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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섬 Apr 10. 2023

사랑에 집착하면 훗날 남는 것

그 아름다운 호르몬 교란 상태

이 글의 대문 사진만 보면 놀라실 것 같아 먼저 설명부터 드린다. 통영에 가면 동피랑 근처에 '울라봉 카페'라는 곳이 있다. 이 집은 카페인데, 다른 곳에서는 상상도 못할 커피를 마실 수가 있다. 이른바 '쌍욕 라떼'. 알바도 아닌, 오직 주인장만이 라떼 거품 위에다 이렇게 쌍욕을 제대로 시전해주시는데 욕 들어먹는 데에도 과정이 있다. 손님은 먼저 들어가면 커피의 종류를 고른다. 메뉴판에 쌍욕을 들을 수 있는 커피와 아닌 커피가 구분이 되어 있다. 그리고 최근 관심사가 무엇인지, 어떤 분야에서 욕을 듣고 싶은지 등등 설문지를 작성한 후 꼼꼼하게 답한다. 아리까리한 부분은 주인장이 되짚어 묻기도 한다. 괜히 잘못 발사했다가 반대로 '개욕 처먹고' 마음 상한 손님은 다시는 안와! 하면서 발길을 끊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참고로 나는 이 카페에 총 네 번 갔다. 한 번은 딸이랑 함께 갔었고, 나머지는 혼자서... 

미성년자, 임산부에게는 욕을 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도 부탁이니 욕을 해달라고 했었나? 맨 처음 딸이랑 함께 갔을 때 딸의 코코아 위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지 엄마랑 똑같이 생겨버렸네.' ㅋㅋㅋ

이 사진은 내가 2020년인가 방문했을 때 받은 라떼를 찍은 것이다. 여하튼 통영의 울라봉 카페 이야기는 이쯤에서 정리하고...




얼마 전, 안지 한 20년은 족히 넘은 남자 사람에게 연락이 왔다. 혹시 내 여자친구한테 연락 갔냐고. 

- 왜, 나야? 

어이가 없어서 처음 던진 질문이 이거였다. 지금 내 나이가 오십인데 이런 연락이나 받을 군번이냐고. 그리고 니 나이가 몇인데, 그런 거에 벌벌 떨며 살 때냐고. 이어서 나는 말했다. 

- 사인 안 좋다. 

맞다. 안 좋은 징후다. 그리고, 너희들 둘 일은 둘이 알아서 하라고 했다. 괜히 나한테 불똥 튀지 않게 해달라고. 나이 들면 들수록 불필요한 인연은 그냥 과감하게 처버리는 것이 백 배, 천 배 낫다는 것을 배운다. 그래서 그날 밤, 한 1-2분 생각해본 후 배운대로 했다. 괜히 구설수 오를 것 같은 관계는 끊어버리자. 25년 여의 시간동안 그다지 신실한 친구관계도 아니었다. 

그날 이후 모든 것을 다 차단하고 있었는데, 결국 올 것이 뒤늦게 오고야 말았다. 그자의 여자친구가 친히 내 인스타그램 댓글로 납신것이다. 그의 이름 석자를 정확하게 내 댓글에 쓰며 남긴 두 개의 댓글로 기분이 퍽 상했다. 무례한 것은 물론이다. 지금 이 여자가 왜 나에게 댓글을 보냈는지는 안다. 엄청난 파워로 집착하고 있는 것이다. 남자친구와 관련된 모든 sns는 다 뒤져보고 있을 것이다. 아마도 나는 한 3-4년 전, 다른 또 한 사람과 함께 셋이 호프집을 갔었을 때 찍었던 사진 때문에 소환된 모양이다. 무슨 일이 또 벌어졌는지, 뭐에 얼마나 속이 부글부글했는지 모르지만, 부랴부랴 인스타그램 계정까지 만들어서 내 계정으로 쳐들어왔다. 어쩌면 이 브런치도 읽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것도 사랑이다. 사랑이긴... 미친 형태의 사랑이긴 하지만... 사랑의 스펙트럼에도 사다리가 있다면 그중 가장 하등한 사랑이고, 본인은 가장 아프고 괴로운 형태의 사랑이다. 물론 주변에 미치는 포화는 구구절절 설명해서 뭐하나. 




노희경 작가가 쓴 산문집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유죄>를 오디오북으로 듣고 있다. 노작가도 진한 블랙커피 같은 사랑을 했었구나. 내심 반가웠다. 그렇지, 이런 사랑의 경험이 없다면 사람들의 마음에 깊게 들어가기 힘들겠지. 산문집 속에서 '그대'라고 지칭하는 이들에게 매몰차게 버림받고, 그러기 싫어서 마음을 다 열지 않고, 헤어지고 난 다음에 다른 사람과 또 불과 같이 사랑을 하고, 다시 '그대'를 만나서는 그동안 계속 생각났었다고 고백한다. 이 대목에서 피식 웃었다. 나도 예전에 헤어졌던 이에게 너 '계속' 생각났었다고 거짓 순애보를 만들어 선사해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사랑은 이렇게 유치하다. 그런데, 노희경 작가는 드라마에 자기의 사랑을 우직하고 고집스럽게 녹였다. 

지나간 사람에 대한 참회록!

그가 아닌 나에 대한 참회록!

심지어 동료 작가들은 마스터베이션 같은 글, 자기만족과 드라마를 구분조차 하지 못하는 초보라는 질타까지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정.말. 상.관.하.지.않.았.다. 그 말들은 무조건 맞는 말이었기 때문이었단다. 이 글 때문에 앞으로 일감이 떨어진다고 해도 그냥 쓰겠다고 했단다. 엄청난 멘탈이다. 그렇게 나온 드라마가 <거짓말>이다. (작품 평은 둘째 치고 시청률은 엄청 저조해서 작가 개인에게는 가장 사랑했고, 아팠던 드라마라고 한다) 

그렇다. 지나간 사랑은 이렇게 떠올리기만 해도 난로 위에 얹은 마른 오징어와 같이 된다. 도대체 세상의 어떤 사람이 '내가 봐도 내가 정말 멋있는' 사랑을 할 수 있을지. 

 


사실 이 글을 쓰게 된 단초는 이거였다. 

노희경 작가는 데뷔 후 초기에 밖으로 나가서 밥 사먹는 시간이 아까워 그 조그만 몸으로 환자용 캔 죽을 방 안 가득 쌓아두고 먹고, 잠은 글 쓰다가 쪽잠을 자면서 일했다는 내용이었다. 밤마다 악몽을 꾸고, 머리가 복잡할 때는 친구들을 불러내어 영원히 승패도 가르지 못할 카드를 치고... 언제 제대로 누워잤는지 기억이 없단다. 가족이랑 함께 맘 편하게 놀러간 적도 없고, 친구들에게도 배려한 적은 더더욱 없었다며. 이 구절을 들으면서 나는 계속 '왜?'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난을 겪어보지 않으면 가난에 대한 다양한 느낌과 감각을 날카롭게 써내기는 어렵다. 내가 부자 인생, 성공한 인생을 쓰는 데에 많은 취재가 필요했던 것처럼. 이렇게 미친듯이 자판에 몰입하면서 잠도 자지 않고 글만 쓰면서 어떻게 세상을 넒고 다양하게 볼 수 있을까 의아했다.

잘 생각해보니 집착이었다. 노희경 작가는 자기 일을, 쓰고 있는 이야기에 천착하고, 그리고 그를 사랑했던 것이다. 사랑은 늘 광기를 머금고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나는 노희경 작가만큼 간절하지 않은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돌아보게 되었다. 나도 아침마다 일어나서 "안녕, 토시야? 잘 잤어? 사랑해." 라고 하며 인사할 정도는 돼야 노희경만큼 쓸 수 있는 걸까.(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 강토시를 너무너무 사랑한다. 여자 주인공 이름이 강토시다 ^^) 밖에 나가 밥 먹는 시간 아까워하는 것까지는 비슷한데... 여하튼 노희경 작가는 자기가 쓰는 드라마를 정말 사랑하는, 독보적인 작가인 것은 맞는 듯하다. 

얼마 전 씨네 21에서 인터뷰 작가 22인 인터뷰를 실었는데 거기에서 작가가 정말 당당하게 이렇게 말했다. 깜짝 놀랐다. 

- 우리나라 문학보다 드라마가 더 좋다고 생각해요. 



미친 사랑의 기억은 나중에 대략 세 갈래로 남는 것 같다. 1. 노희경 작가처럼 창작의 원천이 되는, 다른 서사로 새롭게 가공이 되거나 2. 서로 시들해져 이봄 가면 또 내년 다른 봄 오듯 시들하든지 마지막으로... 3. 여전히 광기로 남아 둘 중 누구 하나 죽어 끝나든지. 

이왕 하는 사랑, 끝나고 나서 내 인생에 건강한 통찰을 선물처럼 남기면 얼마나 좋나. 내 인스타에 쳐들어왔던 여자도 사랑이 지나가면 그렇게 다른 통찰 얻어가면 좋겠다. 집착하는 시간, 너무나 아깝다. 소중하다. 


이쯤에서 다시 저 위로 올라가 쌍욕카페 사진을 감상하면서 다 함께 정신을 차려보자. 

봄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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