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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섬 Oct 28. 2023

비루한 사랑 그리고 드라마.

연애 세포를 깨워야 하는데... 얘가 안 깨어납니다. 


헤겔은 <정신현상학>에 이런 구절을 썼다. 


객체는 부분적으로 즉자적인 존재, 혹은 일반적으로 사물로서 즉자적인 의식에 대응한다. 부분적으로 그 자체와, 그 관계 혹은 타자를 향한 존재성, 그리고 그 자체의 존재성 다시 말해 결정성이 타자와한 존재로서, 직관에 대응한다......(중략) 

- <우리는 사랑일까> 알랭 드 보통 p189


'학구적인 자기 학대'가 치밀어오르는 구절이 아닐 수 없다.  하나도 못 알아 먹겠다. 영문도 모르고 연필을 들고 줄을 그으며 읽다가 그냥 이렇게 써버렸다. '정말 모르겠음' 

알랭 드 보통은 이 책에서 이걸 이렇게 재치있게 받아 넘긴다. 


진실은 얻기 어려운 보물이며, 쉽게 읽고 배울 수 있는 것은 경박하고 중요하지 않다는 편견... 진리는 올라야 할 산과 같아서, 위험하고 모호하며 품이 많이 든다. 


(중략)


인간관계에서도 이런 현상이 있다. 마음이 열려 있고, 명쾌하고, 예측 가능하며 시간을 잘 지키는 애인보다는 힘들게 하는 애인이 더 가치가 있는 것 같다. 


(중략)


그녀는 헤겔을 천재라고 믿으며 평생을 바쳐 헤겔의 책을 읽는 학자와 비슷했다. 


알랭 드 보통은 나같은 범인들은 이해를 하지도 못할 이 모호하고도 정복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는 난해한 구절을 남녀 간의 인간관계로 뽑아냈다. 이 부분에서 나는 또 한 번 감탄한다! 


나는 카톡을 보내면 큰 사정이 없는 한, 대강 1시간 이내에 답을 주고, 약속 시간을 잘 지키며, 마음도 열려 있고, 말도 통하고 발(?)도 통하며, 예측 가능한 사람이 좋다. 

그러나 말은 이렇게 해도 또 다시 한 번 카톡을 보내면 계속 1이 떠있으며, 그러면서도 페이스북 댓글은 실시간으로 낄낄대는 남자에게 마음 아파할 것이고, 약속을 한번 잡으려면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빠져나가는 것에 속은 문드러지면서 인자로이, 나는 정말 괜찮다는 듯이 웃음을 짓고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이것이 한 번 두 번 쌓이고... 결국은 이십 대 듣던 찌질한 노래의 가사처럼  '비도 오고 기분도 그렇고 해서...' 술 마시고 전화하고는 나 정말 너무 섭섭하다고 눈물을 흘리며 선을 넘나들며 지랄 시전 후, 다음 날 쪽팔려서 이불을 뻥 차며 차단을 고민하겠지.... 

비루하지만, 이게 우리네 사랑인 것을.


오오, 이러지 않는다고? 그럼 당신은 사랑의 '권력'이라는 칼의 손잡이를 쥔 쪽이다. 상대방에게 아무렇지 않게 아무것도 주지 않을 수 있는 능력. 자연스럽게 '심리적인 딴청'을 부릴 수 있는 권좌에 있는 자이다!   

당신이 그럼과 동시에 상대방은 미친 슈퍼 컴퓨터처럼 그 '딴청'이 의미하는 바를 상상하고, 패턴을 분석하고, 앞날을 예측하다가 장렬하게 편집증에 걸려 산화하겠지! ㅎㅎㅎ 

이래본 적이 없는 분들은 그동안 너무 인생 심심하고 평화롭게 사셨다. 에이~ 


이 비루한 사랑을 어떻게 드라마에서 품위있게 보여줄 수 있는지, 진짜 얼굴 찌푸리지 않게 보여줄 수 있는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 요즘이다. 이제는 '지친다'라는 말도 쓰기 미안할 정도가 되었지만, 그래도 오늘도 유튜브로 수많은 로코 영화 요약편(그중 한두 편은 대사와 연출까지 보고 싶어서 시간을 내어 본다. 그 드라마가 바로 <멜로가 체질>과 한국판 <연애시대>. 참고하시길!)들과 소설책들을 들추며 우라까이의 길을 걷는다. 


요즘 내가 지리멸렬하게 사랑 타령을 한다 할지라도 조금만 참아주십사 부탁을 드립니다. 작업하는 게 온통 사랑 얘기, 남녀간의 팽팽한 심리 얘기라서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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