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섬 Apr 06. 2023

우리 앞에 생이 절정일 때

스타가 된 다음에는 뭘 하고 싶은가요?


블링블링한 삶이란 어떻게 시작해서 어떻게 끝날까. 

아침에 일어나면 아침 식사가 끝장 나게 차려져 있고, 여기저기 강의 요청이 쇄도하고, 한 시간에 300만 원 준다고 하고, 인터뷰 요청 쇄도하고, 그 중에서 어디 나갈까 고르고... 해외로 나가고? (나는 유럽가는 비행기만 타도 좋겠구만) 그리고, 유퀴즈 출연? ㅋㅋㅋ 

너무 상상력이 빈곤하여... 여러분들이 원하는 드림 라이프 의견을 구합니다. 그냥 내가 성공(경제적? 사회적? 여하튼 부모님이 아이고~ 우리 누구누구 잘 됐다 하고 박수치시는 성공...) 하면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말씀해주세요. 

제주도의 보태니컬 정원을 사버린다, 부엌의 싱크대를 최고급 자재로 하여 ㄷ자로 꺾어버린다, 이태리의 어디로 간다, 오로라를 보러 간다 등등... 꼭 하고 싶은 일들 댓글 남겨주세요. 


지난 드라마 기획 회의에서 나온 의견 중에 하나가 여자 주인공의 고생담만 나오는 것이 너무 부담스럽다, 고생을 거쳐서 빵 터지는 성공담도 다채롭게 보여주면 좋겠다는 의견이 나왔다. 맞다. 다른 장르도 아닌, 자본주의의 총 집약체인, 영화도 아니고 드라마가 이렇게 마른 오징어 쥐어짜 물 받아 먹듯 하다니 얼마나 답답할 것인가. 4년 전에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Dear My Husbands'라는 소설을 연재한 적이 있었는데, 그 소설은 진짜 내가 본 일, 겪은 일을 한 겹도 각색 없이 다 까발렸었다. 사실 소설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르포라고 하면 적당하려나. 정말 다행히도 많은 독자들이 꾸준히 읽어주기는 했지만, 그 거친 구성과 글 솜씨는 지금도 생각하면 얼굴이 후끈거린다. 무엇보다도 '삶은 고구마 백 박스'라는 댓글에 나도 깔깔 웃은 적이 있는데, 이 소설 읽으면서 정말 답답해 미치겠다던 그 댓글이 너무나 기억에 남는다.  삶은 고구마가 백 박스가 들어갔으면 사이다도 백 병은 넣어줘야 맞다. 이것이 세상 모든 이야기의 공식일 것이다. 


오케이, 좋다. 끝에 가서 기어이 성공한 주인공의 화려하고, 당찬 모습을 한 번 그려보자 하고 노트북 앞에 앉았지만, 도저히 떠오르지 않았다. 아니, 줄 하나 그려지지도 않았다. 그래도 캐릭터 만들어내는 데에는 나름대로 자신이 있었는데, 왜 '성공한 여자'에 대한 이미지는 이렇게 난감무쌍인 것일까. 

그것은 바로 내가 살면서 단 한 번도 큰 성공을 거두는 경험이 전무했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한 번이라도 성공을 크게 해본적이 있어야 화려한 주인공의 삶도 나름대로 그려볼텐데, 나의 상상력은 거기까지 못 미치고 있었다. 그렇다면 나 나중에 성공하면 뭐, 뭐 해야지 하는 위시리스트 정도는 있지 않나? 마음 속에 조용히 담아 놓고는 있지만 늘 엄격한 자기 검열에 들어가 걸리고야 만다. 성공의 기준이 뭐야? (왜 지금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지?) 성공도 안 하고 뭐 하고 싶은지만 생각하면 뭐해? (그런 헛된 몽상할 시간에 얼른 성공으로 가는 페달을 밟아야지!) 상상하는 데 뭐 시간이 드나 돈이 드나 싶지만, 이런 고루한 잣대에 손바닥을 딱딱 맞는 어린 아이가 되어버리고야 마는 것이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싶어 페이스북에 올려보았다. 자기가 상상하는 성공의 모습을 그려달라고. 그랬더니 많은 분들이 참 재미난 답을 주셨다. 


1. 평일 낮에 원하는 활동이나 강의에 참여하는 삶(주5일 직장을 반드시 다닐 필요가 없는게 전제겠죠)

2. 직장에서 부당한 일을 겪었을 때 과감히 쎄게?! 나갈 수 있는 삶(사과 요구, 공식절차 밟기 등등)


북쪽의 오로라, 남쪽의 펭귄, 그리고 사하라 사막 보고싶어요.


동해, 서해, 남해에 섬 하나씩 사서 별장 짓고 룰렛 돌려서 나오는 곳을 헬리곱터로 가서 일주일쯤 있다가 오면 계좌에 현금이 얼마나 있는지 확인하는 데 이틀쯤 걸리면 되려나요??


물경 50년 전, 아버지가 자전거 짐칸에 백과사전 한 질을 싣고 오셨드랬죠.

제가 고른 책 첫 장에 컬러로 딱 박혀있던 마추픽추.

그때부터 남미여행이 꿈이었습니다.

시간이나 돈따위 구애받지 않고 두어달 남미 샅샅이 누빌 때쯤이면 제 인생이 한껏 충만할 것 같습니다.


이탈리아 소도시 여행 가고싶어요. 시에나를 못 가봤는데 가보고싶고, 루카나 산지미냐노 같은 독특한 곳 돌아다니고 싶어요.


한국의 메디치가가 돠고 싶어요. 드라마 영화 연극 전시 음악회 등등에 수익 상관없이 투자, 후원하는 삶. 아 그리고 소소하게 로로피아나 캐시미어를 가격표 안 보고 내 거와 친구 거 같이 살 거예요.


서울 인왕산 자락 조용한 곳에 마당 있는 집 짓고 살고 싶고요(그 동네 아파트인 경희궁 자이 가격이 강남 아파트 가격이니, 강남에서 마당있는 집 짓는 것만큼 돈이 많이 들겠죠?), 1년간 경비 걱정 없이 해외여행 다니고 싶네요. 물론 직장생활 그만두는 건 기본.


캬아~ 좋구나! 댓글들을 받아 읽고 보니 다들 성공 후 하고 싶은 일, 혹은 이루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현실적인 범위가 읽혔다. 사람들은 일단 생업에서 탈출하고 싶어한다. 덕업일치를 이미 이룬 분들이야 더 바랄나위 없겠으나 먹고 살기 위해 아침 9시를 향해 출근하는 생활의 반복은 역시나 여간 어려운 일 아니다. 그리고, 여행. 물론 외국에 사는 세계의 모든 사람들 중 '한국'이라는 독특한 나라에 와서 쉬다 가고 싶은 이들도 많겠으나 지역적으로 어디론가 떠나는 것도 그렇고 '현실 생활'이라는 찌든 때를 싹 벗겨내고 싶다는 욕망이 우리를 세계로, 자연으로 이끄는 것 아니겠나 싶다. 그리고 이 댓글을 주신 분들 나잇대가 주로 40대 이상이어서 거주 공간을 한적한 시골, 조용한 곳으로 옮겨서 편안하게 쉬고 싶다는 의견이 압도적이었다. 

몇 개월 전, 김연아와 고우림이 산다는 85억 짜리 흑석동 한강뷰 120평 집이 유튜브에 나와서 정말 입을 쩍 벌리면서 봤던 기억이 있다. 정말 집에서 길을 잃게 생겼다! 이런 집도 괜찮지 않을까. 


그렇다면 내가 그리는 나의 성공한 모습은 무엇일까. 

어렸을 때는 고맙게도 1,2층 너른 집에서 살았었지만, 성인이 되고 난 뒤에는 단 한 번도 20평대 이상의 집에서 살아본 적이 없기에 집에 대한 동경이 참 크다. 거실이 넓다면 나는 전문 목수님을 초빙하여 벽 한 면을 모두 책꽂이로 짤 것이다. 그리고 집에 한 번도 놔본 적 없는 예쁜 소파를 놓을 것도 같다. 침대 겸 해서... 그리고 나의 꿈의 부엌! 우리 가족들 중에서 부엌 싱크대 앞에 서는 사람은 나밖에 없으니... 나만의 공간이 되겠지. 와인잔 걸이에다 각종 예쁜 와인잔을 지금 우리집 찬장에 초라하게 서있는 잔들처럼 짝짝이로 말고 4벌씩 짝 맞추어서 걸어 놓을 것이다. 그리고, 넉넉한 공간에는 예쁜 찻잔, 다구 등을 구비해놓고 싶다. 예쁜 포트, 찻잔 세트 이런 소꿉 같은 '어여쁘고 무용한' 것들을 좋아하는데 할부로 끊어 산다고 해도 정작 넣어둘 장이 없어서 언감생심이었거든. 지금은 식탁이 내 책상이고 (그래서 브런치 매거진의 이름이 '키친 테이블 에세이'인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내 작업대인데 가끔은 밥 먹는 가족들에게 미안하다. 늘 노트북이 펼쳐져 있는 식탁 반대편에서 밥을 먹는 식구들... 한 번은 노트북 뒤로 가서 보니까 노트북 뚜껑이 앞에 높이 올린 하얗고도 높은 벽처럼 보여서 너무나 놀랐다. 상상 속의 나의 넓은 집은 부엌이 넓을 테니 씽크대와 같이 식탁도 ㄱ자로 꺾여 있을지도 모른다. 그 한 귀퉁이에서 글을 쓰겠다. 아, 버지니아 울프가 이야기한 '자기만의 방', 서재를 꾸밀 수도 있겠지. 

그리고 거실 한 켠에는 피아노를 놓겠다. 어려서는 정말 숨 쉬듯이, 동생이랑 수다 떨면서, 간식 먹으면서, 때로는 울면서, 웃으면서 피아노를 쳐댔는데, 안 친지도 벌써 25년이 넘었다. 집에 악기 놓을 공간이 없었던 것이 이유의 전부다. 


얼마 전 어떤 분이 '나의 성공은 내가 자고 싶은 곳에 가서 자는 것'이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완전히, 온몸 다 불살라서, 사지를 덜덜덜덜 떨면서까지 격하게 동의한다. 내가 자고 싶은 곳이라 함은 비단 어느 어느 지역의 호텔, 혹은 빌라... 이런 것만을 뜻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나는 말이다. 눈이 어마무시하게 내린, 삿포로의 어느 호텔(일본 하면 료칸이 떠오르지만, 시골의 료칸은 너무 춥다) 창문으로 온 세상이 고요해지는 것을 바라보다가 배가 고파지면 식당으로 내려가 와인 혹은 따스한 정종에 가벼운 식사를 할 것이다. 물론 나는 술고래라 와인을 아무 때나 마실 수는 없을 것이고, 다음 스케줄이 없는 편안한 상태에서 한잔 청하고 싶다. 그리고, 하와이의 푸른 바다가 넘실 대는 모래사장, 야자수 그늘 아래 의자에 앉아 진짜 진짜 육즙 터지고 맛있는 핫도그를 먹고 싶다. 물론 의자 옆 바닥에는 맥주가 놓여 있겠지. 그리고 발리의 한 리조트, 내 개인 수영장에 들어가서 퐁퐁 기포 터지는, 별로 달지는 않은 샴페인을 마시며 바로 앞에 풀과 연결이 되어 있는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고 싶다. 그렇게 수영하다가 옆에 비치된 타올 가운을 입고 아무 방이나 들어가서 푸우 푸우 소리내며 달게 자고 싶다. 밖에서 딸랑딸랑 종이 울려 눈을 떠보면 테이블에 어마어마한 디너가 차려져 있고. 나는 세상에서 가장 진하고 맛있는 오렌지 쥬스를 한 컵 마신 후, 눈 앞에 펼쳐진 건강한 음식들을 천천히 먹을 것이다. 사진은 찍지 않을 것 같다. 

매일 이런 생활이라면 아마도 얼마 안가서 질릴 것이고, 업 앤 다운이 없는 삶에 의미를 잃을 지도 모를 것이라고 꿈 깨라, 깨몽을 외치는 분들도 어쩌면 있을 것이다. 오십 다 돼서 이런 거 한 번 못해봤냐고 마음 속으로 놀릴 수도 있겠다. 그래도 삶에 질리고, 의미를 잃어도 좋으니까 딱 한 번만이라도 이렇게 살아보고 싶다. 아니 한 번 사는 인생, 거실 한쪽 벽에 책꽂이 이거 왜 안 되냐고. 삿포로 호텔, 이거 허락안 될까. 하와이 바닷가에서 랍스터도 아니고 핫도그 먹고 싶다고, 핫도그. (아, 파인애플 피자였어야 했나) 


아, 이렇게 상상 속 나의 성공한 모습을 정신없이 펼쳐보니 이미 에피소드 서너 개 다 추렸네. 거의 반 년 동안 40장이 넘는 기획안을 이리 고치고 저리 고치고 이렇게 뒤집고 저렇게 뒤집으면서 썼다. 아마도 a4 용지 300장이 넘는 시행착오를 거쳤을 것이다. 이제 거의 터널의 끝이 보인다. 드라마의 주인공, 나의 친구 강토시가 이리 멋지게 성공한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면 완성이다. 

그리고, 김연아의 사진은 내가 감각할 수 있는 가장 최고치의 환희가 끓어오르는 순간이다. 밴쿠버 올림픽 때 클린 연기로 끝내던 바로 그 순간. 바로 내가 예상하는 성공의 순간이다. 저 장면을 잊을 수가 없다. 그래서 이 사진들을 사진종이로 출력해서 냉장고에 붙여놨다. 볼 때마다 성공하는 느낌을 가질 수 있도록. 




다음 에세이집 가제가 <나도 스타가 되고 싶어>인데, 너무 너무 뜨고 싶어 몸부림치는 뉘앙스가 들어가 밉살스러워 보일 것 같아서 주저하고 있었다. 저 한 줄 글에 맞춰 원고는 준비하되 사람들의 '아우~ 꼴 보기 싫어' 하는 눈총을 받을 제목을 짓지 말자는 것이 내 생각. 뜨는 것은 둘째 치고 욕이나 안 먹고 조용히 넘어가면 본전인 곳이 바로 책 시장이다. 그러나, 이 글을 한 줄, 한 줄 쓰면서 계속 드는 생각은 계속 다시 그곳으로 꽂힌다. 나도 스타가 되고 싶어. 나도 스타가 되고 싶어. 

(아니면 요즘 웹소설 제목처럼 '내가 개고생하다 스타가 된 썰 품' 이렇게? ^^)

매거진의 이전글 소설판의 탁월한 변사 '천명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