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에서 한 페친이 세상에서 김영철 아저씨랑 최불암 아저씨가 제일 부럽다고 한다. 두 분 모두 kbs '한국인의 밥상'과 '동네 한바퀴'라는 음식 기행, 혹은 동네 소개 프로그램에서 활약하고 계신다. 한국인의 밥상이야 나도 자주 봤는데, 사딸라 아저씨의 동네 한 바퀴는 한 번도 못 본지라 유튜브에 들어가서 검색을 해봤다.
오. 정릉의 만두국집을 다녀가셨네. 너무나 가정집 같은 분위기, 어쩌면 부담스러울 수도 있는 취식 상황 속에서도 만두국 한 그릇을 뚝딱하는 김영철 아저씨. 너무나 건강하고 맛있게 드시는 통에 내가 참을 수가 있어야지. 그 길로 당장 정릉으로 달려갔다. 마침 우리집과도 차로 30분 거리 내에 있는 것이 다행이었다.
방송에서도 골목골목 구비구비 들어가는 바람에 만두국집을 찾기가 꽤 어려운 것 같이 보였는데, 역시... 한 블로거의 촘촘한 길안내 아니었으면 못 찾을 뻔했다. 아주 뒷골목에 꼭꼭 숨어있는 작은 집에서 만두국을 끓여서 팔고 계셨다. 이 골목이 맞나 하고 들어가다보면 저 멀리에 '원조 만두국'이라는 간판이 보이는데, 반가와서 쫓아가면 이내 실망할 정도로 가게가 안 보인다. 거기에서 좌절하고 돌아서면 안된다. 바로 우회전을 해서 조금만 더 참고 걸어가다보면 이렇게 반가운 '만두집'이라는 간판이 우리를 맞이한다.
할머니 만두국집은 점심 장사만 하는 곳이다. 그래서 지체하지 않고 바로 날아온 터였는데, 이상하리만큼 조용하다. 들어가도 될지 망설여질만큼.
- 만두국 되나요?
그러니 안에서 어떤 젊은 여자분이 환하게 웃으며 나오신다. 네, 돼요. 방송에서는 못 본 것 같은 얼굴인데...
동네 한바퀴 방송
이렇게 시골집에 오면 '어유, 여기 앉으세요' 하고 맞이해주듯이 이렇게 안방에 밥상이 펼쳐져 있다. 새마을 금고 달력이 참 정겹다. 요 근래 잘 못 보던 달력인데...
만두국, 떡만두국은 7,000원, 그리고 냉동으로 얼려 놓은 봉지만두는 10,000원이다.
들어가니 어떤 아저씨께서 혼자 만두국을 아주 맛있게 드시고 계신다. 아저씨랑 최대한 안 어색한 자리가 어디일까 사뭇 고민하다가 저 둥근 상 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방송에서 3대째 이어져 내려온 만두집이라는 것은 대충 알고는 있었지만, 한 번 더 여쭤보았다. 여기 계신 할머니의 시어머니께서 북에서 내려오셔서 처음 동네에서 사람들에게 만들어주셨다는데, 그것을 이어받아 할머니, 또 그 따님이 이어받아 지금 실제로 만두국을 만들고 경영하는 것을 맡고 계시다. 그리고 이번에는 본인이 이어받아서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고보니 3대가 아닌, 4대째 이어내려온 당당한 노포다.
실제로 가보면 저 하얀 머리의 할머니께서는 방송하고 똑같이 딱 저 방 냉장고 앞에 앉아 계신다. 따님 설명에 의하면 엄마가 요즘 몸이 많이 안 좋으시다고 하는데, 굉장히 입성이 정갈하고 고우시다는 사실.
부엌에서는 저 사진 속의 따님께서 냄비에 물을 붓고 만두국을 끓이고 계셨다.
먼저 만두국을 주문했다. 한 그릇에 열 알이 들어간다고 하는데, 나는 그게 좀 많지 않을까 하고 조금만 덜어달라고 말씀드리니 잠시 후 만두 여덟개가 소담하게 담겨져 나왔다.
할머니 만두국집의 특징은 주문을 받으면 그릇 수대로 그때그때 끓여서 내 주신다는 것. 국물을 미리 잡아놓지 않는다.
아니 국물을 잡고 뭐하고 할 것이 없이 이집 국물은 맹물 베이스다. 멸치나 다시마 등의 육수를 내지 않고, 그냥 생 맹물에다가 먼저 파를 잔뜩 집어넣어서 팔팔 끓인다. 사실 그게 무슨 맛이 있겠나 싶었지만 만두와 어우러지면 최고의 조화를 이룬다. 그리고, 저 야들야들한 계란이 킬링 포인트. 국물, 만두, 계란이 정말 땀 뻘뻘 내며 쉴새 없이 먹게 만든다.
기본 상차림.
어떤 음식점이나 가서 김치를 먼저 맛본 후, 김치를 주인장께서 직접 담았으면 고마운 마음에 기본 별 넷, 게다가 맛있으면 다른 음식들도 훌륭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별 다섯 개를 마음속으로 매긴다. 그리고, 거의 그 예측은 틀린 적이 없었는데, 역시 할머니 만두국집도 정말 너무너무 훌륭한 김치를 내주셨다. 집에서 담근 살짝 큼큼하고 시원한 맛인데, 슴슴한 만두국과 잘 어울린다.
이 집은 고기만두는 없고, 이북식 김치만두만 있다. 김치맛은 사진에서 보다시피 빨간 김치 색깔이 거의 드러나지않는다. 시판 만두들에 비해 맛이 월등하게 강하지 않고, 두부, 당면 듬뿍 들은지라 더 담백하다. 그런데, 예전 나의 위장을 강타했던 천호동 엄마손 매운 만두 만큼 배추김치의 식감이 아삭아삭 좋다. 아무래도 내 개인의 취향이 배추를 큼직큼직, 아니 누가 보면 '대충 썰어서' 넣었다고 볼 만큼 크게 다져넣는 것을 선호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국물이 담백해서 그런지 만두의 속맛은 진짜 시골스레 짭짜름하다. 그리고 요즘 한참 트렌트인 얇은 피도 아니다. 그저 만두소를 두터운 만두피가 투욱~ 하고 감싸고 있다. 만두 맛이 세련되지 않고, 투박하다. 간장으로 치면 시골 국간장 같은 느낌. 시판만두가 아이유와 같은 재기발랄함과 쨍한 맛을 보여준다면 할머니 만두국은 이미자다. 절대 하춘화나 패티김이 아니다.
할머니가 만들어주신 만두맛을 잊지 못하고 찾는 분들이 많으시단다. 그래서 더더욱 맛에 신경을 쓸 수 밖에 없고, 그것이 점심장사만 하게 된 까닭이란다. 한 가족이 매일 같은 일을 하고, 같은 만두국을 수십년 간 끓여내는 것에 가장 단순한 것이 가장 위대하다는 말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늘 불꽃같은(?) 삶으로 불살라버리며 어디로 튈지 예측하지 못했던 내가 이 만두국 한 그릇 받아 먹으면서 해보는 생각이다.
아.... 어색하지 않다....나는 어색하지 않다....
이날 날이 더웠는지, 만두국 한 그릇 먹으면서 땀을 정말 많이 흘렸다. 워낙 더운 것을 싫어해서 숙소나 음식점을 고를 때에는 에어콘이 잘 되어 있는지 예의주시하는데, 역시 여기는 둘러보니 에어콘이 없다. 먹는 우리야 그렇다 치더라도 주방에는 자그마한 에어콘이라도 하나 있어야 할 듯 한데. 날이 더 더워지기 전에 꼭 한 번 가보시기 바란다.
이 무심하게 맛있는 만두를 그냥 놓고 올 수가 없어서 냉동만두 한 봉다리를 사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도대체 맹물로 어떤 맛을 낸다는 것일까. 궁금해서 나도 냄비에 물을 올리고, 파를 잘게 썰어서 듬뿍 넣어 보았다. 이것이 아주 맛있는 계란국의 비법이기도 한데, 쉬운 음식 같으면서도 계란을 아주 포슬포슬 하게 얹어내는 것이 기술이다. 그냥 휘젓지 않는다고 해서 저 할머니 만두국 같은 비주얼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
물이 팔팔 끓을 무렵, 잘 풀은 계란물을 쪼르르 둘러부었다. 나는 계란물에 멸치액젓을 조금 넣어 간을 했다.
만두야 내가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될 정도로 맛이 있으니 걱정을 하지 않는다. (다만 단짠, 매콤한 만두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또 호불호가 나뉠지도 모르겠다.)
어쩜 좋니.
너무 오래 끓였는지 만두가 살짝 터져서 국물이 저 모양이 되었다. 그러나, 이날 하루 두끼 식사로 할머니 만두 매우 만족스러웠다. 좋은 봄날, 이렇게 숨은 맛집(방송을 타긴 했지만, 정말 만두집이 골목길에 꽁꽁 숨어있다)을 알게 되고, 가서 맛보게 되어 행복했다. 게다가 손녀분까지 이어받아 만두집을 하신다니, 더 기쁜 소식이고 말이다. 오래오래 먹을 수 있게 되었으니.
정릉역에 내려서 2번출구로 나온 후 앞으로 조금 걸어나오다 보면 시장통이 나온다. 그 안으로 들어가서 진짜 말도 안 되는 조그마한 골목길로 들어서면 되는데, 미니붕어빵 천막 바로 옆으로 꺾어 들어간 후 여긴가, 아닌가 하면서 헤매다보면 만두집을 만날 수 있다.
모두 즐거운 만두여행이 되시길! 나도 이번주에 한 번 더 가보려 한다. 자꾸 삼삼하게 그 할머니 만두맛이 떠올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