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섬 Dec 19. 2023

화장실 휴지로 마법 부리기

황섬, 소소한 일상 나눔 

1. 

오가와 이토의 소설, <반짝반짝 공화국>을 다 읽었다. 

책을 많이 읽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읽다보면 그날 그날 나에게 필요한 글귀들이 둥실 떠올라 나한테 들어오는 것을 느낀다. 오늘의 구절은 바로 이 부분이었다.  


- 엄마잖아. 엄마하고 사이좋게 지내야지.

- 맞아. 어떤 사람이든 어머니는 어머니야. 하토코는 지금 행복하잖아? 그건 태어나지 못했으면 느끼지 못하는 거잖아. 낳아준 사람은 어머니야. 만약 하토코가 행복하다면 어머니한테 감사해야지. 




오늘 오전, 오후 내내 고민하던 부분이었다. 과연 나는 내 문제를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내가 쓰는 서사에 나의 이야기를 얼마나 개입시킬 것인가에 대한 문제였다. 나의 이야기를 사람들이 공감해줄까? 만약 반발하고, 욕하면 어떻게 하지? 아냐, 일부 사람들은 들고 일어나겠지만, 그래도 그동안 세상에 말 못하고 가만히 웅크리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 거야. 아냐, 나만 가만히 있으면 돼. 지금까지 큰일 일어난 건 아니잖아. 아냐, 다들 소통하지 못하고 가슴앓이 하고 있는 것이 큰일이 아니고 뭐람. 

그냥 이 주제는 놔두고 다른 주제로 돌아갈까? 아니야. 이건 너의 평생의 숙제야, 정면돌파해!

이혼을 하고, 아이가 다섯 살 때 헤어져서 성인이 되고 나서도 만나지 못하는 엄마의 이야기이다. 이 문제를 어떻게 드라마에서 내놓고 풀지 고민스러웠다. 

피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겁이 났다. 


2. 

밀리의 서재 오디오북을 참 좋아하는데, 그중 나에게 최고는 정재은 성우가 읽은 주자 방크의 <크리스마스의 집>이다. 밀리의 서재 들으시는 분들은 오늘이라도 꼭 들어보시기 바란다. 종이책으로도 좋지만, 오늘 같은 흐린 겨울날 오디오북을 들으면 그 묘한 분위기에 말도 못하게 압도당하실 테다.  

그런데, '7일 남음'이라고 씌어 있는 건 뭐냐. 떠나지 말아줘! 이 오디오북... 나한테 영원히 남아 줘! 




3. 

가끔 화장실에 덩그러니 걸려 있는 휴지를 보면 생각나는 후배가 있다. 한 20년 전, 홍대 입구 연남동 기사 식당 쪽 반 지하방에서 친오빠랑 살던 녀석이었는데, 살림을 얼마나 못했는지 미역국도 멀건 맹물에다가 마른 미역 툭 집어넣어서 끓여먹었더랬다. 참기름으로 볶고 자시고도 없고, 아예 참기름 따위도 없던... 

반지하 방이니 당연히 햇볕도 제대로 들지 않았다. 게다가 건넌방에서는 오빠라는 녀석이 방에서 뭔놈의 담배를 그리도 뻑뻑 피워대는지... 부엌 겸 마루에서도 그방의 담배 냄새가 흠씬 배어나왔다. 

그런데, 화장실의 휴지만은 늘 꽃모양 휴지였다. 한두 번 그러고 말려나 했는데, 가면 내내 고운 향의 꽃휴지가 걸려 있었다. 하루는 내가 그걸 보고, 아이~ 휴지 참 예쁘다~ 그랬더니만, 후배가 나한테 해줬던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 휴지에서 향기가 나고 예쁘면, 지금 별로 안 가난한 것 같이 느껴져. 


이렇게 한 가지 작은 요소를 찾아내서 전체를 환히 밝힐 줄 아는 아이라면, 설령 이것이 터무니없는 정신 승리라 할지라도 분명히 어디서든 잘 살고 있으리라고 본다. 

나도 그래서 사볼까 한다. 크리스마스 휴지. ^^ 




4. 

새벽 다섯 시 독서, 이거 꽤 기분 좋다. 하루가 길어지는 것 같고, 오전에 실로 많은 일을 해내는 것 같은 기분이다. 사실 '나는 매일 4시 반에 일어난다' 어쩌구 하는 사람 얘기도 조금 읽다가 내가 다 피곤하고 졸린 것 같아서 때려쳤는데... 


Insanity: doing the same thing over and over again and expecting different results.

매일 똑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건 미친 짓이다. 


아인슈타인(자꾸 이 냥반 이름을 슈베르트로 기억해서 검색까지 했네... 나 원, 참....)이 하신 말씀이라는데... 

지금하고는 다른 패턴으로,  변화를 도모하면서 지금보다는 조금이라도 나아지고 싶어서 딱 3개월만 해보려고 한다. 잘 될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3개월 금주보다는 쉽지 않을까? 




올해 초 열렸던 명동성당의 임윤찬 리사이틀. 이때도 그랬지만, 지금은 제아무리 컴퓨터 서너 대 놓고 광클해도 티켓 구하기 어려운 거장이 됐다. 이렇게라도 노동요로 틀어놓고 편안히 들으니 얼마나 좋은지! 


https://youtu.be/uot-FzSto20?si=Ufqv1hz9m3VrafjB



매거진의 이전글 삶의 비포장 도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