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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섬 Jan 19. 2023

내게도 딱 만 명의 독자가 생긴다면...

아직도 책을 내지 못한 사람의 서러움이란.

에세이 학교를 진행하면서, 또는 주변에서 이런 질문들을 많이 듣습니다.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써요?”

저도 ‘쓰는 사람’이 되겠다고 마음을 먹고 난 뒤 실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쳤습니다. 거의 다 온 줄 알고 깃발 꽂고 환호성을 지르다가 다시 보니 아직도 한참 남은 것을 알고 창피했던 경험도 많고요, 나는 글 잘 쓰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보니까 잘 쓰는 것과 잘 맞춰 써주는 것은 천지 차이임을 알고 한숨이 푸욱 새어 나온 적도 있습니다. 에세이 학교를 진행한다고 하는 지금도 어쩌면 저는 애송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강의를 듣는 여러분들께 살짝 기댑니다. 강의를 진행하면서 저도 많이 배울 거라고, 그리고 강의가 끝나면 여러분뿐만 아니라 저도 뭔가는 달라져 있을 거라고 잘 부탁드린다고 인사드립니다. 이는 사실이기도 하고요, 강의를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덜 부담스럽기도 합니다. 



 이번에 벌써 4기를 맞이하는 '에세이 학교'의 기획안 첫 머리다. 오늘 이 글을 쓰면서 이런 저런 감회에 젖었다. 음악이든 운동이든 매일 하는 살림살이든 어떤 분야든 마찬가지겠지만, 정말 이놈의 글쓰기는 예민하다. 신경질적이다. 잘 하고 싶은데 길을 잘 안 내준다. 글쓰기로 유명해지고 싶은데 그것도 호락호락하지 않다. 아니 '유명해지고 싶은 것' 자체가 잘못이란다. 그런 마음가짐으로는 백두산이 천지를 함부로 사람들에게 안 보여주는 것처럼 글쓰기도 원하는 경지에 이르지 못한다고 한다.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에는 '당대의 문장가'로 알려진(흠... 연세 드신 남자분임을 백 번 감안하겠다) 김훈의 말을 예로 든다. 

"문학이 인간을 구원하고, 문학이 인강의 영혼을 인도한다고 하는, 이런 개소리를 하는 놈은 다 죽어야 된다."

'나를 표현'하려고 글을 쓴다는 천하의 소설가 김훈도 사실 많은 사람들이 읽고 이해하고 좋아해주면 좋단다. 그저 자기를 표현하려고 쓴 글에 많은 사람들이 찬사를 보내고 문학상도 턱턱 받고, 인세 수입도 공 많이 붙어 찍어나오면 얼마나 좋나. 유시민도 김훈도 일단 유명하고 돈 잘 벌면 좋다고 한다. 그런데 나인들 안 그러겠나. 못 그러는 현실에 한숨질 뿐. 유명해지고 싶은 욕망은 잘못이 아니다 그런 마음을 불경하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촌스럽게 여겨진다. 


얼마 전에 페이스북에서 어떤 평론가님의 글이 화제에 올랐다. 요는 요즘 너무 많은 사람들이 책을 내고, 밀도가 아직 채워지지 않은 사람들이 너도나도 내는 것이 문제라는 글이었다. 굉장히 공감했다. 나도 벌써 이것 저것 다 합쳐서 5권의 책을 냈지만, 세상 사람들에게 일말의 도움이 되었는지 늘 뒤돌아본다. 그분의 글이 나는 혹시나 함량미달일지 모르는 나의 글쓰기 작업에 경종을 댕~ 하고 울렸다고 생각했다. 그 뒤로 한 이틀 정도 뒤... 다들 sns 친구들은 자기와 성향이 비슷한 사람들로 구성이 되는데 역시 내 주변도 글을 쓰는 사람들이 많다. 책을 내고 활동하는 분들도 많고, 책을 내려고 준비하거나 그 경계를 넘나드시는 분들은 더 많다. 많은 분들이 그 글을 인용해서 다들 자기 주장들을 하고 계시는 것을 뒤늦게 발견했다. 왜 희망을 가지고 끊임없이 글쓰기에 매진하고 있는 사람들의 사기를 꺾어 놓느냐, 책 쓰는 사람들은 그럼 얼마나 대단한 자격이 있어야 하는 것이냐, 함께 응원해도 모자랄 이 판국에 이런 글은 너무나 무책임하다 등등... 


한 9년 전쯤... 

나는 한 작은 노동문학에 뿌리를 둔 출판사에 근무하고 있었다. 편집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마케팅도 아닌... 그렇다고 회계를 하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시재를 관리하고 있던... 추운 겨울날, 출판사 사무실이 이사를 했단다. 하필이면 이사하고 첫 날, 짐 챙기기 시작하는 날이 나의 첫 날이기도 했다. 곱은 손을 애써 호호 불며 짐 정리를 마친 한 달 정도 뒤에 잔치가 열렸다. 많은 작가분들, 시인님들이 와주셨다. 그때는 내가 글을 쓰기로 작정을 한 해였다. 뭐 '작정'까지 하냐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여하튼 나는 글 써서 돈 버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즈음 뛰어난 글솜씨와 재기발랄함으로 페이스북 스타가 된 사람도, 책도 낸 사람들이 있기에 더더욱 내 가슴은 요동쳤다. 나도 그렇게 되고 싶어서. 나도 스타가 되고 싶어서. 

사무실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다들 둥글게 둘러 앉아 과메기와 문어 숙회를 안주 삼아 막걸리를 마셨다. 새 사무실에 대한 축하와 덕담, 그리고 감사 인사가 넘실대던 그때! 

엉엉~ 어헝헝~~~~~ 엉어엉~~~ 

누군가 통곡을 한다. 너무나 뜬금포라 일순간에 모두들 물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그리고 일제히 두리번거리는 것이 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아차! 싶었지만 한 번 울기 시작한 것을 거둘 순 없었다. 그것이 더 쪽팔린 처사인 듯 했다. 그래서 더더욱 통곡에 몰두했다. 엉엉~~ 어헝~~~~ 통곡의 주인공은 바로 나였던 것이다. 

옆에서 대표님이 정말 당황스런 표정으로 왜 우냐고 툭툭 치셨다. 그리고 나는 그래, 이럴 때 솔직해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내 속내를 드러내고 말았다. 

- 왜, 저는 책 안 내주세요, 왜! 왜 저는 책 내면 안돼요? 

말로 읊다보니 더 서러워져서 엉엉~ 흐느껴 울었다. 눈이 옆에서 보면 3.,3 자가 될만큼 퉁퉁 부어서 집으로 돌아갔다. 만취했던 듯하다. 그런데, 나는 지금도 그때 상황이 또렷이 기억난다. 내가 우는 것을 웃으면서 쳐다보는 사람들도, 당혹스러워했던 사람들도... 

출판사에 다니고 있는데, 왜 내 글은 책으로 내주지 않을까? 제발 내 글을 책으로 내주세요! 이 말 하기 전에 나를 알아보고 다가오는 사람들이 그렇게 없단 말인가. 답답했다. 그리고 서러웠다. 아마 이 '서러웠다'는 표현이 가장 적절할 터였다. 


얼마 전 페이스북의 '아무나 책 낸다' 글 논란을 보고 그날이 생각났다.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못할 것 같고 이대로 묻혀버릴 것 같은데, 쓰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던 그날들... 물론 그때 내가 책을 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불가이긴 하다. 준비가 너무 안 되어 있던 치기어린 자였기에. 하지만 오늘 에세이 학교 기획안을 준비하면서 썼던 것에 달라진 것은 없다. 다 된 줄 알았는데 설 익어 있는 때가 너무나 많았다. 맨날 교정 교열 알바 하다가 혹은 다른 사람들 글 대필해주다가 서러운 적도 가끔 있는데, 이 일이 끝나던 날 나는 진짜 '작가'로 거듭나는 줄 알고 감격해서 펑펑 운 적이 있었다. 벌써 3년 전 겨울이다. '진짜 작가'가 뭔지도 모르겠고, 감격한 것 자체도 조금 창피할 따름이다. (그냥 알바 일이 끊긴 것뿐이었다) 여전히 나는 내 책을 읽은 대한민국 국민들이 다 합쳐도 만 명도 안된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에서 뜬다고, 그게 다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냉정하게... 그러나 마음은 절절 끓던 그날들... 


나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유명한) 작가가 되고 싶어하고, 다른 이들에게 영향을 주고 싶어한다. 나의 글에, 나의 의견에 힘을 실어줄 사람이 필요하고 환호를 보내고 응원해줄 사람이 필요하다. 유독 글쓰기에 이런 사람들이 많이 몰린다. 자, 나도 이제 나이 들었으니까 바이올린이나 연주해볼까 하는 사람은 없다는 이야기. 글쓰기는 진입장벽이 낮고, 전적으로 타고난 재능보다는 훈련에 따른다. 오래, 꾸준히 쓰면 분명히 어떤 길이 생길 것이라는 것. 그런데, 현실은 너무나 비루하다. 오늘 이 글의 핵심이다. 현실은 비루하다. 아무리 친구들이 잘 나가는 작가라도 나를 진심 끌어줄 수는 없다. 

나도 처음에는 환호에 도취되어 잠시 근두운을 타고 돌아다닌 적도 있다. '전국에 있는 페친 만나기'라는 미친 프로젝트를 감행해서 있는 스트레스, 없는 스트레스 다 받았다. 그때는 내가 선정한 사람들이 굉장히 유명하고 멋진 사람들인 줄 알고 만나기 프로젝트를 시작한 건데 다들 나를 척!하고 만나줄 거라고 생각한 것이 첫 번째 실책이었다. 그리고 정말 좋은 분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당연히 어떤 사람들은 쓰레기였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너무 sns를 뻘로 보고 철 없이 한 일이라 얼굴이 미쓰 홍당무 못지 않게 붉어진다. 세상 넓은 줄 모르고 지금 보이는 것이 전부인 줄 알고 저지른 기행이었다. 

첫 에세이를 내고 난 뒤 코로나가 대대적으로 퍼졌다. 그리고 평소의 나답지 않게 창피해서 북콘서트는 뒤로 뺐다. 그런데 한 권, 두 권 책을 낼수록 내 독자분들이 어떤 이들인지 너무너무 궁금한 것이다. 그리고 왜 나는 번듯한 북콘 한 번 못할까 하는 욕심이 꿈틀꿈틀... 그래서 에세이 <어쩌다 태어났는데 엄마가 황서미> 출판사 대표님과 상의하고 내가 먼저 나서 기획해서 북콘서트를 치렀다. 누군가 나를 '모셔주었으면' 좋겠지만, 이렇게라도 사람들과 만나고 의미있는 첫 행사를 치르고 싶었다. 나는 결혼할 때도 남편한테도 프로포즈를 받은 적이 없다. 내가 다 돈 내서 장소 마련하고 케잌 사고 촛불켜고...


지난 10년 동안 '너는 잘 될 거야.' '너는 정말 훌륭한 작가가 될 거야' 아니, 훌륭하다는 말은 너무 창피하고 걸맞지 않다. '너는 유명해질 거야.'라는 응원을 솔직히 너무 많이 듣고 살아왔다. 처음에는 5년 동안 응원받았다고 썼다가, 6년, 7년, 8년... 점점 햇수가 뒤로 밀려나가면서 '미완의 대기' 아이콘으로 성장하고 있다. 나이 오십에 미완의 대기. 응원해준 분들에게 미안하다. 그리고 반백살 미완 귀엽다. ㅋㅋㅋㅋ 

다만 소망이 있다면 올해는 내 글을 읽으신 분들이 대한민국에서 만 명 정도는 계셔주셨으면 하는 것이다. 



아, 내일은 내가 집들이 잔치에서 깽판을 놓은 출판사의 대표님을 만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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