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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섬 Apr 01. 2023

소설판의 탁월한 변사 '천명관'

<고래>를 읽고 있습니다. 

천명관의 소설은 우선 영화로 먼저 만났다. <고령화 가족>. 

나는 그 영화 좋았다. 박해일이 내 일은 왜 이렇게 안 풀려 하면서 울면서 건너는 다리는 내가 매번 시내 나갈 때마다 건너는 묵동교. 엄마, 그 아저씨 따라서 왜 거기 들어갔어요! 하고 따져 묻는 가게는 우리집 바로 아래 도깨비 시장에 아직도 살아 있는 철물점이다. 

영화보면서 내내 이 식구 사는 동네 겁나 후지네... 하면서 봤는데, 잘 보니 딱 우리 동네인 거라. 이렇게 세상 찌질한 애들이 얽혀서 웃기게 이야기 끌고 나가는 구도 되게 좋아하는데 이것 또한 딱이었다. 

소설은 '쓰레기'라는 평도 많았지만, 그 이유는 이제 안다. 드디어 알게 됐다. 전작 <고래>가 어마어마해서 그렇다. 


천명관의 '고래'를 읽고 있다. '영화적인 서사'라고 해서 그래? 지금 기획안, 줄거리 진짜 여서일곱 번 고치고 있는데, 어떻게 썼나 보자 하고 오며 가며 읽는 것이다. 초반부 3분의 1 정도까지 진도 뺐다. 정말, 웃겨서 죽는 줄 알았다. (웃겨서 죽는 독자의 행위는 눈물이 함께 범벅이면 더욱 더 난장이다. 그래서 더 죽겠다.) 영화적인 서사? 라고 근사하게 말할 게 아니라 옛날 영화 '변사'가 하는 일을 천명관 작가가 하고 있었다. 


"그녀가 드난을 살게 된 대갓집엔 외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그가 하필이면 반편이었다.

...(중략)

그러던 반편이가 열댓 살이 넘어가면서 문제가 하나 생겼다. 그것은 다름 아닌 그의 엄청난 양물 때문이었다. 지능지수가 서너 살 먹은 어린애 수준에서 멈춰버린 게 억울했는지 어쨌는지 그의 연장은 오뉴월 수세미처럼 쉬지 않고 자라 열댓 살이 되어서는 그 길이가 물경 한 자에 이르렀으니, 혹 옆에 자가 있다면 독자 여러분께서도 그 크기를 한번 가늠해보시라. 참고로 한 차는 30.3 센티미터에 해당한다. 

...(또 중략)


한 자가 넘는 그런 기물을 현실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우리로서는 그 충격을 헤아리기가 쉽지 않다. 다만 그 장대한 스펙터클 앞에서 그저 입을 딱 벌리지 않았을까 하는 짐작만 해볼 뿐."


아아... 

정말 이런 글을 쓰고 싶다. 이런 글을 써야 한다. 독자들의 눈을, 멋있는 척 1도 안 하고 아주 종이에다가 갖다 꽂게 만든다.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의 인터페이스가 실시간이다. 이거 읽으면서 진짜 우리 반편이의 성장을 상상해봄과 동시에 옆에 혹시 30센치나 돌돌 말린 줄자가 있나 둘러보게 되는 작은 기적을 경험했다. 

또 한 가지. 어휘. 지금 e 북으로 읽고 있는데, 모르는 단어들, 심지어 저 위에 짧은 문단에서도 나오는 '양물', '드난', '반편이' 등등 대충은 알겠지만 잘 몰랐던 단어들이 수북하다. 메모하면서 읽고 있다. 

(솔직히 '양물'은 까맣게 몰랐음. penis로 번역이 되었을까. 아아. 그것만으로는 어감이 너무나 아쉽다. 다른 말 없을까. Dick도 너무 장난스러워서 정확치는 않고... '어마어마한 물건인데, 두 손으로 받아도 수북한 것, 음물과는 또 다른 것' 정도의 어감이어야 할 텐데... 영어로 가능한가.)

나중에 영역판을 보신 어떤 분이 manhood, member과 같은 다소 점잖은 문어체로 번역이 되었다고 전해주셨다. 


이 글의 대문 사진은 영화 <고령화 가족>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다. 자식들이 술 취해서 딴 테이블과 엉겨붙어 뒤죽박죽 싸우고 있는데, 이 와중 꼿꼿이 앉아 소주를 마시는 어머니의 카리스마. 우리 삶 속의 찌질함을 유쾌하게 잡아내는 것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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