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쯔강 상류에서 떠밀려 내려와 유유히 흐르는 강물처럼
어제는 스터디 후 술자리에서 나에게 1억이 생긴다면 뭘 하겠냐는 질문이 나왔다. 1억! 말만 들어도 기분이 좋아져서 잠시 생각해본 다음에 가장 현실적인 답을 내놓았다.
- 빚 갚을 거예요.
성인이 된 다음, 계속 따라온 빚. 2002년 만들었던 마이너스 통장은 잠깐 다른 것으로 갈아타서 마이너스를 없앤 뒤 다음 달 겨우 클리어한다. 20년 걸렸다.
1억. 꽤 큰돈 같지만, 1억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얼마 전에는 나의 여러 상황을 종합해 보아 서울 땅의 '브랜드 아파트'는 사지 못할 것이 맞으며(이유는 젊은 시절, 집 사서 점프, 점프 뛰어가면서 아파트에 들어가야 했는데 나이 오십이 다 되었는데 이 단계가 모두 생략이 되었기 때문이다), 가장 현실적인 재테크 방법은 현재로서는 '글 쓰기' 즉, 본업에 충실이라는 조언을 들었다.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생각해봐도 그 방법밖에 없어서...
여기에서 '브랜드 아파트' 이야기는 왜 나왔는가 하면...
우리 동네는 내가 사는 아파트와 이 편한 세상 아파트가 다윗과 골리앗처럼 대치되어 있는데 꼬꼬마 다윗의 거주민인 나는 몇 년 전, 딸 손을 붙잡고 집 보는 척하고 골리앗 구경을 간 적이 있었다.
그때 방에 ㅋㅋㅋ 아이고 웃겨라, 따로 화장실 붙어 있는 것 보고 딸이 얼마나 신나 하던지. 이 집에 오면 자기 이 방 달라고 하면서 통통 뛰었다.
골리앗은 그 시절보다 4.5억 정도 더 뛰었다.
돈도 몹시 사랑하는 마음으로 어디에 어떻게 투자해야 할까 공부도 하고, 이것저것 상품도 뒤져 보고 부지런히 돌봐주어야 느는데, 그동안 홍수 난 양쯔강 상류에서 떠밀려 내려가며 숨이나 겨우 쉬려고 허우대는 꼴로 살아왔던 터라 그런 돈 공부가 내 일 같지 않았다.
그래도 지금은 양쯔강 중하류 정도로 내려와서 가끔은 강물에 몸을 맡기고 누워서 하늘도 바라본다. 그런 느낌이다.
그래도 무소유를 외치며 검박하게 살겠다는 결심은 딸린 식구 있어서 못하겠다. 워낙 타고나기를 화려한 것 좋아하고 우리 엄마 말씀대로 '여기저기 펑펑 쓰고 다니고, 줄줄줄 흘리고, 퍼 주기 좋아하는' 성정이라 더더욱 그렇게는 못 사는 것을 내가 잘 안다.
지난달에는 아는 대표님 소개로 감독 한 분을 소개받았는데, 꼭 투자받을 수 있게 할 테니 대본을 먼저 써 달라고 간곡히 부탁하셨다.
감독님의 전작을 살피니 참 돈 안 되는, 의미 있는 작품들이다. 죽기 전에 '괜찮은' 작품 하나 하고 마무리 짓고 싶다는 노감독의 간절한 마음이 와닿았다. 게다가 각색할 책을 전해 받아서 펼치니, 오호! 영어책을 한국어로 번역한 것인데 교정과 감수를 하신 분이 미국에 계신 내 페친이셔서 깜짝 놀랐다. 혹시 이것도 인연인가? 도와드려야 하나?
그러나, 정중히 거절했다. 이게 내 재테크니까.
- 이제는 황 작가, 재능을 낭비하지 말고 살아.
또 다른 좋으신 작가님이 해주신 이야기다. 내가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는 아직도 안개 속이지만, 이제는 시간 싸움이라는 것 안다.
내게 재능은 시간과도 같은 의미겠다. 버텨야 하고, 잘 써야 하고.
오늘 아침 본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류재숙 변호사가 읊은 시다. 안도현이 '연탄 한 장'
그 장면을, 이게 뭐라고 계속 울음을 참으며 봤다. 이게 우영우 드라마의 힘이다.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방구들 선득선득해지는 날부터 봄까지
조선 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
이렇게 사람들이 마음 따뜻해지는 글 으깨어 쓰며, 재테크 할란다,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