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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섬 Aug 05. 2022

정색의 기술

평생을 오매불망 저자세로 살아온 자의 기록

나는 사람들에게 정색을 잘 못한다. 


부당한 충고를 받더라도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에는 어, 내가 정말 그런가? 하고 자책과 반추를 먼저 하지, 그래서? 어쩌라구? 그럼 너는? 이런 말을 못 한다. 할 생각도 못한다. 


그런데, 간혹 '싫은데?'라는 말을 효과적으로 잘하는 사람이 편안하게, 흐르는 강물처럼 사는 것을 보게 된다. 정색 잘하는 사람들은 워낙에 자기의 감정에 민감하고(건강한 의미에서 '접지'가 잘 된다는 의미) 충실해서 미안한 일이 생기면 냉큼 다가와 사과도 묵직하게, 진심으로 할 줄 안다. 


나 같이 정색 못 하는 아이들은, 일상이 미안한 일 투성이라 논외. ㅋㅋㅋㅋ  




커브스에서 헬스로 갈아타 보려고 몇 군데 돌아다녀 봤는데, 엄청난 피지컬의 관장님이 운영하셨던 그곳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그곳은 티오가 나지 않아 당분간 피티를 받을 수 없다고 한다. 이틀 지나 문자를 받았다. 

문제는 벌써 소중한 시간, 이틀이 지났다는 것과 문자가 너무 성의가 없었다는 것. 맞춤법 틀리는 것은 기본이고, 그래도 상담받으러 온 사람도 고객, 가망 고객인데 '우리 체육관은 너 같은 근거지는 안 받아.'라는 식으로(물론, 내 오바다. ㅋㅋㅋ) 띡 두어줄 남긴 것이다. 


'그래도 빈자리 날 때까지 제가 기다리겠습니다.' 


그러나, 솔직한 내 마음은 이거였다. 이렇게 문자 보낼 뻔도 했다. 


비바람이 몰아쳐도, 눈보라가 쳐도 그 자리에 앉아 공주를 기다리는 황장군(혹시..... <은행나무 침대>라는 영화.... 아세요....? ㅋㅋㅋ)처럼 오매불망 기다리는 것 잘하고, 삶의 스탠스가 '오매불망 저자세'인 내가 이제는 이런 작은 일에서도 보수해나가기 시작했다. 



이제 '황섬'이라는 집도 자주 보수해야 오래 쓴다. 

당당 다가다가 당당 다가다가~ "액션!"


그래서, 답 문자 안 보냈다. 딴 때 같으면 [네 ^^]라도 보냈을 텐데, 네가 이렇게 성의 없게 나오면 나도 성의 없을게.라는 의미의 반응으로 '무반응'을 선택했다. (장하다, 그래) 


나를 기분 나쁘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왜 그랬을까 보다 '내가 지금 기분이 많이 나쁘네' 나의 기분을 먼저 살피는 것이 옳다. 이것은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라는 땅에 기분의 '접지'를 원활하게 할 삶의 기술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런데, 이쯤에서 궁금한 것. 

다른 사람이 어떤 이야기를 했을 때 그 사람을 기분 나쁘게 하는 사람은 왜 그러는 걸까? 쾅! "이의 있습니다!"를 외치는 것도 아니고. 이의가 있다면 (물론 이것도 마음이 두근두근 대지만) 충분히 오픈해서 대화할 준비가 되어 있다. 

모르고 실수한 것일까, 아니면 다분히 의도가 있는 것일까, 혹은 평소 꼴 보기 싫어서 저절로 발사되는 것일까. 궁금하다.  물론 지금 내 기분은 아주 나쁜 것은 아니지만, 거의 안 나쁘고, 오히려 편안한 상태이긴 하지만, 누군가가 자꾸 태클을 걸어서 그 사람은 왜 그럴까 생각하다가 나온 글이다. 


만약 이 글을 읽고 '난가?' 하면 99. 9 프로는 절대 해당 사항이 없으며, 0.01프로에 해당하는 사람은 '그럼 나는 황서미한테 자꾸 왜 그랬을까?' 세션으로 넘어가시면 된다. 


정색과 무반응. 

앞으로 내가 무척 노력하며 갈고닦아야 할 삶의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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