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섬 Sep 16. 2022

사랑합니다, 형님!

2022년 7월 27일 서울신문 <황서미의 시청각 교실>

“사랑합니다, 형님!”

지난달, 거실 장판을 갈아준 도배 집 사장님이 전화를 받으며 외치는 우렁찬 인사다. 

집 전체 바닥을 새로 한 지 일 년이 채 안 되었는데, 왕창 들뜨고 군데군데 찢어지고 차마 눈 뜨고는 못 볼 지경이 되어버렸다. 다시 믿을만한 다른 업체에 작업을 맡겼다. 

“돈 들어왔습니다, 형님! 계산 안 해봤습니다, 형님! 다 맞겠죠, 뭐.”

세상에서 기쁘기로는 상위 0.5 퍼센트 안에 드는 ‘입금’ 소식이다. 일하는 분들은 두 손이 계속 바빠 스피커 폰으로 통화한다. 별도리 없이 모든 대화가 내 귀에 꽂힐 수밖에. 

“하루 정도 돈 안 들어오면 연락해 줘. 그 사람이 깜빡깜빡할 때가 있걸랑. 하루 이상은 안 봐줘. 나는 그런 거래 안 해.” 

형님도 쩌렁쩌렁하기로는 만만치가 않다. 

“아무렴요, 형님. 다 형님 덕분에 인테리어 들어가고, 벌어먹고 살고 있습니다, 형님!” 

말이 끝날 때마다 방점으로 눌러주는 ‘형님’이라는 호칭이 무척 정답게 들린다. 휴대폰 저편의 형님은 도배 사장님에게 얼마나 큰 존재인가! 두 사람은 언제부터 인연을 맺었기에 이토록 놀라운 신용의 관계가 형성된 걸까.      


모든 사람에게 ‘벌어먹고’ 사는 일이 돌발 상황 안 터지고 척척 돌아가는 일이라면 얼마나 좋을까만, 특히 프리랜서들은 집안 경제 진돗개 하나, 둘, 셋 발령에 늘 대비 태세를 갖추어야 한다. 평소 일하면서 마음 다해 존경했던 분이라도 처음 맺은 약속이 지켜지지 않아 그간 쌓은 신뢰가 모래탑으로 무너지는 것을 몇 차례 겪은 터였다.

한 선배 작가님은 줄 돈을 때맞춰 아니 주는 것은 사람의 ‘목숨’을 끊는 것과도 같다고 딱 잘라 말했다. 우리 모두 각개전투, 각자도생의 삶을 사는 비슷한 상황이라 언성을 더 드높였던 것 같다. 물론 도배 집 사장님께 입금 확인차 친히 전화 주신 ‘사랑하는 형님’과 같이 하루라도 늦으면 끊을 정도의 칼 거래는 차마 못 한다 해도 선배의 일갈은 지금도 생생하게 내 마음의 ATM기 앞에 커다랗게 써 붙어 있다. 

“혹시 이번 주 안으로 입금이 될까요? 제발 부탁드립니다.”

“죄송합니다, 자꾸 돈 얘기 해서요. 입금 부탁드릴게요.”

이렇게 허리 숙여 굽신굽신, 죄인이 되는 것 같은 말은 아무도 안 하고 사는 세상이 오기를, 불가능한 것은 물론 알지만, 마음 보태 한 번 더 소망한다.      


“사모님, 장판 벗겨보니까 너무 얇은 거고요, 안쪽을 접착제로 꼼꼼하게 붙이지 않아서 이렇게 울고 찢어진 거예요.”

장판 시공을 마친 사장님이 뒷정리하면서 하시는 말씀에 불과 몇 개월 전 작업했던 아저씨의 당당한 목소리가 생각난다. 

“사모님, 걱정 딱 놓으시고요. 저희가 ‘완벽하게’ 작업 마치고 연락드리겠습니다!”

아무래도 옆에서 눈에 불을 켜고 끝까지 지켜보지 못한 나의 불찰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마음 편하겠다. 아무튼, ‘사랑합니다, 형님!’으로 시작하는 신용 사회, 기대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