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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섬 Apr 15. 2023

'자기만의 방' 안에 메뚜기가 산다!

오늘도 나는 도서관 메뚜기를 뛴다

100년도 더 전, 버지니아 울프는 이렇게 말했다. 1년에 500파운드라는 돈은 사유할 수 있는 능력이며, 자물쇠를 단 방은 홀로 사유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말이다. 이 둘이야말로 여성이 경제적, 정신적으로 독립할 수 있는 첫 번째 조건이라고 했다. 이는 21세기를 사는 지금의 사람들에게도 너무나 처절하게, 한 치의 관용 없이 적용된다. 

나부터도 잔고가 점점 0을 향해 돌진(그야말로 돌진이다. 돈은 서서히 야금야금 빠지지 않는다!)하면 안절부절못하게 된다. 글을 쓰는 직업 때문이 아니라 그 어떤 일을 하더라도 뇌가 발휘할 창의성의 여력은 상당히 위축된다. 불안이 그를 잠식하기 때문이다. 불안한 나는 탄력있는 문장을 만들어내지도 못하고, 유쾌한 이야기의 구성도 잡아내지 못한다. 그저 수정사항만 받아들고 기계적으로 고칠 수 있을 뿐이다. 그 뿐인가.  달에 필요한 생활비를 확보하려면 본업 외에 다른 일을 병행해야 한다. 한 4-5년 쯤에는 새벽에 일을 하고 돌아와서 오후에 글을 쓰겠다며 녹즙 배달, 생과일 쥬스가게 새벽 오픈조 일을 했었다. 머릿속으로야 시간 계산이 맞아떨어졌지만 내가 기계식 주차장도 아니고, 제때 딱딱 맞춰 내려와 책상에 앉을 수가 없었다. 

버지니아 울프 언니의 말씀이 맞다. 돈은 사람을 사유할 수 있게 해준다. 졸음이 쏟아지면 낮잠이라도 잘 수 있는 시간과 내리쬐는 햇살을 충만한 마음으로 맞이하고, 비 온 뒤 젖은 나무 냄새, 흙냄새를 온전히 맡으며 행복해할 수 있는 여유를 준다. 


나의 작업실은 동네에 있는 구립도서관이다. 이 공간이 또 꽤 재미난 공간이다. 지금이야 코로나 시국에서 벗어나 마스크 착용도 권고 단계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도서관 2층, 노트북 책상 쪽은 그야말로 치열한 '의자 뺏기' 게임의 전쟁터였다. 노트북을 가지고 오시는 분들은 대부분 나처럼 매일 와서 오래 앉아있는지라 누가 빨리 오느냐의 문제. 게다가 여기에 신문과 책을 보시는 할아버지, 할머니들까지 이 책상의 용도를 모르시고 자리를 차지하시면 정말 울고 싶을 때도 있었다. 지금은 자리 제한이 풀려서 그나마 여건이 나은 편이다. 

매년 도서관에서는 '상주 작가'를 선정해서 작업실을 내준다. 그리고, 선정된 작가는 가끔 강연도 하고 도서관 행사에 참여하면서 제 몫을 한. 상주 작가 방 앞에는 이런 X 배너가 서 있었다. 

<우리 도서관에는 *** 작가님이 상주하고 계십니다>

그 앞을 지날 때면 묘하게 부럽고, 서럽곤 했다. 우리 도서관에는 황서미 작가가 매일 매일 메뚜기를 뛰고 있는데... 도서관을 많이 이용하는 사람들이 보통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들이기 때문에 동화작가들 위주로 선발한다는 이야기를 어디서 듣고 와서는 조금 위로가 되긴 했다. 

가끔 이런 상상을 해본다. 만약 내 작품 중 하나가 대박이 터져서 근사한 작업실을 얻을 수 있을 만한 여유가 생긴다면... 아무래도 나는 그 돈으로 집을 늘려갔으면 갔지, 일은 계속 도서관에서 할 것 같다.


도서관이 좋은 이유가 몇 가지가 있는데, 그중 단연코 좋은 이유를 든다면 바로 사람들을 관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이 공간의 모든 이들에게 '스토리'가 있다. 매일 오는 분들은 더더욱! 하루하루 이어붙여서 그들이 내게 말없이 건네는 이야기를 상상해볼 수 있다. 그중 가장 개성 넘치는 분을 소개해본다. 겨울이면 매일 파랑 점퍼를 입고 오시는 분인데 약간 말도 어눌하고 특유의 반복되는 행동이 있다. 성인 발달장애인인 듯하다. 겨울이면 그 반복행동 때문에 아저씨 점퍼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굉장히 리드미컬하고 크게 들리기도 한다. 그를 조마조마하게 바라보며 겨울이 벌써 세 번이 지나갔는데도, 아무도 아저씨께 점퍼를 벗으시라거나 너무 시끄럽다고 나무라는 것을 보지 못했다. 매일 이곳에 오시지만, 단 한 번도 책을 읽는 것을 보지 못했다. 오로지 헤드폰을 빌려서 컴퓨터로 아이돌 동영상을 보는 일이 그의 일과. 다른 영상은 보지 않는다. 오로지 여자 아이돌 무대다!

그 아저씨와 친구가 되어주는 또 다른 활달한 뚱땡이 아저씨가 있다. 그들 중 누구 한 명이 먼저 와 있으면 다가가서 등을 툭툭 치며 굉장히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왔어? 오셨어요? 하고... 그리고 도서관 밖 소파에 앉아서 종이컵에 믹스 커피를 타서 나누어 마시며 이야기를 나눈다. 뚱땡이 아저씨는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기관에서 사시는 것 같았다. 요즘 삼시 세끼 갈치만 나와서 질려서 죽겠다는 이야기를 주워들어서 알았다. 

또 다른 친구는 굉장히 연세 드신 할아버지. 이분은 소설에나 나올 법한 엉뚱한 만물박사 할아버지 같은 분이다. 귀가 잘 안 들리는지 커다란 목소리로 파랑 점퍼 아저씨에게 훈수를 두신다. 

"인터넷을 알아야 해, 인터넷을. 책지피티라고 알어? 요즘은 그런 시대야. 책지피티... 세상의 어떤 책이든 다 컴퓨터가 말해주는 시대가 왔다고. 어?"

"그게 뭐예요? 아유, 저 그런 거 잘 몰라요."

"공부해야 해. 자네도."

내 귀를 의심했다. 책지피티라... 이 순간을 놓칠 수가 없어서 핸드폰에 메모해놓았다. 만물박사 할아버지와 파랑 점퍼 아저씨의 대화를... 

이 외에도 늘 볼펜으로 시를 베껴 쓰고 문학잡지를 읽는 할머니, 머리를 눈이 잡아당겨질 만큼 빠짝 사무라이 같이 올려 묶고는 우리 고3 때 독서실 다니듯이 짐을 한 꾸러미 끌고 와서 매일 일본어 강의를 듣는 할머니, 하루종일 눈이 퀭해서 경제 공부를 하고 주식 챠트만 바라보는 아저씨도 있다. 내 나이 또래인 듯하다. 이미 등은 거북이 등이 되었다. 가끔 머리를 자르고 오는데, 그때만 딱 단정해 보이고 나머지는 온통 머리에 기름이 껴 있다. 매일 봐서 가끔 나랑 눈이 마주칠 법도 하건만, 절대 누구를 쳐다보는 법이 없다. 이런 다양한 캐릭터를 곁에서 직관 절호의 기회를 어떻게 따로 작업실을 얻는다며 놓칠 수 있단 말인가. 

또 하나 좋은 점은 양질의 강의를 들을 수 있다는 점이다. 코로나 때는 잠잠했었지만 지금은 도서관에서 시류에 맞는 좋은 강의들을 기획해서 시민들에게 제공한다. 1층 도서관 로비에는 각종 강좌 안내 포스터가 빽빽하게 붙어있다. 나이가 들고, 점점 머리가 굵어지면서, 특히 소소하게라도 내가 강의를 하게 되면서 남의 강의는 잘 안 듣게 되었다. 모르는 것은 책 읽어서 알아내면 되지, 인터넷에 이렇게 정보가 깔렸는데... 이런 안일한 생각에 빠졌다가 작년 말부터 도서관에서 열리는 강의를 조금 더 열심히 챙겨 들으면서 알게 되었다. 라이브 강의의 묘미를! 요즘은 사람들 컴퓨터에 줌 어플 하나 안 깔린 사람 없을 정도로 실시간 온라인 강의도 보편화되고, 동영상 강의도 수두룩하지만, 강사와 마주앉아서, 한눈 안 팔고, 그 시간 온전히 강사에 집중하는 공간의 에너지를 느껴보니 좋았다. 학교 다닐 때는 몰랐던 에너지의 파장! 게다가 방송 '알쓸인잡'에 뒤늦게 맛들려서 팬이 된 김영하 작가도 도서관에서 모셔와 준 덕분에 실제 만날 수 있었다고!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지하에 구내식당이 있어서 단돈 6천 원에 양질의 한끼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그때가 진정한 도서관의 황금기였는데, 그만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아무래도 수지타산이 맞지 않았던 듯. 공공 도서관의 식당은 나라에서 학교 급식처럼 정책적으로 지원을 좀 해주면 좋겠다. 식사하려고 걸어나가면 한 시간이 후딱 지나간다. 도서관 앞, 단 하나 있는 카페에서는 커피와 샌드위치만 해도 벌써 만 원이 넘어간다. 나와 같은 넉넉지 않은 생계형 작가에게는 한 끼에 만 원을 쓰는 것은 퍽 부담이 된다. 아침에 도시락을 싸서 와 본 적도 몇 번 있었는데, 그 작업이 또 들이는 정성이 만만치가 않다. '있는 반찬 대충 그냥 가져가지' 이것 말이다, 도시락 안 싸본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다. 굳이 음식을 지지고 볶는 공정 생략하고 냉장고에 있는 반찬 콩자반, 오징어, 김치... 이 정도만 도시락 통에 담아도 시간과 품이 든다.  

내 사랑 구내식당이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도서관은 여전히 내게 쾌적한 실내 공기, 깨끗한 정수기 물, 무엇보다도 어마어마한 책을 선사해준다. 비록 내 독서 습관인 줄 그으면서 읽기는 할 수 없지만, 도서관은 일단 책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안정감을 준다. 이 풍요로움이 고맙다. 


다시 한 번 이야기해두지만, 아마 나는 그렇게 간절히 바라던 대로 아름다운 공간을 마련할 여유가 되더라도 도서관에서 일할 것이다. 여전히 도서관은 내게 소중한 작업실이다. 가끔은 노트북을 챙겨 들고 나가서 봄바람 맞으며 카페에서 일하기도 하고, 기분 내킬 때는 동네 호프집에서 생맥주 한 잔 옆에 놓고 일하기도 한다. 차 몰고 좀 더 멀리 나가서 통영 앞바다를 바라보면서 원고를 마무리짓기도 했다. 이게 바로 도서관 유목민이 누리는 공간의 자유이기도 하다. 내게는 작업실 데스크탑 컴퓨터 앞에 앉아 일하는 것에 익숙한 사람들과 달리 '기동력'이 상시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어딜 가든 앉아서 노트북 펴서 쓰면 그곳이 내 작업실이다. 자기만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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