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 드라마의 뒷 모습
얼마 전에 '광주 공항' 불륜 검거(?) 장면이 계속 머릿속에 남는다. 그리고, 매우 한국 토속적이고, 전형적인 불륜과 발각 그리고 처절한 복수의 과정이 공항 대기실 앞에서 종합 엔터테인먼트로 전락하여 모두 드러났다. (동영상 링크는 따로 올리지 않겠다)
남편(으로 추정되는 자)은 내연녀와 함께 제주도 여행을 가려고 대기실에 있다가 아내에게 잡혔고, 그녀는 또 다른 여자의 머리를 움켜 쥐었다. 보기에도 정말 아플 정도로 두손 꽉 잡고 머리채를 흔들어대는데 나도 모르게 아유~ 하고 탄식이 흘러나왔다.
또 하나 속터지게 했던 것은 그 영상에서 가장 논란이 되었던 남편의 태도. 여자와 여자를 떼어놓지도 못하고적극적으로 싸움을 말리려는 의도는 1도 보이지 않는다. 그냥 이 시간만 잘 버티겠다며 모래밭에 머리를 처박은 한 마리의 타조일 뿐이었다.
그 영상에 대한 반응들이 대단히 재미났던 지라 댓글들을 꼼꼼히 다 읽어봤다. 저렇게 생긴 남자도 바람을 피우나. 저런 남자 뭐가 좋다고 같이 제주도 여행까지 같이 가고 불륜을 저지르나. 저 아줌마 폭행죄는 면하지 못하겠다. 공공장소에서 저 정도면 집에서 저 아저씨는 엄청 맞고 살겠구만. 지 남자를 족쳐야지, 왜 엉뚱한 여자만 잡냐. 남편은 집에서 때릴 시간이 많으니까 지금 잡힌 김에 여자부터 잡는 듯. 자식이 불쌍하다 등등....
다 맞는 이야기다. 그리고, 다 맞을 수 밖에 없는 것이 댓글 하나하나 모두 강력한 '자기 투사'가 되어 콕콕 꽂히고 있기 때문이다. 남편이 과거에 배신을 해서 상처가 깊던 사람은 저 '썅년'이 어디서 남의 남편을 꼬셔다가 후려 놓냐!가 되는 것이고, 다시 없을 사랑에 빠져 '불륜'이라는 단어조차도 우리의 관계를 담기에 너무나 저속하다고 여겼던 당사자들에게는 저 우악스러운 아주머니가 열등감에 빠진 무식한 아줌마라고 밖에 안 보일 것이다. 그리고 엄처시하에서 수십 년을 잡혀사는 중년의 남자들은 이를 보고 그저 허허 웃고만 있을 것이고(뭐라고 한 마디 했다가는 옆구리를 꼬집히거나 발길질 당하던 경험에 익숙해서 본능적으로 조용히 웃고 넘어가는 것이다!) 제발 아빠 좀 놓아주지 꽉 잡고서 수십 년을 괴롭힌 엄마가 있다면 이 영상의 아줌마가 정말 밉상에, 아무 짓거리고 안 하고 버티고 있는 저 못난 대머리 아저씨에게서 아빠가 보여 질식하기 일보직전일 것이다. 다 제각각 삶의 결에 따라 해석한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이 머릿속에서 올라왔다. 왜 여자는 싸울 때 여자의 머리를 잡을까? 누군가가 '너는 앞으로 몸싸움을 할 때 머리채부터 잡아라. 먼저 머리를 잡는 사람이 기선을 제압한다'며 기술을 전수한 것도 아닐 텐데 같은 싸움 스승에게서 배운 듯 모두 머리를 잡는다. 물론 여자가 머리카락이 길어서 자연스럽게 잡히는 대로 싸우다 보면 머리채더라 라는 가설도 설득력이 있지만, 그 너머의 것이 있을 것 같았다.
'광주 공항' 영상도 그렇고 기존 우리의 편견과 틀 안에서 보여진 여자 대 여자 머리 뜯기는 나이든 여성이 젊은 여성의 머리를 잡는 장면이다. 땡~! 하고 공이 울리고 싸움이 시작되면서 악에 받친 손윗 여성은 먼저 팔을 뻗어 상대 여자의 머리카락, 내 남편을 뺏어간 년의 머리카락을 잡을 것이다. 순간 눈에 들어온 젊은 여성의 윤기나는 머리카락. 머리카락도 피부의 일부인지라 나이들수록 퍼석해질 수 밖에 없다. 젊은 친구들의 머리는 숱도 탐스럽게 많고, 반짝반짝 빛까지 난다. 아, 그런데 내 머리를 보니? 빠글빠글 브로콜리 아줌마 머리라면? 내가 그 머리를 하고 싶어 했나. 아침에 머리 감고 나서도 너무 바쁘니까 그저 툭툭 털고, 드라이 안 해도 될 머리 찾다보니 그리 된 거지. 이쯤 되면 안 그래도 악에 받쳐 있던 마음이 미칠듯이 피스톤 운동을 하면서 요동을 칠 것이다. 질투심. 열등감. 이미 떠내려보낸 나의 젊음. 그 청춘을 빼앗긴 게 다 남편놈 때문인데, 그 놈을 뺏은 이 년! 남편도 이 탐스러운 머리카락을 손가락 빗질을 해주면서 좋아했겠지. 아, 그리고 그 머리채를 잡고 있는 한심한 나.
그러면서도 아직 분은 풀리지 않는 터이다. 뒷일은 정신을 차리고 나서 생각해보자.
순간 여자의 이런 걷잡을 수 없는 아린 마음에 쐐기를 박는 것이 하나 있었으니... 머리채를 흔들 때마다 은은하게 사방으로 풍기는 좋은 향기... 이 향기는 도저히 당해낼 수 없을 것 같다. 상상을 해보았다. 무식하게 입으로 이년 저년 하면서 머리채를 잡아 정신없이 흔들다가 그녀의 샴푸냄새를 맡는다면... 울 것 같다. 아마도.
그녀의 남편도 이 샴푸향을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준열한 사실이 브로콜리 아주머니의 마음을 너무 아프게 할 것 같았다.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네 샴푸향이 느껴진거야.
이 장면에서 이 노래가 나오면 어떨까. 많이 슬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