 KB로 넘어가고 나서 많이 변했어요. 처음에는 좀 지켜보는 것 같더라고요. 그러다가 딱 1년 후부터 임금, 직급체계도 싹 바뀌었어요. 연봉은 아주 낮은 편은 아니었어요. 과장 달면 7~8천만 원, 딱 직장인들이 받는 그 정도. 그런데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애들 자는 모습만 보고 나오는 것, 이건 안 되겠더라고요.
- 편의점을 운영하겠다고 결정을 내린 다음에 실질적인 오픈 준비는 어떻게 하셨을지요.
이 점포 자리는 제가 다 발품을 팔아서 잡은 자리거든요. 일단 신도시 쪽 의정부, 춘천, 일산 등등 서울에서 차 타고 한 시간 거리는 거의 다 다녔어요. 물론 속아서 눈탱이맞을 뻔한 적도 있고요. 그래서 집 가까운 곳부터 찾아보자 하고 이곳에 왔어요. 그때 여기를 발견했어요. 제 고집에 여기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 계약했습니다.
- 지리적으로 감이 있으셨나 봐요.
그만큼 발품을 팔아 다녔었고요, 혼자 많이 공부했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부동산에 대해서 잘 모르니까요. 책 보면서 직접 다니고요. 장사 잘되는 점포에 직접 가서 오래 지켜보고 있으면서 여기는 왜 장사가 잘되나 나름대로 분석도 하고요. 6~70군데쯤 다녔어요. 보다 보니 장사가 잘되는 집들은 조건이 몇 가지가 있더라고요.
조건 첫 번째가 끝집입니다. 지금 우리 동네 아파트에서 전철역 내려가는 길목이 있죠. 다들 최단 거리로 이동들을 합니다. 그런데, 우리 점포가 바로 퇴근하고 집으로 올라오는 길에 제일 마지막에 있는 점포예요.
다음 두 번째 조건이 학교를 기본적으로 끼고 있어야 합니다. 초등학교는 사실 객단가, 고객 한 명당 구매하는 물건의 평균 가격이 낮아요. 그래서 중고등학교가 있어야 하는데, 여기는 초등학교를 포함해서 학교들이 밀집되어서 그 조건을 갖추고 있고요.
세 번째가 안정적으로 매출을 유지할 수 있으려면 주택가 상권이어야 합니다.
- 여러 가지 조건을 보고 이 자리를 선택하신 거군요. 공부 많이 하시고 오픈하셨네요.
처음 오픈했을 때 여기 오시는 분들이 건물주 아들이냐고 물어봤어요. 아니면 건물주 둘째 아들이다 뭐다 하고 소문도 돌고요(하하하!)
편의점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전에 남양주 별내점에서 편의점 알바 5개월 했었습니다. 내 것을 하기 전에 먼저 바닥을 훑어야 하잖아요. 그리고 2017년 4월 23일에 오픈했죠.
- 2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