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7월 27일 서울신문 <황서미의 시청각 교실>
“사랑합니다, 형님!”
지난달, 거실 장판을 갈아준 도배 집 사장님이 전화를 받으며 외치는 우렁찬 인사다.
집 전체 바닥을 새로 한 지 일 년이 채 안 되었는데, 왕창 들뜨고 군데군데 찢어지고 차마 눈 뜨고는 못 볼 지경이 되어버렸다. 다시 믿을만한 다른 업체에 작업을 맡겼다.
“돈 들어왔습니다, 형님! 계산 안 해봤습니다, 형님! 다 맞겠죠, 뭐.”
세상에서 기쁘기로는 상위 0.5 퍼센트 안에 드는 ‘입금’ 소식이다. 일하는 분들은 두 손이 계속 바빠 스피커 폰으로 통화한다. 별도리 없이 모든 대화가 내 귀에 꽂힐 수밖에.
“하루 정도 돈 안 들어오면 연락해 줘. 그 사람이 깜빡깜빡할 때가 있걸랑. 하루 이상은 안 봐줘. 나는 그런 거래 안 해.”
형님도 쩌렁쩌렁하기로는 만만치가 않다.
“아무렴요, 형님. 다 형님 덕분에 인테리어 들어가고, 벌어먹고 살고 있습니다, 형님!”
말이 끝날 때마다 방점으로 눌러주는 ‘형님’이라는 호칭이 무척 정답게 들린다. 휴대폰 저편의 형님은 도배 사장님에게 얼마나 큰 존재인가! 두 사람은 언제부터 인연을 맺었기에 이토록 놀라운 신용의 관계가 형성된 걸까.
모든 사람에게 ‘벌어먹고’ 사는 일이 돌발 상황 안 터지고 척척 돌아가는 일이라면 얼마나 좋을까만, 특히 프리랜서들은 집안 경제 진돗개 하나, 둘, 셋 발령에 늘 대비 태세를 갖추어야 한다. 평소 일하면서 마음 다해 존경했던 분이라도 처음 맺은 약속이 지켜지지 않아 그간 쌓은 신뢰가 모래탑으로 무너지는 것을 몇 차례 겪은 터였다.
한 선배 작가님은 줄 돈을 때맞춰 아니 주는 것은 사람의 ‘목숨’을 끊는 것과도 같다고 딱 잘라 말했다. 우리 모두 각개전투, 각자도생의 삶을 사는 비슷한 상황이라 언성을 더 드높였던 것 같다. 물론 도배 집 사장님께 입금 확인차 친히 전화 주신 ‘사랑하는 형님’과 같이 하루라도 늦으면 끊을 정도의 칼 거래는 차마 못 한다 해도 선배의 일갈은 지금도 생생하게 내 마음의 ATM기 앞에 커다랗게 써 붙어 있다.
“혹시 이번 주 안으로 입금이 될까요? 제발 부탁드립니다.”
“죄송합니다, 자꾸 돈 얘기 해서요. 입금 부탁드릴게요.”
이렇게 허리 숙여 굽신굽신, 죄인이 되는 것 같은 말은 아무도 안 하고 사는 세상이 오기를, 불가능한 것은 물론 알지만, 마음 보태 한 번 더 소망한다.
“사모님, 장판 벗겨보니까 너무 얇은 거고요, 안쪽을 접착제로 꼼꼼하게 붙이지 않아서 이렇게 울고 찢어진 거예요.”
장판 시공을 마친 사장님이 뒷정리하면서 하시는 말씀에 불과 몇 개월 전 작업했던 아저씨의 당당한 목소리가 생각난다.
“사모님, 걱정 딱 놓으시고요. 저희가 ‘완벽하게’ 작업 마치고 연락드리겠습니다!”
아무래도 옆에서 눈에 불을 켜고 끝까지 지켜보지 못한 나의 불찰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마음 편하겠다. 아무튼, ‘사랑합니다, 형님!’으로 시작하는 신용 사회,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