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 만두집 '하단'

곱다! 소리 절로 나올 만두

by 황섬

요즘 운동을 하면서 식단 조절을 하고 있는 터라 만두를 좀 멀리했다. 나름대로 열심히 운동한지 한 달이 넘었는데도 몸이 가벼워지지 않는 이유를 모르겠어서 전전긍긍하던 차. 한 45일이 지나가면서 슬슬 살이 내리기 시작한다.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성북동의 만두집을 찾았다.


한자, 다들 읽을 수 있으시지요?


성북동은 아직도 굽이굽이 골목의 정서가 남은 동네다. 예전 성북동 할머니 만두집을 찾아가던 느낌이 이날도 고스란히 재현되었다. 다른 지역으로 여행을 가도, 다른 나라에 가도 사람들 살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골목을 굳이 일부러 찾아 다닌다. 사람 사는 모습들이 너무나 재미나거든. 빨래를 어떻게 걸어놓는지, 이 집에서는 지금 무슨 음식 냄새가 나는지, 마당에는 자전거가 몇 대인지...


한성대 입구 전철역에서 나와 수십 년 전통의 랜드마크 나폴레옹 빵집 건물 건너편으로 이동해서 골목길로 접어들면 바로 길가에서 나를 반기는 만두집 '하단'이 보인다.

이 만두집은 먼저 블로그로 접한 집이었는데, 평양만두도 만두지만, 차가운 메밀 칼국수가 있다는 말에 솔깃했었다. 입덧이 심한 어떤 임산부는 하단의 냉 칼국수로 오심을 달랬다고 하는데, 얼마나 '속 편한 맛'인지 궁금했다.



성북동의 주차 인심은 아직 후하다. 따로 주차장이 없어서 이렇게 만두집 앞에 세워놓거나, 골목길에 알아서 눈치껏 대야 한다.

영업시간은 다른 음식 가게들 보다 조금 늦은 낮 12시에 열고, 저녁 7시까지, 손님들 딱 저녁 드실 때까지만 한다. 중간에 쉬는 시간 3시간이 있는데, 이 시간은 아주 철저히 지키신다고 하니 기억해두실 것.


나이가 지긋하고, 아주 우아하신 여사님 네 분이 식사를 하러 오셨는데, 아마도 하단을 오랫동안 다니신 단골이신듯 하다. 그러다보니 주인 아저씨께서 옆에 서서 이 귀부인들과 함께 그렇게 재미나게 이야기를 나누시는데, 그 수많은 대화를 엿들을 수 있었다.

매주 화요일, 일주일에 한 번 쉰다고 하는데, 이 가게를 연지 25년 만에 처음으로 하루 쉬는 것으로 됐단다. 그것도 딸 등쌀에 ... 지금 하단 만두집은 이 자리에서 장사한지 28년 되었으니 한 3-4년 전까지만 해도 공식적으로는 하루도 안 쉬고 계속 앞만 보고 달려오신 것이다. 딸이 쉬는 날도, 휴가도 없이 일만 하는 엄마, 아빠가 보기 안쓰러웠던 모양이다.


- 아, 이런 여름 같은 같은 때는 하루에 8-90만원 손핸데, 여름엔 잘 되니까 쉴 수가 없어요. 돈이 들어오니.


사람 마음이 다 이런 것이겠다. 아마 나도 장사를 해서 하루하루 현금 들어오는 것이 눈에 보이면 어쩜 쉬어도 쉬는 것 같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머님은 안에서 만두를 빚고, 면을 삶고, 음식을 담당하신다. 그리고, 아버님이 홀에서 음식을 내가고, 손님 자리 뜨신 뒤 뒷정리를 도맡으시고.

아! 만두집 이름이 '하단'인 까닭이 있다. 나는 처음에 골목이 살짝 언덕배기처럼 되어 있어서 그 언덕진 골목 끝에 있다고 하단일까 상상해보았지만, 아니란다. 어머님의 부모님께서 이북의 하단 분이시란다.

하단이 어딜까 찾아보니 평안북도 신의주시 하단리가 하나 있고, 평안남도 평성시 하단리가 또 있다. 여하튼 오늘의 만두를 빚으시는 어머님의 손맛은 평안도에서 왔다.


차림표를 찍는데, 저분께서 허리를 꼿꼿이 펴고 만두를 드시는지라 어쩔 수 없이 사진에 조명을 비춰야 했다.


메뉴는 아주 간단하다. 나는 프랜차이즈 김밥집이나 무슨무슨 '회관'이라는 명칭이 끝에 붙은 음식점의 '말만 해, 다 만든다!'의 기세를 떨치는 메뉴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한국 음식 같은 재료, 같은 양념 가지고 변주 해봐야 얼마나 버라이어티하겠냐마는 그래도 재고 관리에 음식 퀄리티 유지에 신뢰가 가지 않아서 마음 속으로 자꾸 감점을 주게 된다. 그런 면에서 하단은 아주 흡족하다.

냉칼국수는 2인분 이상 주문이 가능하단다. 아저씨 말씀이 메밀 삶은 데만 25분이나 걸려서 달라는대로 빠르게 착착 내보낼 수가 없단다. 슬로우 푸드의 정점을 여기서 접할 수 있는 것인데, 나 같은 혼밥, 혼술러들은 아 너무 아쉬울 수 밖에 없다. 2인분 시키고, 싸가면 안 되냐고 그랬더니 고개를 저으신다.

그리고, 만두전골 또한 사전에 예약을 해야 한다는 첩보가 있다. 이렇게 글 쓰는 김에 전화를 한 번 해봤다.


- 안 찾아요. 이렇게 더울 때는 마이 안 찾아요.

- 그럼 예약을 해도 안 되는 건가요? 여름철에는?

- 마이 안 찾으니께네, 보자~ 한 8월 말은 되야 되지 싶어요.


참고하실 것.



기본 상차림. 깍두기와 열무김치가 나온다. 만두집 돌아다닐 때마다 김치 맛있는 집이거나 단무지 맛있는 것 쓰는 집을 만나면 그렇게 반가운데, 하단도 그 중 하나다. 대부분 내가 가봤던 평양만두 빚는 집은 단무지를 놓지 않고, 직접 김치를 담그신다. 내가 왜 열무를 들어서 클로즈업 했을까? 맛있어서. 진짜 김치 적당히 잘 익고, 시원한 것이 맛있었다. 지금도 감칠맛이 떠올라 입에 침이 고인다. 흰밥에다가 얹어서 먹고 싶네.

자, 이렇게까지 뜸을 들였으면 이제는 오늘은 주인공 만두를 만나볼 시간! 처음에는 냉 메밀칼국수와 찐만두를 시켜서 맛보려 했는데, 급 계획 변경하여 만두국과 녹두지짐 작은 것을 주문했다.



진한 양지 사골 국물, 짜지 않은 간에 예쁜 평양만두 5알이 둥둥 떠 있다. 하단 만두집의 만두는 하얗게 예쁘고, 곱다. 만두라고 하면 만두피가 밀가루니 당연히 하얗지 싶어도 누가, 어디에서 만드냐에 따라 느낌들이 다르다.

부산 만두는 빨갛다. 만두피가 하얀데도 강렬한 빨간색이 떠오른다. 그리고, 맛도 맵싸하게 힘차다. 강원도 만두는 건강하게 거친, 검박한 만두 느낌이다. 강원도 지역, 산간지방의 메밀이 단박에 떠올라서 그럴까? 거무튀튀한 수줍은 밤색이 생각난다.

그런데, 여긴 정말 하얗고, 곱다. 만드시는 분 성정도 분명히 단정하고 고우실 듯 하다. 지난 번 만두 빚는 법을 배우러 만두 교실에 갔었는데 아, 그때 확신했다. 왜 송편이나 만두 예쁘게 빚어야 예쁜 딸 낳는다고 하는지 말이다. 빚는 과정을 잘 지켜보면 손솜씨가 있고 없고를 떠나 성격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즉, 유전이 법칙이 적용되는 것이다. 하하하! 호탕하게 웃고 남 웃기기도 좋아하고 목소리 크신 분들은 만두도 꼭 그렇게 빚어놓으신다. 따님도 그 성정의 일부, 혹은 전부를 물려 받을 터. 그런데, 내가 빚어 놓은 만두는...


만두가 '그래서, 어쩌라고?' 하는 것 같다.


딱 나다. 성질머리 야물지 못하고, 게다가 헐레벌떡 급한지라 만두피를 꼭꼭 누르지도 않았다. 게다가 욕심은 많아서 만두소도 저것이 몇 번을 덜어낸 양이다. 결국은 '맛만 좋으면 돼. 찌면 다 똑같아.'라는 셀프 최면으로 마무리. 아주 나 같이 생겨먹은 만두가 탄생했다.

다시 하단의 만두로 돌아와서...


정말 담백하고, 두부를 잔뜩 넣었는데 특유의 두부맛이 고소함만 남아서 아주 거침없이 술술 넘어갔다.

평양만두의 관건은 두부라고 생각한다. 돼지고기나 김치의 강한 풍미가 아닌 두부맛이 '슴슴한'으로 대변되는 이북식 음식의 특징일 것인데, 간혹 가다가 어떤 집은 이 두부가 약간 쉰맛 비슷한 맛을 내기도 해서 개인적으로는 그 맛을 어떻게 잡느냐로 성패를 가름한다.

그런데, 이 곳 하단은 완전히 성공! 두부의 고소한 맛과 숙주의 아삭한 식감도 좋았고, 국물도 강하지 않아서 참 좋았다. 만두피는 되도록 얇은 것을 선호하는데, 온통 밀가루 빵 같은 평양만두 같지 않게 아주 가볍다.

어린 시절 겨울바람 불기 시작하면 가게에서는 호빵을 팔기 시작한다. 하얀김을 내뿜으며 호빵을 찔 때 나는 밀가루 잘 발효된 냄새, 그 추억의 밀가루 냄새가 나는 것이 좋다.



하단 만두국의 특징은 이렇게 양지살이 잘 끓여져 사골국물을 내는데, 위에도 언급했지만 국물의 간이 아주 세지 않아서 좋다. 중간중간 양지살을 떠 먹는 것도 별미. 이 양지에다가 조선간장을 잘 배합해내는 것이 기술이라고 아저씨가 자신있게 말씀하신다.


녹두 지짐도 참 잘 먹었다. 겉바속촉의 식감 그대로 잘 살려낸 녹두지짐. 막걸리 한 잔 곁들이면 좋겠다.

이렇게 녹두전하고 만두국으로 거하게 먹는 도중 사진을 찍어봤다. 참 마음이 꽉 찬다. 좋아하는 만두 먹으러 전국으로 총총 돌아다니는 길이 얼마나 행복한지!

나는 이리 행복하게 식사를 하고 있는 와중 아저씨는 홀에서 계속 단골 여사님들과 뭐가 그리 반가우신지 이야기꽃을 피우신다. 몇 년 전에 아마 뇌경색이 와서 뇌수술을 크게 하셨던 모양이다. 여사님들께서 아우, 사장님 왜 이렇게 살 많이 빠지셨어요!! 하며 놀라시기에 보니 그런 연유가 있었다. 술을 전혀 입에 댈 수가 없으니 빠질 수 밖에 없으시단다. 아무래도 매일 쉬지도 않고 일하시다가 딸의 강력한 권유로 일주일에 한 번 쉬게 된 계기도 이에 있지 않을까 추측해본다.

그런데 못내 메밀 냉칼국수를 못 먹고 돌아선 것이 아쉽다. 다음에는 딸내미를 데리고 함께 가봐야겠다. 딸은 만두를 별로 안 좋아해서 문제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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