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감을 밤시간과 맞교환하기를 중단하라.
어우, 왜 이렇게 피곤하지?
갑자기 왜 이리 침침하지?
하루가 다르게 체력이 저하되는 것을 느끼며 조금 투덜댔더니 어떤 분이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그게 늙는 거에요. 그냥 그 상태를 견디며 사는 것."
나이가 든다는 것은 컨디션이 좋은 날들이 하루, 이틀씩 줄어든다는 의미라고 이미 발레리나로서는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는 김주원도 말했다. 몸을 쓰는 사람이니 그 느낌에 더욱 민감할 것이다.
오늘은 너무 피곤해서 정말 오전 시간을 다 물리고 누워서 잠을 자고 싶었다. 가방을 들고나갈 준비를 다 해놓고는 지쳐서 풀썩 침대에 몸을 날려 누웠는데, 머릿속 모터는 계속 돌아간다.
혹시 햇볕이 잘 들지 않는 1층이라 약간의 우울감에 이렇게 무기력해지는 걸까 싶어서 다시 벌떡 일어나 앉았다. 음식물 쓰레기를 가지고 나가면서 뜨거운 햇볕을 온몸으로 다 흡수해본다. 내 몸안의 행복 호르몬이 꿈틀거리며 분출되기를 바라며.
현관문을 열고 다시 들어온 뒤, '밖에서 결심했던 대로 가방을 들고 얼른 나가자!'를 되뇌면서(진짜 입으로 되풀이했다) 한 발, 한 발 떼었다. 아니, 겨우 몇 미터 발을 떼어 '가방 들 결심'을 하는 것이 이리도 힘들 일인가. 그동안 약간의 조증 상태로 들떠있던 나의 '의욕' 레벨이 지금 뚝 떨어진 상태인 듯했다.
그렇다면 한번 점검해보자.
요 근래, 크고 작게 '칼자루를 내가 쥐지 못한' 일들이 많았다. 즉 내가 어떤 일을 했을 때, 결론도 내가 내버리면 참 좋겠지만 어떤 이에 의해 선택을 당해야 하는 상황, 혹은 운에 맡겨야 하는 것이 버거웠다.
거의 매일 가는 도서관 마당에 차를 댈 데가 나올지 안 나올지, 혹은 2층 정보 도서관에 자리가 날지 안 날지 조마조마하는 것조차도 이제는 스트레스로 느껴졌다.
크게는 기획서가 제작사에 의해 간택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 겁났다. 매번 쓰는 기획서의 시놉시스가 통과되기까지 지금 수개월 공을 들이고 있지만, 이야기 방향이 엎어진 것만 해도 지금 벌써 네 번째다. 그리고, 나는 거의 마지막 기회라고 여겨지는 기획서를 앞에 두고, 단 한 글자도 쓰지 못하고 있다. 물론 머릿속에는 있다. 겁이 나서 앞으로 돌진!을 외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나도 나를 모르겠다...)
이 기획서의 방향이 제작사와 맞아서 과연 부활할 것인가. 아니면 얼지 마, 죽지 마, 애원했지만 결국 없던 일로 스러질 것인가. 이 기로에 서서 지금 굉장히 스트레스받고 있다.
이유 없이 마음이 불안할 때 달마가 제자인 혜가에게 했다는 말, "그 불안한 마음을 나에게 주어라. 내가 그것을 편안하게 해 주겠다."라고 하신 말씀을 생각해본다. 혜가는 "그 마음이라는 것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하지만 나는 "여기요!" 하면서 배낭에서 주섬주섬 김밥, 물, 오징어 땅콩, 커피우유, 단팥빵 꺼내듯이 다 꺼내어 드릴 수 있는데...
도서관이 문을 닫는 날인지라 마른 수건에서 물 짜내듯 힘을 내서 스터디 카페로 왔다. 마침 운 좋게 차를 댈 자리가 하나 있다. 옆 차가 진짜 막 대어버린 터라 아슬아슬했지만 주차에 성공했다. 이렇게 오늘의 '럭키 드로우'에 성공하고, 자리에 앉아 몬스터를 쭈욱 다 마셔버렸다.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른 일 다 미뤄놓고 내가 왜 이렇게 피로하고 축 처지는가에 대해 생각을 했고, 여기에 정리를 했다. 다른 이들에게는 별 쓸모없는 글이 되었지만, 그냥 내 발자취 하나 남기는 것에 의의를 둔다.
이번 주 토요일은 영화 공부 모임에서 강원도 정선으로 워크샵 간다. 오늘부터 들뜨고 즐거워해도 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