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골역 '만두박사'

만두엄마의 어글리 딜리셔스

by 황섬

우리동네 시장골목 만두집!
"만두박사"라는 곳이다.
만두를 참 좋아하는 나는 냉면을 먹어도 꼭 만두를 빼놓지 않고 먹는다.
그런데 얼마전 동네에 본격 만두전문집이 생긴 것이다.
감격!
서글서글 호탕한 우리 아주머니 말씀이
아저씨는 35년동안 만두를 빚으셨단다.
그런데 사람들이 자꾸 아저씨 아줌마 나이를 계산해대싸서 만두 30년으로 끊으셨다는 말씀도...ㅋㅋㅋㅋㅋ
만두경력 30년 박영식 아저씨의 만두는 정말 맛있다.
안익은 생김치에 양파를 송송송 넣고 아주 한석봉 어머님의 솜씨로 김치만두를 빚으신다.
난 김치만두는 신김치로 만드는줄 알았는데, 우리 맘좋은 아주머니 만두 2개 더 얹어주시며
어우~생김치를 넣어야지~하신다.
고기만두도 부추가 가득한 돼지고기가 담백하기 그지없다.
어떤 분들은 식은만두도 가져가신단다.
라면에 넣어 먹거나 기름기가 없어 찬만두 그대로 드시는 매니아가 있으시다고...





위 글은 햇수로 8년 전 2013년 10월 18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저 때는 다른 곳에서 30년 만두집을 운영하시던 부부가 우리 동네 먹골역 근처 도깨비 시장에 들어와 처음 만두집을 여셨던 때다.

만두 녀석의 생일이 2014년 6월 30일이니 저때가 딱 임신 초기였을 때거나, 임신한지 모르고 돌아다녔을 때가 아닌가 한다.


애기 때부터 만두 같이 생겨서 별명이 만두다.



박영식 아저씨의 만두집, 만두박사는 아직도 우리 동네에 건재한다.


먹골 도깨비 시장통 초임의 만두박사. 박영식. 이라는 이름 석자와 옆에 낙관 비스무리한 것이 있다.


요즘은 비비고 만두나, 풀무원 만두 같은 대기업에서 만든 시판 만두의 맛이나 질이 월등하게 동네 만두집을 따라잡아버려 나도 발길이 뜸했지만, 이 만두박사집은 지난 8년 간 늘 나의 단골집이었다.

특히 아줌마의 그 괄괄한 목소리, 큰 손은 늘 만두집 그냥 못 지나치게 만들어놓는다.

시장통에 있으니 이쪽 저쪽 얘기 다 이곳으로 들려올 터. 사통팔달 별별 소식은 아주머니가 다 꿰고 계신다.

만두가 김뿜으면서 쪄지는 동안 이런 저런 얘기도 같이 뿜어져 나온다. 그러고 나서는 꼭 "여기 만두 두 개 더 넣었어!"로 마무리된다.





오늘은 칼칼한 만두국이 먹고 싶어서 찾았다.

워낙 김치 만두, 고기 만두만 싸주세요.. 해서 집으로 종종 돌아오기 바빴는데, 내가 '만두엄마의 만두집' 책에는 기어이 이 집을 1번으로 넣어버려야지 마음 먹었던 터라 아예 자리잡고 앉아서 먹어볼 심산이었다.


- 뭐 드려?

- 만두국 주세요.

- 처음이네? 여기서 먹고 가는 거? 웬일이야?


아주머니는 나를 아주 좋게 기억을 해주시는데, 이 집이 처음 도깨비 시장 이곳에 문 열고 나서 내가 처음으로 '컴퓨터'에 올려준 사람이었단다. 그 뒤로도 여기저기에 사람들이 아주 많이 만두집 '선전'을 많이 해줘서 아주 신나셨다고 한다.


2013년은 직장을 그만 두고, 본격적으로 글을 쓰고 싶어서, 도대체 어떻게 하면 글을 쓸 수 있는지 여기저기 알아보러 다니던 때였다.

한겨레 출판사 편집자 과정도 다녀 보고, 저널 쓰기 교실도 가보고, 푸드라이터 과정도 들어봤다.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 들인 비용도 적지 않았다.

이 만두집에 처음 온 때는 한참 푸드라이터가 되고 싶어서 몸부림치던 때였다. (지금도 그 몸부림과 먹부림은 여전하다만......)

그래서 홈쇼핑인가에서 덜컥 좋지도 않은 삼성 카메라를 한 대 사가지고 이곳 저곳을 다니면서 먹은 것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 다녔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이곳 만두박사였던 것이다.

아줌마는 내가 무슨 대단한 작가인줄 아셨고, 나중에는 그게 창피해서 아줌마를 한동안 피하기도 했었다.


만두국 먹겠다고 가게 안으로 들어와 처음으로 테이블에 자리잡고 앉았더니만 또 이야기보따리가 터졌다.

만두국을 기다리면서 메뉴판 옆을 힐끔 보니 아...



소주를 파는 만두집이라니!

8년 동안 단골이면서도 가게 안으로 들어와서 제대로 둘러본 것이 처음이라 이제야 알았다. 이곳이 소주도 마실 수 있는 곳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아주 말끔한 가게는 아니지만, 왠지 만두집은 이런 곳이 좋다.


아저씨 아주머니께는 아들이 3형제가 있다.

내 기억에 만두집 처음 문 열었을 때 막내 아들이 중학생이었다.

앉은 김에 3형제 안부를 물었다. 묻고 나서 0.5초 아차 싶었다.

이게... 사람일이 말이다. 정말 어떻게 될지 몰라서, '누구누구 잘 있죠?'라고 지나가는 말로 묻는 말도 듣는 이에게는 상처가 될 때가 있다.

몇 해 전. 갑자기 머뭇머뭇 거리며 '어... 누구누구 잘못 됐어.'라는 대답을 한 번 들은 뒤로는 절대 아무렇지도 않게 안부 묻지 말기로 혼자 약속을 했는데, 아 또 오늘 만두 엄마, 주책을 부린 것이다.


- 어, 큰 애는 이번 4월에 결혼하고, 아 씨... 코로나 때문에 큰일이네. 그리고 둘째는 공무원 되가지고 지금 출근하고. 막내가 야, 벌써 군대 제대해. 하하하! 세월 빨러. 어? 시간 진짜 빨리 가네.


다행이다. 게다가 호탕하게 웃으시면서 또 하나 좋은 소식을 알려주신다.

여기 2층이 원래 깃발 꽂고 영업하던 무당의 점집이었다. 워낙 신묘한 기운이 흘러서 나도 이집에 한 번 올라가볼까 여러번 맘 먹었다가 포기했던 왕꽃집이었다.

그런데, 그이가 이사를 가는 바람에 박영식 아저씨의 결단으로 2층을 사버리셨단다.

작년 6월에 2층으로 이사를 오셨다면서 생각지도 않았던 공간이 뒷 골방으로 또 하나가 더 있어서 집이 27평이나! 된다고 한다.

이곳으로 이사온 지 7년 만에, 말하자면 건물주가 되어 버리신 것이다!!

(그래서 일부러 첫번 째 만두집 전경 사진에서 2층 콘크리트 건물 사진을 잘라내지 않았다)


8년 전의 메뉴판(우)과 지금의 메뉴판.




메뉴판을 봤다. 아마 중간에 주류를 추가하시면서 판때기를 바꾸신 모양이다.

"만두 만들기 36년!"

가격이 하나도 안 올랐다. 저 김치 만두, 고기 만두가 한 접시에 10개씩 쪄가지고 나오는데, 아직도 3천원이면 한 알에 3백원?

따로 경영전략이 있으신 것 같지는 않지만서도 박리다매의 전략을 취하시는 모양새였다.

그리고, 나머지 매출은 소주, 맥주에서 보충하시려나. 4천원 뜨앗!



드디어 만두국이 나왔다.

아저씨는 정말 하루종일 조용히 만두만 만드시고, 주방에서 만두국, 칼국수를 만들어 내신다.

목소리가 크고 활발하신 아줌마에 반해 아저씨는 무척 조용하고, 밖으로 드러나는 성격이 아니.........................................긴 뭐가 아니야!

만두국 먹는 내내 종알종알 아저씨의 이야기 듣는 것도 요거 별미였다.


그런데, 먼저 만두국 이야기부터 하고 싶다.

만두국물은 멸치국물인가 아리송할 정도로 후추맛이 강했다.

보통 후추맛이 강하다고 하는 것은 부정적인 방향으로 몰고 갈 때 많이 쓰는데, 나는 아니다.

워낙 후추를 좋아하기도 할 뿐더러, 지금 아저씨가 만들어서 내오신 국물은 해장으로는 그만일 정도로 시원칼칼했다.

#해장끝판왕

어린이들이 먹기에는 조금은 매울 터이지만, 보니까 주문 받은 후부터 미리 잡아놓은 국물을 떠서 한 냄비씩 끓이시는 걸 보면 맵기는 충분히 조절할 수 있을 듯 했다.

그리고, 안에 충분히 들어가 있는 호박, 양파, 파 등의 야채들만 봐도 넉넉해진다. 곰돌이는 내가 무슨 국이나 찌개를 끓일 때마다 야채를 잔뜩 집어 넣는 것을 보고 '너무 건강한 맛'이라고 놀리는데 말이다.

실컷 줄알친 계란에다가 위에 고명으로 올려진 김가루도 나이스!

무엇보다 나는 이 집의 만두맛을 알기 때문에 '맛있게 먹겠습니다!'를 속으로 외치면서 먹기 시작했다.

아주머니는 냉장고에서 비니루 한 봉지를 꺼내서 내 옆에 스윽 오시더니만 이러신다.


- 애기 엄마가 그동안 가져간 만두랑 여기 국에 들어간 만두는 달러. 이거봐.

이건 국거리용 만두라 속이 쌩 거예요. 그냥 겉에 만두피만 살짝 찐 상태야.

그리고, 저 밖에 파는 건 속까지 다 익혀진 거지. 그래서 내가 명절에 만두국용 만두를 따로 파는 거예요.

이거 그냥 쩌먹어도 좋고, 라면에 넣어 먹으면 끝내줘!

국거리용 고기만두


실제로 찐만두용 고기만두는 만두국용과 모양이 거의 흡사하지만, 김치만두는 기다란 럭비공 같은 모습이다.

그리고, 2013년도 이후 새로이 알게 되었던 사실 또한 한 번더 읊어보자면, 집에서 만드는 김치만두는 한겨울 김장 김치를 꺼내거나, 혹은 묵은지를 살살 씻어 썰어내서 소로 만드는데, 아주머니는 당연히! 김치만두는 생김치로 만들어야 아삭거리고 맛있다고 하셨다.

(맨 위 2013년도 페북 글을 봐도 이 김치 이야기가 씌어있다)

지금도 아무리 생각해도 생김치로 만두를 만드는 것이 상상이 가지는 않는다. 게다가 맛을 보면 아주 신맛은 나지 않지만 충분히 익은 김치맛이 나기 때문에 나의 의혹은 더더욱 짙어만 간다.

오늘은 주방에 조용하게만 계시던 아저씨가 후속타로 이야기 보따리를 터뜨리시는 바람에 김치만두에 대한 의혹은 시원하게 해결하고 오지는 못했다.


김치만두의 어여쁜 생김새


지금 '만두 30년'이라는 간판을 걸고 이땅, 묵동에 들어오신지 어언 8년차.

아저씨만의 만두집을 내신 역사가 현재 38년이 된 것이다.


어쩌면 아주머니랑 결혼하신 연수 또한 38년이 된 것은 아닐지 추측해본다. 왜냐하면, 만두 만드신지 얼마나 되셨어요? 라고 허공중에 대고 물어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진짜 한 번도 안 빼놓고 아주머니가 햇수를 크게 말씀해주셨으니 말이다.

- 38년!

그런데, 아주머니가 외치는 햇수에 분노(?)는 또 아닌데, 그다지 신나는 외침은 아니라는 것이 딱 티가 나는 것이 재미있다.

으이그~ 38년!


아저씨 고향은 전남 함평인데, 어려서부터 운동을 잘해서 광주로 말하자면 야구 유학을 가셨더란다.

그때는 매일이 빠따로 뚜들겨 맞는 일상. 하루도 안 빠지고 빠따를 맞았는데, 하루는 아저씨가 포수 싸인을 잘 못 알아먹어서였는지 잘못 던져서 시합에 졌단다. 이건 당연히 빠따감.

엎드려뻗쳐를 하고 200대를 맞고는 꼬리뼈가 부서지는 바람에 선수 생활 이거 도저히 못하겄다 생각을 하고 그리로 짐 싸가지고 서울로 도망가서 숨어버렸다.

그때가 1975년.

서울로 올라오니 어디 한 군데, 세 끼 배불리 주는 데가 없더란다.

그때 명동, 시청 일대의 만두집들은 모조리 주인장들이 중국사람이었는데, 그중 한 집에 들어가서 청소하고 일하면서 시작을 하셨다고 한다. 우리가 흔하게 접하는 자수성가 스토리의 시작이다.

워낙 운동을 하던 몸이라 체력도 좋고, 끈기가 있어서 6개월 만에 만두 빚는 것을 다 익혔다고 한다.

음식점은 지금도 간혹 볼 수 있지만 주방에서 '칼을 쥔 이'들의 곤조를 잡아야 사는 업계다. 옛날은 오죽했을까.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 수가 틀어졌든, 술을 많이 마셨든 간에 말도 안 하고 안 나오는 날이 있었단다.

그럼 사장들은 이 놈, 저 놈 하고 툴툴대면서도 어떻게든 장사를 해야 하니 대타를 구하는데, 바로 그 주방 오야가 빈 날에

우리의 박영식 아저씨 구원 투수로 등판하신다!!!!

만두집 사장님은 아저씨의 야무진 손끝을 인정하시고는 각 분야 유명한 만두집으로 만두 유학(?)을 보내주셨고, 이렇게 물만두, 군만두까지 마스터하게 된다.


- 제가 그냥 어깨너머로 배운 만두가 아녀유. 그게 다 지대로 배운거요.


만두 업계에 화려하게 데뷔하신 아저씨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쉬지 않고 만두를 빚어오셨다.

그리고, 만두집을 내고 자식 세 명 다 잘 키워내시고, 지금은 묵동의 번듯한 건물주가 되신 것이다.


8년 전 아저씨 모습. 지금은 더 젊어지심. 유훗!


아저씨 솜씨도 좋으셔라, 만두국을 한 그릇 뚝딱 비워버렸다.

마스크를 단단히 둘러쓴 손님들이 끊임없이 만두를 사간다.

만두박사는 이번 코로나 사태에 저언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 단골 장사였던지라 외지로 이사간 이들도 만두 사러 꼭 이곳에 들린다고 하니 매출에는 별 차이가 없었던 듯 하다.

그리고, 홀 영업 중심이 아닌, 테이크 아웃 만두 장사가 매출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도 흔들림 없었던 이유 중의 하나가 되었겠다.


- 딸이랑 좀 와요. 얼마 전에 시장 쪽 지나가는 거 보니까 아주 많이 컸더만. 어?


딸래미를 기억해주시는 아주머니.

분명히 요 사진 때문이렷다.


8년 전 아주머니와 곰돌이 사진


취재한답시고, 어설프게 이것 저것 찍고 난 다음 일어서서 마지막에 기념 촬영을 했었다.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곰돌이는 지금은 키도 크고, 덩치도 크고, 얼굴 또한 저 애기애기한 얼굴에서 많이 변했는데, 어째 아주머니는 저때나 오늘이나 똑같으시다. 심지어 아저씨는 벤자민 버튼, 더 젊어져버리셨다.

사진 귀퉁이에 개업식 화분 리본이 살짝 보이는 것을 보니 감회가 남다르다.


아저씨는 무조건 죽을 때까지, 나 하고 싶은 때까지 하고 살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기술'이라면서 여기서 한 10년은 더 만두 만드실 수 있을 것 같으시단다.

아주머니도 덩달아서 내 친구들 신랑들은 다 일 손 놓고, 집에서 눈칫밥 얻어 먹고 살고 있다며 거드신다.

묵동 만두 박사 만두집이 건재해 있는 동안, '만두 엄마의 만두책' 세상에 나와서 그 책 들고 신나게 달려가서 아저씨, 아주머니께 보여드렸으면 좋겠다는 작은 소망이 생기 버리네.




7호선 먹골역 1번으로 나와 주욱 위로 걸어오다보면, 묵동 도깨비 시장이 오른편으로 나옵니다.
GS 편의점이 나오고, 바로 오른쪽으로 꺾어 들어가면 묵동 왕 김밥집 옆에 만두박사를 만나실 수 있어요.
문여는 시간은 대략 10시에서 11시 사이인 듯 하구요, 문 닫는 시간이라.... 제가 여기 지나갈 때는 늘 열려 있었어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