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조 씨의 자부심이 이 집의 시그니쳐
만두 에세이를 오랫동안 쓰다보니 가끔씩 어디어디 만두집 가보셨냐면서 주변에서 슬쩍슬쩍 추천들을 해주신다. 그럴 때마다 나는 수첩 한 귀퉁이에다가 잘 적어두었다가 서울, 경기 지역이면 되도록 빠른 시일에 가고, 그 밖에 지역이라면 한꺼번에 몰아서 그쪽으로 만두 여행을 2박 정도 계획한다.
하루는 지인께 이런 톡을 받았다. 만두 안에 부추가 반단은 들어간 듯 하다는데, 내가 안 가볼 수 없었다. 특히 이 톡을 보내주신 분께서 좋은 음식을 잘 보시는 분인지라 궁금해졌다. 달려 가봐야했다.
그 와중에 아침 운동할 때 내가 즐겨보는 허영만 아저씨의 '백반 기행'에서 딱 이 집이 나오는 것이다. 워낙 수요미식회나 6시 내고향 같은 프로에 나왔다고 떠드는 집 치고 맛난 집 없다는 것이 내 소신인데, 허영만 아저씨의 꾸밈없는 음식평을 듣고 더욱 가보고 싶어졌더랬다.
"맛도 우애도 빈틈이 없다."
허영만 아저씨는 내내 어, 국물이 참 좋네. 간을 어떻게 이렇게 잘 맞추셨을까. 이러면서 커다란 평양만두를 잘 도 잘라 드셨다. 백반 기행을 오래 보다 보니 평소 슴슴한 간을 선호하시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과연 이 집의 만두국은 심심하고 시원한 맛일까?
어느 기분 좋은 토요일 점심, 딸이랑 함께 출동했다. 그다지 만두를 좋아하지 않는 딸은 엄마 쫓아다니면서 만두 먹는 것이 고역일텐데도 이날도 함께 가주었다.
가게 출입문 겸 주차장 입구를 지나 들어서면 이렇게 고풍스러운 모습의 한옥이 반긴다. 내부로 들어가면 커다란 시계가 놓여 있는데, 이 또한 세월을 고스란히 이야기해준다.
우리는 부추만두와 전통 만두국을 시켰다.
먼저 부추만두 맛을 보았다. 역시 부추 반단은 때려 넣은 듯한 호기로움. 신선한 부추 향이 훅 끼쳐오르는 것이 다른 고기만두들과 다른 점이다. 그리고, 이 집의 김치만두보다 피가 훨씬 얇다.
부추만두는 이렇게 반달 모양으로 빚어낸다. 이게 평안도 식의 만두라고 한다.
이 만두집은 셋째, 넷째, 다섯째, 그리고 막내인 여섯째까지 형제들이 뭉쳐서 올해 34년 째 운영하고 있는 만두집이다. 셋째는 국물, 사골 육수 담당, 넷째는 만두소 담당. 퇴근 전까지 내일 쓸 만두소를 무슨 일이 있어도 만들고 간단다. 그리고 다섯째는 만두 빚기 담당. 귀신 같이 5초에 한 번씩 만두를 빚어낸다고 한다. 그리고, 막내 여섯째는 남자분, 홀 서빙과 카운터를 맡고 계신다.
그리고, 이 부추만두는 특별히 셋째 큰누님께서 만든다고 하신다. 방송에 나오기를 만두를 빚을 때 50년 이상 된 오동나무 밀대를 쓰시던데, 어머니가 물려주신 거라고 한다. 이 만두집이 30년이 넘었으니 오동나무 밀대는 이미 오픈할 무렵에도 스무 살이 넘어 있었던 것. 하도 오랫동안 이 밀대를 사용해와서 딴 것으로는 도저히 어색해서 못 밀겠다고 하시는데,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것 같다.
다음은 황해도식 김치만두. 이집의 전통만두는 알이 작고, 김치의 맛이 그다지 세지 않다. 김치, 다진마늘, 숙주, 두부 등으로 슴슴하게 만들어냈는데, 한입 베어물때마다 나오는 질 좋은 참기름 향이 또 인상적이다.
딸하고 이마를 맞대고 말도 안 하면서 먹고 있는데, 뭔가 아쉬운 것 같았다. 부추만두국을 냉큼 하나 더 시켰다. 딸과 나의 먹성 정도면 그 정도는 충분할 것 같아서 말이다. 이윽고 메뉴가나왔고, 아저씨 께서 만두국을 가져다 주시면서 말씀하신다.
- 우리집에 오셨으면 녹두지짐을 꼭 드셔보셔야 하는데 말입니다.
아뿔싸! 내가 만두집이라고 지짐을 너무 무시했구나. 부추만두에 꽂혀 달려온 집인지라 녹두지짐을 시켜볼 생각을 1도 못한 것이다.
어차피 만두 먹으러 왔고, 아저씨랑 말 튼 김에 이것저것 물어보고 싶었는데, 아, 역시 사춘기 소녀와는 어디 같이 다니기 까다롭다. 일거수일투족이 소녀의 레이더망에 걸려 버리는 것.
엄마, 좀 조용히 해. 말소리가 너무 커. 이것부터 시작해서 운동할 때 입는 레깅스를 입고 온 것에 대한 불만까지 토로한다. 한참 엄마나 아빠가 창피할 때이기도 한데다가, 조용히 만두만 먹고 나갔으면 좋겠는데, 엄마가 큰 소리로 나대며 이거 뭐예요, 저거 뭐예요 물어싸니 싫겠지. 아주 싫겠지.
계산을 하면서 '이상조'가 누구인지 묻고 싶었지만, 딸이 옆구리를 꼬집는 바람에 입 다물고 그냥 나왔다. 다음을 기약하며...
그래서 한 2개월 뒤 나 혼자 다시 간 이상조 전통 만두국집!!! 두둥!!!
이번에는 전통 만두국과 녹두전을 주문했다.
이 집의 별미는 또 이렇게 소담하게 담아 나오는 배추 김치와 깍두기다. 굉장히 시원하게 담은지라 고기와 두부가 잔뜩 들어간 이집 만두의 특징인 '맛있는 느끼함'을 잘 잡아준다.
만두국의 국물맛은 허영만 아저씨께서 극찬하신 바와 같이 아주 슴슴하고 간이 잘 되어 있다. 특히 전날 새벽까지 음주로 불살랐던지라 분명 속이 말이 아니었을 텐데, 만두국의 사골국물로 충분히 달랠 수 있었다.
중간중간 들어가 있는 떡 몇 점 또한 재미난 별미. 떡국을 좋아하지 않는 터라 만두국을 시킬 때는 떡을 빼는데, 그래도 이렇게 국물 뜰 때 한 두 개 건져 먹으니 좋았다. (참 작은 것으로 행복을 느끼는구나! ㅋㅋ)
드디어 이상조 전통만두국 아저씨의 자신감! 녹두지짐 등판! 짜잔!
아저씨가 아주 당당하게 우리집 오셨으면 이거 드셔보셔야 한다고 할만 했다. 겉은 바삭하고 속안은 촉촉하게 녹두와 돼지고기로 꽉찼다. 워낙에 빈대떡류는 녹두맛이 무슨 맛인지 잘 모르고 먹었는데, 이날 내 인생 경험을 다시 쓰게 해준다. 녹두의 풋풋한 맛에다가 돼지고기맛이 어우러져서 자꾸 자꾸 잘라 먹게 된다. 지난 번 성북동 하단에서도 만두국에 녹두지짐을 먹었는데,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상조 전통만두국집에 손을 한 번 더 들어주고 싶다. 참 맛있다.
두둑하게 만족스런 만두국 식사를 마치고 계산하면서 물어봤다.
- 이상조 씨가 혹시 누구세요?
- 접니다.
- 어? 여섯 째 막내 아니세요? 아... 대표시구나.
- 네, 제가 대표입니다.
- 누님들하고 함께 하시고.....
- 여섯째는 맞는데요, 제가 대푭니다. 큰 누님부터 시작해서 34년(강조!) 됐습니다.
든든한 남동생이 대표로 있는 이 만두국집. 본인의 이름까지 내건 이 만두국집에 자부심이 느껴진다.
아무래도 중간에 이름이 한 번 바뀌었지 않나 싶다. 아니면, 그냥 '전통만두국'이었다가 이상조씨께서 대표가 되면서, 혹은 만두일에 적극적으로 뛰어들면서 붙이지 않았을까 싶고 말이다. 별별 추측들이... 34년이나 된 만두국집인데, 대표님은 너무 젊어서 해보는 상상이다.
한 번 맛 보고 나서도, 또 가볼 맛이다. 이상조 전통만두국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