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5월 15일 서울신문 칼럼 '황서미의 시청각 교실'
어느 봄날, 카페에 앉아 거리의 젊은이들을 멍하게 보고 있는데 어떤 목소리가 내 귀에 정확히 꽂힌다.
“엄마, 여기 설명서 잘 보셔. 이 약은 하루 세 번, 그리고 절대 안정. 안압 때문에 진짜 무리하면 안 돼. 여기 씌어 있어. 알겠죠? 청소도 하면 안 돼.”
오른쪽 눈에 두툼한 붕대를 댄 할머니께서 따님의 신신당부에 고개를 하염없이 끄덕인다. 걱정스러운 표정의 딸은 퇴원 안내서 몇 장을 앞에 좍 깔아놓고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꼼꼼하게 반복해서 설명하기 바쁘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한 3~40년 전 젊은 엄마가 어린 딸 앞에 앉혀 놓고 “알았지?”를 연발하며 뭔가 가르쳐주는 장면이 상상이 되었다. 묘한 울림이 일었다.
며칠 전에는 어느 분께서 표지만 봐도 울컥한다며 <나의 작은 아빠>라는 제목의 그림책 사진을 SNS에 올렸다. 나보다 훨씬 컸던 아빠가 어느덧 키가 같아지는 시기가 오고, 이후엔 참 이상하게도 아빠가 점점 작아진단다.
카페 안, 내 옆 테이블 모녀의 풍경과 머리가 하얀 아빠가 아들의 등에 업혀 있는 그림책의 내용이 애잔하게 포개졌다. 그러나 내 마음은 마냥 흐뭇하지만은 않았다. 소수의, 노후가 준비된 가족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미래가 불분명한 가정에서 장성한 자식들이 치러야 할 저 모습 뒤의 일들이 구체적으로 펼쳐졌기 때문에….
가장 가까이로는 따님이 치렀을 수도 있는 눈이 아픈 어머니의 수술비, 병원비와 이후 병구완의 책임과 생활비 부담 등이 내 머릿속에서 계산되었다. 하물며 우리 부모님의 사정이 되면… 막상 우리집 문제를 내 손바닥 위에 올리면 그저 눈을 질끈 감아버릴 수밖에 없다. 50대에 대장암을 한 번 앓았던 어머니를 제외하고는 지금은 건강하게 지내시는 두 분이 내게는 큰 행운, ‘자식 로또 복권’에 당첨되었음에 감사할 뿐.
2022년,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901만 8천 명으로 전체 인구의 17.5%에 달한다고 한다. 놀라웠던 것은 2021년 기준, 본인과 배우자가 직접 생활비를 조달하는 비율이 65%에 달하는 점이었다. 지난 10년간 13.4% 증가한 수치라 한다. 백세 시대를 향해 달려가는 이 시대, 전 세대처럼 노후를 마냥 자식들에게 맡길 수만은 없는 시대 흐름의 분위기를 읽어낸, 그들의 적극적인 움직임일까.
그렇다면 노령인구의 부양은 누구의 책임이 되어야 하는가의 질문에는 가족·정부·사회 책임이라는 답변이 49.9%, 반을 차지했다. 그리고 부모 스스로 해야 한다는 답변도 17%에 달했다.
아들이 중증 장애 판정을 받고, 장애인 활동 지원을 지난 4년 동안 꾸준히 받아왔다. 치료기관을 이용할 수 있는 바우처도 일정 금액 제공 받는다. 그러나, 당연히 내가 책임져야 하는 기본적인 양육비 이외에 사적으로 목돈을 들여야 할 부분이 여전히 많다. 장애인, 노인 등 사회적 취약 계층이라고 불리는 이들의 지원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여전히 ‘내가 없으면 ( )는 어떻게 하나?’라는 질문에서 괄호 안에 장애인을 넣어도, 우리 부모님을 넣어도 답이 불투명하기는 똑같다. 대한민국 사람들 반이 원하는 고령인구에 대한 지원, 가족·정부·사회의 탄탄한 삼각대가 생생하게 우리 주변에서 잘 기능하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