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 편의점 '묵동 이 편한'점, 이진경 사장 인터뷰
외국에서 살아보는 것이 꿈이었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온전히 나를 위해서 투자해본 적이 없는데, 이번에는 해보자 하고 나갔던 호주행. 28살 때의 일이다. 처음에는 영어도 서투르니 한국 사람들이 운영하는 농장에 가서 일을 했다. 그런데 아무리 일해도 돈도 적게 나오고, 안 나오는 때도 있고 심지어 마이너스 벌이를 하는 때도 많았다. 정보가 없으니 당하는 일이었다. 그렇게 몇 번 경험하고 보니 한국에 들어가야 하나 여기서 버텨야 하나의 기로에 서게 됐다.
세상 어디나 그렇지만, 특히 외국에서는 내가 스스로 안 하면 도와주는 사람 없었다. 오로지 내 힘으로, 나를 믿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다른 일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여기에서 살려면 차가 필요하니까 돈을 모아야했다. 레몬 자몽 농장에서 일하기도 하고, 화분 나르는 일도 했다. 인터넷에는 ‘화분을 나르면 된다’고 되어 있는데 정작 가보니까 우리가 아는 그 화분이 아니었다. 150킬로, 200킬로 되는 남자 어른 6명이 들어도 못 드는, 중세 시대 성 구조물 같은 어마어마한 콩크리트 덩어리였다. 결국은 그렇게 2500불 짜리 차를 사서 북쪽 퀸즈랜드. 브리즈번 쪽으로 갔다. 그러나 역시나. ‘웨이팅’이라고 해서 백팩에서 농작물이 익을 때까지 기다리는 말도 안 되는 제도도 있고, 소개비도 가져가고…. 내 이름이 안 올랐다며 돈을 받지 못한 적도 있다. 세상에 나쁜 짓거리는 한국인만 바글거리는 그 조그만 사회에 다 있었다. 그리고, 새벽 4시에 일어나서 6시까지 토마토 농장에 도착하고 점심시간도 제대로 없이 머신 앞에서 꼬박 12시간 일하고 숙소에 돌아와서 씻고 저녁 먹으면 밤 9에서 10시 사이. 그리고, 다시 새벽 4시… 노예 생활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이건 아니다 싶어서 차를 끌고 gingin이라는 곳으로 갔다. 굉장히 큰 스펜서 렌츠라는 농장에 가서 나는 레몬, 자몽, 토마토까지 다 따본 사람이고, 일자리 구한다고 했다. 그곳은 쉬는 시간이 자율, 이것부터가 신세계였다. 그리고 수퍼바이저나 매니저가 있기는 하지만 다른 직원들과 상하 관계에 놓인 것이 아니라 업무가 다 따로 있기에 관여하지 않았다. 워커들도 각자의 스케줄 대로 알아서 일하는, 그런 문화가 특별했다.
그렇게 2년 동안 호주 서쪽을 제외하고는 여행하면서 일하고. 여행하면서 일하기를 반복하면서 몇 바퀴를 돌았다. 중간에 소개비니 뭐니 해서 가로채지 않고 직접 고용되는 형태라서 돈도 많이 모을 수 있었다. 집에 생활비도 보내드릴 수 있었고.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가 서른 살. 아무리 정보가 많다 하더라도 새로운 지역에 가서는 다시 발로 뛰어서 일자리 찾고 적응해야 하니 호주에서 나름대로 인생의 바닥을 찍은 것이었는데, 그 경험이 바탕이 되어 또 짚고 올라간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치 편의점 차릴 때, 딱 그 느낌이었다.
아침 7시 30분이 되니 이제는 출근하고 등교하는 손님들이 점점 늘어나 분주해지는 편의점. 그곳에서 놀라운 점을 하나 발견하게 된다. 사장님은 나와 이야기를 하면서도 딸랑~ 종이 울리며 일부 손님이 들어오면 ‘뭐 주세요’라는 말을 하기도 전에 바로 물건을 집어 들고 인사한다. 백 프로 담배다.
같은 손님을 늘 반복해서 만나다 보면 그가 뭘 무엇이 필요한지 외울 수야 있겠지만 한두 명이 아닌 손님의 취향을 외우는 것은 분명 보통 일은 아니다.
- 편의점에 이렇게 알바생들의 이름을 프린트해서 걸어 놓으셨어요.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배려하는 특별한 마음이 느껴져요.
편의점엔 다섯 살도 오고, 10대, 20대에서 50대, 60대까지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오잖아요. 제가 삼십 대, 서른여섯 살이었는데요, 3-40대 정도야 나 정도니까 뭘 원하는지 알겠는데, 어린 친구들은 모르는 거예요. 우리 애들도 세 살, 네 살 어리고요. 그때 알바하는 친구들에게 도움을 받았죠. 물어보면서 운영을 한 거예요. 너희가 아는 요즘 유명한 것 있으면 대신 상품 발주해달라고 하고요.
이게 로그북이라고 해서 인수인계할 때 전달할 사항, 알아둘 일들 적어두는 노트에요.
사장이라고 해서 거들먹거리지 않고, 같이 한번 잘해보자는 마음이었어요. 너희는 오전 알바, 나는 밤 알바… 처음 오픈했을 때는 저는 마이너스였고, 아니 이후로 계속 마이너스였죠. 그래도 알바생들 주휴 수당은 꼭 챙겨줬습니다. 여기가 상시 5인 이하 사업장이어서 휴일수당, 야간수당 이런 것은 지급을 안 해도 돼요. 그런데, 주휴수당은 15시간 넘게 일한 친구들은 꼭 주게 되어 있어요.
친구들은 점포 매출도 다 봐요. 다 공개해요. 우리 가게 상황이 어떤지 함께 알고 있는 거죠.
- 알바하는 친구들이 이 가게에 와서 배우는 것이 굉장히 많겠어요. 단순히 포스 만지고, 카운터에서 물건을 파는 것만이 아니라요.
손님들이 하는 이야기가 이 편의점은 ‘살아 있는’ 편의점 같다는 거였어요. 가끔 가보면 알바들이 휴대폰하고 있고, 뻣뻣하게 서 있잖아요. 그런데, 사장하고 직원들이 뭉쳐서 으쌰으쌰하는 분위기인 것 같아서 알바들도 좋아했죠.
- 사업하시는 분들, 가게 운영하시는 분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사람 때문에 힘들다’는 거거든요.
저는 1도 문제 없어요. (너무 단호해서 웃음이 나왔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사람을 대할 때 갑과 을의 관계가 아니라 평등한 조건에서 서로 힘든 점 있으면 솔직하게 이야기하고요. 그리고 내가 채워줄 수 있는 위치이기 때문에 채워주고… 대부분 사람들이 ‘요즘 애들’은 싸가지가 없고, 개념도 없다고 하는데요 다 이유가 있죠. 어른들이, 혹은 사장이라는 사람이 그 정도 밖에 안 되는 거죠. 요즘 애들 똑똑해요. 정말 똑똑해요. 이 사람이 나를 위해 뭔가 챙겨주고, 존중하는 것을 느끼잖아요. 그럼, 이렇게 군대 갔다 와서도 열심히 일하고요. 하하하!
마침 조금 전 아침 당번으로 출근한 알바생이 조끼를 갈아입고 옆에 있었다. 노트북을 앞에 놓고 사장님과 인터뷰를 하는 나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지며 놀란다. 이분 가게 자주 오시는 분 아니에요?
- 애들한테 잘해주면 머리 위로 기어오른다, 할아버지 수염까지 뽑는다고들 하잖아요.
그건 기준을 명확히 제시 안 했기 때문이에요. 저희는 입사할 때부터 오전, 오후, 미드, 나이트 자기 할 일을 딱딱 정해놓습니다. 체계적으로 오전에는 무슨 일하는지… 지금은 아침 알바가 왔잖아요. 그 전에 야간 근무자가 물건 다 채워 넣고 청소 싹 해 놓습니다. 그래야 오전 근무가 와서 쇼카드 채워놓고, 물건의 유통기한 확인하는 일들을 무리 없이 할 수 있어요. 자기 할 일만 정해서 딱딱 알려주고 하자고 하면, 안 하는 친구들 없어요. 다만 제가 할 일은 ‘이 친구들이 이러이러한 일을 했을 때 힘들지 않을까?’ 하고 살펴보는 거예요. 다른 잡무 때문에 힘들 때가 많거든요. 요즘은 편의점에서 세탁물 서비스, 신용카드 픽업, 반값 택배 등등 수많은 서비스를 해요. 굉장히 많아요. 본사는 점포한테 이런저런 시키는 것이 많죠. 본사는 어떻게든 이윤추구를 해야 하니까요. 저는 다 하지 않아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여기에서 물건을 팔고, 손님들 친절하게 대하는 것이지 다른 잡무가 있어서는 안 돼요. 주객이 전도되면 안 돼죠.
- 알바들이 일하는 환경을 효율적으로 편안하게 만들어주시네요.
일부 사장님들은 점포에 투자하는 것을 소극적으로 바라봐요. 본사에서 해주기만 바라죠. 내 가게인데… (가게 곳곳에 붙어 있는 재미있는 문구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렇게 꾸며 놓으면 좋은 거죠. 사람들은 그런 돈을 너무 아까워해요.
- 네 그래서 저도 이곳이 재밌었던 거예요.
편의점 가보세요. 청소기 있는 편의점 있나요?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아직도 빗자루 질을 하고 있어요. 그런 것 하나하나가 근무자를 편하게 해주는 거죠. 알바들의 주업무는 물건 파는 것이니까요. 청소야 청소기로 슥슥 빨리하고 이 업무에 집중하게 해줘야죠. 그리고 비오는 날에는 바닥에 매트 쫙 깔려요. 알바들 걸레질하지 말라고 깔아둔 거예요. 박스 깔아놓고, 거기에 테이프 붙이는 것, 그건 아니잖아요.
- 예전에 편의점 앞에 비둘기가 죽어 있었어요. 가게에 들어와서 이 앞에 비둘기 죽어 있다고 알려드렸죠. 그랬더니 알바생이 직접 빗자루 쓰레받기 가지고 나와서 치우더라고요. 깜짝 놀랐어요.
늘 친구들에게 이야기해요. 가게에 내가 없을 때는 너희들이 사장이니까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요. 예를 들어서 시제가 빵꾸나요. 그럼 대부분의 알바들은 내가 잘못했나 하고 내 돈을 박죠. 그런데… (옆에 있는 아침 근무자에게 물어보며) 우린 어떻게 해? (알바가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대신 대답을 한다. 우린 금고에서 꺼내죠) 일하다가 발생할 수 있는 손해, 착오를 굳이 알바생들에게 부담을 지워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친구들은 나를 위해 있어주는 친구들인데요.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아서 많이 틀리기도 하는데요, 이제는 안 틀려요. 그리고 알바들의 연차가 오래되었으니까요.
- 여기는 일하는 사람들이 한 번 들어오면 안 나갈 것 같아요.
네. 제가 잘해드리는 것은 이거예요. 똑같은 일을 해도 정규직, 비정규직이 구분되죠. 주 15시간 이상 일을 했느냐, 안 했느냐 이것이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그러나 저희는 다 포함을 해서 주휴수당을 챙깁니다. 제가 해주는 건 그게 다예요.
방학 스케줄 틀리고, 학기마다 스케줄 다르고요. 친구들이 편의점을 하려고 알바를 하는 것이 아니잖아요. 얘네들의 목적이 돈을 버는 거잖아요. 그래서 먼저 물어봐요. 얼마 벌어야 하는지. 아, 그래 학기 중에 백만 원 벌어야 돼? 그럼 3일은 일해야겠네, 하고 그 스케줄을 맞춰줘요. 공부해야 하는 친구들은 주말로 빼주거나 자기가 원하는 일정, 목표하는 금액대에 최대한 맞춰서 근무를 짜줍니다. 어떻게든…그래서 이탈이 없어요. 게다가 자기가 정한 시간이기 때문에 펑크내지 않고요. 약속을 안 지키는 친구, 거의 없습니다.
큰 차이는 아닌데. 이 친구들이 가려운 부분이 어딘지 그것을 내가 빨리 캐치하고 그 부분을 건드려주면 만족하죠. 세상 사람들 일이 다 그렇잖아요. 합의를 볼 때 상대방의 목적이 무엇인지 빨리 알아내서 그 부분을 빨리 얼러줘야죠.
- 하루에 몇 명 정도의 손님이 오가시나요?
계절마다 틀린데, 보통 하루 350~400명 정도의 손님이 오십니다. 봄, 여름에는 450명 정도.
- 여기에 오시는 손님들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요, 다 좋은 손님들만 오실 것 같지는 않고요.
성향이 안 좋은 분들이 있기도 해요. 얼마 전에는… 이 이야기를 해도 되나? (옆의 알바생을 쳐다보니 바로 누군지 나온다. 아, ‘꽃다발’이요?)
- 꽃다발이요?
네. 저희 가게에 여학생이 근무하는데 머리가 하얀, 안경 쓰신 육십이 넘은 할아버지가 꽃다발을 주고 가셨어요. 그리고 비 오는 날이었는데 목걸이, 귀걸이 세트도 주고 가고…
- 뭐예요?
생각이 나서 사 왔대요. 젊은 친구들이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죠. (이 정도면 늙은 친구들도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래서 그런 일이 또 생기면 꼭 이야기하라고 했어요. 경찰에 신고를 하든 제가 챙겨야 하잖아요. 그래서 야간 끝나고 낮에 제가 가게에 같이 나와 있기도 하고 그랬어요. 이런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다 동네 손님들이라 괜찮습니다.
- 최근 2~3년 동안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메뉴 개발이 엄청나게 진전이 있었어요. 이제는 거의 일본 편의점 못지않은 수준이 되었는데요.
일본 편의점을 많이 벤치마킹 하죠. 의무적으로 본사 몇 년 차 되면 한 번씩 의무적으로 일본을 갔다 온다고 합니다.
- 그렇다면 매우 사적인 질문. 편의점 음식으로 식사 많이 하셨을 텐데, 사장님이나 우리 알바생 분께서 특히 좋아하거나 추천하는 조합이 있는지 궁금해요. 편의점 식사 조합?
(알바) 편의점 음식을 그동안 너무 많이 먹어서… 이제는 집밥을 먹고 싶을 지경인데요. 하하! 그래도 고르라면… 요즘 도시락이 너무 잘 나오죠. 어린 친구들은 와서 컵라면이랑 김밥들 많이 먹고, 돈 많으신 분들은 와인에다 치즈 사다 드시고요. 그리고 비빔면, 불닭볶음면이나 짜파게티가 하나만 먹으면 양이 적거든요. 그래서 두 개 사가지고 그냥 한꺼번에 먹기.
- 신제품 나오면 드셔보시기도 하나요?
신제품 나오면 맨 처음엔 정말 많이 먹어봤었죠. 그런데 도시락이 새로 나오면 반찬이나 메뉴가 아주 영 딴판으로 새로운 것이 아니에요. 예전에 집어넣었던 반찬을 새롭게 조합해서 내기도 하고요. 만약 정말 특별한 메뉴가 새로 개발이 되어서 나오면 가격이 많이 비싸죠. 그러면 손님들이 많이 안 집어요. 일본은 편의점 음식이 굉장히 맛있고, 완전히 대중화되어 있어요. 우리도 그렇기는 한데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이 많아요. 그래서 신제품이 나와도 예전 익숙했던 메뉴, 조합들을 찾게 됩니다.
- 24시간 계속 돌아가야 하는 편의점 특성 때문에 알바들이 다들 모이기는 어렵겠네요. 회식도 가끔 하고 그러시나요?
코로나 전에는 다들 모여서 한 번씩 회식했었어요. 코로나 때부터 못 했죠. 예전엔 회식을 남학생 따로, 여학생 따로 했거든요. 남학생들은 뭐 먹을래? 그러면 고기나 곱창 좋아하니까요. 저 아래 내려가서 같은 동네니까 가서 먹고요. 곱창집 가면 한 80만 원 나오기도 했어요. 여학생들은 참치 먹고…
- 지금은 알바생들이 총 몇 명이죠?
6명이네요. 원래 7~8명 해서 돌립니다. 그런데 일 년에 한 번 정도 이렇게 점점 인원수가 빠지는 때가 있어요. 저는 알바생 처음 만나면 3개월을 봐요. 다른 친구들의 수준 같이 일에 익숙해지는 기간이죠. 그 3개월 동안 체크해요. 중간중간 나와서 알려주죠. 그러면 당연히 따라오는 친구도 있고, 못 쫓아오는 친구들도 있죠. 따라오면 이제는 우리랑 2년, 3년 가는 거고요.
못 따라오는 친구들은 보냅니다. 그 기준은 근무하면서 친구들 데리고 와서 논다거나… 여기도 일 하는곳이니까요. ‘근무자’로서 서 있는 곳이라는 직업에 대한 개념이 처음 오면 명확하지 않잖아요. 그걸 알려주는 거죠. 3개월 동안 봅니다. 바뀌지 않으면 할 수 없지요. 그동안 몇 명 있었어요. 물론 계약하기 전에 무조건 다 이야기를 하죠. 카운터 안에는 근무자 외에는 아무도 들어올 수 없다거나 하는 규칙들을요.
- 그렇게 해서 함께 하게 된 알바생들이 이곳을 그만둘 때 가장 큰 이유는 ‘취업’인 것 같아요.
네. 취업이죠. **이란 친구는 나이가 스물여덟이거든요. 그 친구도 한 2년 정도 일했어요. 잡고 있으면 저야 편하죠. 그런데, 계속 잡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 이제 나가서 준비하라고 했어요. 여행도 많이 다녀보고, 새로운 것을 많이 하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이야기합니다. 여행을 많이 추천하죠. 알바생들 그만둘 때는 비행기 푯값 정도는 챙겨주고요.
아, 그리고 **이는 그만두는 대신 여자친구가 들어와요. 벨기에에서 온 친구인데요. 아마 1월쯤부터 함께 일하게 될 겁니다.
- 와, 재밌네요!
얼굴이 진짜 하얘요. 하하하! 눈같이 하얀 데에다가 눈, 코, 입 그려놓은 것 같아요. 한국어를 배우러 온 학생이었는데, 같이 알바 하다가 만났대요.
- 우리 인터뷰가 거의 막바지로 접어드네요. 요즘 편의점이 거의 치킨집만큼이나 많이 들어와 있잖아요. 우리 동네만 해도 요 몇백 미터 반경 안에 세 개, 좀 더 내려가면 두 개 더 있고요. 이렇게 우후죽순으로 생기고 따라서 경쟁이 치열한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편의점을 열고 싶어 하는 분들이 계시죠. 그분들에게 6년 차 점주로서 꼭 해주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요.
몇 개가 있는데요, 그중 첫 번째는 본사 말 믿지 마라.
- 본사 말 ‘잊지’ 마라가 아니고요?
편의점은 진입장벽이 낮아서 업에 대한 아무런 지식과 경험이 없이 접근하는 것이 대부분이에요. 시작할 때 어떤 시스템이냐 하면요, 먼저 창업 설명회에 가요.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는 자본 금액 얼마, 1순위 2순위 지역. 예를 들어 1순위는 중랑구 2순위는 노원구 라고 이야기하면 나중에 담당자가 전화가 옵니다. 중랑구 개발팀 담당자라고 하면서요. 그리고 어디, 어디, 어디 이야기하면서 고르라고 해요. 그런데, 사람들이 상권분석도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고, 또 모르니까 담당이 고르라고 하는 고만고만한 자리에 바로 오픈하는 겁니다. 그래서 그렇게 편의점들이 다들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거예요. 유동인구가 많다고 해서 다 좋은 것만은 아니거든요. 인구가 흐르는 자리가 있고, 머무는 자리가 있는데 그런 지식 없이 덤비는 겁니다. ‘오전에 내가 좀 돌리고, 오후에는 신랑이 돌리면 되겠지’ 그런 생각으로 시작하는 것, 그게 제일 문제입니다. 그저 본사 말을 믿고 오픈하죠.
- 그럼 두 번째 하고 싶은 말씀은?
편의점이 전국에 4만 개가 넘습니다. GS, CU 여러 브랜드 다 포함해서요. 다 똑같은 편의점이지만 본인만의 노하우로 차별화를 꼭 시켜야 합니다. 우리 가게는 보이는 것도 있지만, 저희 소주 가격은 아시죠?(이 편한 편의점은 2017년 오픈 당시의 가격으로 판매하고 있었다. 그러나 2023년 1월 인상할 수 밖에 없다는 안내문을 올렸는데, 그것도 이 글을 정리하고 2023년 새해에 가보니 ‘음력 1월’이라고 수정되어 있었다) 소주 가격도 그렇고 우유 가격 또한… 저희가 맛집이 아니니까 맛있는 음식으로 손님들을 끌 수는 없지만 다른 방법은 개발할 수 있거든요. 딴 데와 차별화된 가격 등…
- 천 원 매대 굉장히 신선했어요. 혹시 본사에서 와서 골치 아파하지는 않나요?
담당이 오면 저는 먼저 묻습니다. 예전에 GS에서 이렇게 해본 적 있냐고요. 없죠. 다 새로운 도전이잖아요. 겨울에는 특히나 손님이 줄어들기 위해 제가 오히려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내서 푸쉬합니다. 매출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니까 해보자, 해보자 해요. 매출 활성화를 위해서 제가 노력하는 것이죠.
그리고 우리는 딴 데 보다 유통기한이 빠릅니다. 발주를 넣을 때 적정한 수량만큼 넣어서 손님들이 신선한 제품을 가져갈 수 있도록 들어온 물건 다음 날 바로 가져갈 수 있도록 물건 회전을 시킵니다. 그것 굉장히 중요합니다.
- 저도 이 편의점에서 느꼈던 것이 그거였어요. 도시락도 여러 종류 갖다 놓지 않으시더라고요. 평소에 딱 나가는 것들만 몇 가지만 택해서 놓는 것 같았어요.
네. 나가는 것 위주로 집중적으로 시킵니다. 그리고 우유가 유통기한 8~9일이라고 하면 3~4일 된 것은 다 빼버립니다. 유통기한을 봤을 때 ‘아~ 뭐야 이거 다 됐잖아’ 이 생각 안 하도록요.
이것도 우리 편의점의 차별화된 점이라고 봐요.
그리고 만약 매대에서 물건이 놓여 있는데 안 나가요. 그럼 팔릴 때까지 여기에 놓아야 할까요. 아니에요. 안 나가는 상품은 빼고, 새로운 것을 넣어서 이 안에서 경쟁을 시켜야죠. 이중에서 또 안 나가는 것 있겠죠? 그럼 또 빼는 거예요. 매대의 라인업은 계속 돌립니다.
- 그러고 보니 가게 상품 배치가 자주 바뀌었어요. (실제로 아들이 매주 수영장 갈 때마다 홈런볼을 딱 한 개씩 사가는 지라 잘 알고 있다. 홈런볼의 위치가 확 바뀔 때가 있었다. 지금은 꽤 오래 한 자리에 머물고 있지만…)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해도 될까요?
맨 처음 가게 열 때 담배가 없었다고 말씀드렸잖아요. 그래서 특히 어르신들이 아니 가게를 열려면 갖춰놓을 것 다 갖춰놓고 열어야지 불편하게 이게 뭐냐고 다들 그러셨거든요. 그래서 그때 생각을 했죠. 담배는 딴 데에서 사도 음료수 같은 다른 것들은 여기에서 사게 하자. 그래서 우유나 술값을 인상하지 않고 지킨 겁니다. 맥주 피쳐도 다른 곳보다 가격이 낮을 겁니다.
창업설명회 가면 ‘경영주 누구누구’라고 저를 불러요. 경영주라고 하면 경영을 하는 사람이니 어떻게든 이윤을 뽑아내야 하고, 판을 잘 짜서 어떻게든 손님들의 지갑을 열게 하는 것이 제 목표죠. 초반에 우리가 담배가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자리를 잡고 꾸준히 지금까지 오게 된 계기가 된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제일 고마웠던 것은 그런 저를 격려해주셨던 손님들이에요. 지금도 고마운 분들입니다.
***
아침에 일어나서 다른 이들이 보통 퇴근하는 오후 6시 혹은 7시까지 일하는 루틴이 잡힌 나는 편의점의 새벽을 상상하지 못한다. 그리고 편의점을 보면서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할 수 없는 일이겠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바로 하루도 빠짐없는 ‘꾸준함’이다. 그 두 가지를 모두 정복(?)한 이진경 사장과 어두컴컴한 새벽부터 아침 해가 뜰 때까지 세 시간여 이야기를 나누면서 내내 감탄했다. 녹취 파일을 풀면서 창피할 정도로… 인터뷰한 파일을 풀 때마다 부끄러운 것은 모든 인터뷰어들의 공통사항이라고는 하는데, 나는 이날 인터뷰이의 말을 간혹 가로막을 정도로 감탄이 과했다.
이진경 사장의 카톡 프로필에는 이렇게 씌어 있다.
<시간 날 때 놀아라!>
과연 그는 바쁜 편의점 일과 중에서도 가족들과 함께 좋아하는 제주도로 여행을 가기도 하고, 알바생 몇몇과 함께 시간을 내어 바다낚시를 가기도 한다. 인터뷰할 때 옆에서 근무하고 있었던 알바생도 한 번 함께 갔다고. 밤에 고기가 나오기 때문에 밤새 섬을 돈다고 한다. 내가 보기에는 이진경 사장은 시간 날 때 노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내서’ 즐길 줄 아는 풍류인 같았다. 어디 한 군데에 머물지 않고 자유롭게 흘러가는….
인터뷰를 정리하려고 폰에서 편의점 사진을 찾아보니 내가 꽤 오래전부터 이 편의점 사진을 찍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맨 처음 눈에 띈 것은 커피머신 위에 놓여 있는 소녀상. 우리 뒤에 태어나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이 일제 강점기, 암흑기를 점점 희미하게 잊을 수밖에 없을 텐데, 이 작은 인형 하나로라도 조금이라도 그 시절에 대해서 이야기해주고 싶었다고 한다.
별 유쾌한 뉴스를 좀처럼 찾기 어려운 요즘. 우리 동네 ‘이 편한’ 편의점 이야기가 추운 날씨 군고구마처럼 달콤하고 뜨끈하게 우리 마음을 채워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