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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섬 Dec 05. 2023

삶의 비포장 도로

2023년 12월 4일 서울신문 칼럼 <황서미의 시청각 교실>

매년 연말이 되면 조금 떨립니다. 내년도 서울신문에 칼럼을 계속 쓸 수 있을까? 

저야 유명한 작가도 아니어서 정말 신문 지면에 내 글을 올릴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저는 큰 행운이었습니다. 그 행운을 2020년부터 누렸습니다. 4년 차를 맞이했네요. 

지난 주, 서울신문 논설실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올 게 온 거죠.  이제 2023년 12월 칼럼을 마지막으로 저는 신문 칼럼은 떠납니다. 갑자기 궁금해져서 4년 전의 첫 칼럼을 읽었는데, 문체가 확연히 다르네요. 지금의 글보다 훨씬 부글부글하고, 통통 튀고, 난리가 났습니다. 얼른 뚜껑을 덮어야 하는 프라이팬 위의 팝콘처럼요...

나중에 뭔가 하나 대박나면 다른 신문사에서 연락을 주시겠죠. 아님 말고요. 브런치나 sns로 소통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요. 

아, 그리고 이번 칼럼이 마지막 아닙니다. 아직 하나 더 남았어요. 왠지, 벤쿠버 동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고 난 다음, 다시 소치 올림픽을 준비하는 김연아 선수의 마음 같은 느낌이 드네요. 사실 그 전화 받으니까 칼럼 쓰는데, 김이 좀 새더라고요. ^^

자, 그럼 칼럼 읽고 가세요! 



발달장애아 아들 덕분에 주민센터 가끔 복지과에 간다. 이곳에 오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귀가 어두워서 그런지 목소리가 아주 크다. 눅눅한 신세타령도, 그저 소소한 일상도 길게 이어지기도 한다. 그 많은 이야기들을 웃는 얼굴로 다 거두어 듣고, 동시에 업무를 처리하는 직원들이 존경스러웠다.

이번에도 어떤 목청이 큰 할머니가 뒤뚱뒤뚱 걸어들어왔다. 매 걸음, 힘든지 숨소리가 거칠었다. 주민센터 방문 이유는 교통카드 재발급. 국가 유공자라 나라에서 받은 교통카드가 있는데, 그걸 남편이 가지고 나가서 칠칠치 못하게 잃어버렸다고 계속 투덜댔다. 

“남편이 암 수술을 4년 전에 받았어요. 간에 붙은 암이 전립선까지 간 거야. 오줌이 줄줄 흘러. 커다란 기저귀를 차고 하루종일 있는 거야, 진짜. 나도 늙었잖아요. 힘들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어. 장애인이나 다름없어요. 매 누워 있으니까 다리에 뼈만 남아서 잘 걷지를 못하걸랑. 어쩌다 한 번씩 나가려면 택시로 나가는데, 그것도 오줌 때문에 무서워서 잘 안 나간다고. 그런데, 왜 교통카드를 들고 나가서 이 난리를 낸대!”

할머니가 한 마디, 한 마디 꼭꼭 눌러 억울한 듯 쏟아내는 이야기를 들으며 가슴이 턱 막혀왔다. 간암에 걸려 내내 자리보전하고 있는 늙은 할아버지, 그리고 할아버지 옆에서 수발을 드는, 함께 나이 들어가는 할머니…. 이들의 힘겨울 하루하루를 도저히 제대로 상상할 수 없었다.

서민과 취약계층, 사회적 약자를 더욱 ‘두껍게’ 지원하겠다던 정부의 발표가 무색하게 2024년 노인맞춤돌봄서비스 예산 등의 노인복지 예산은 노인 인구 증가율 5.3%를 전혀 반영하지 못했다. 오히려 복지 혜택을 받을 노인의 구성비는 5.8%에서 5.5%로 더 떨어졌다. 노인복지뿐 아니다. 어린이 돌봄사업, 청소년 사회안전망, 장애인 복지시설, 공공의료 사업 관련한 예산도 대폭 삭감되었다는 기사가 떠올라 가슴이 서늘해졌다. 남의 일이 아니다. 우리들의 삶에, 목숨에 직접적으로 관련되는 예산 배분안은 효율성만으로 가늠할 것이 아니고, 장기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결정해야 할 준엄한 사안이다. 

젊은 시절, 베트남 전에 참전했던 할아버지도 당연히 간암에 걸리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어느새 다리가 아파 뒤뚱거리게 된 할머니도 그 힘든 몸으로 긴 하루 할아버지 병시중을 들게 될 거라고 젊은 시절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저 있는 자리에서 주어진 대로 살아냈을 것이다. 
 
 “인생이라는 거 그렇게 공평하지 않아. 평생이 울퉁불퉁 비포장도로인 사람도 있고, 평생 죽어라 달렸는데 그 끝이 낭떠러지인 사람도 있어.“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 남자 주인공의 이 대사를 들으면서 아찔했던 기억이 난다. 평생 내가 죽어라 달리던 그 길의 끝이 결국 아득한 벼랑이라면?

내가 감히 할머니의 삶이 낭떠러지로 가는 길이라고 말할 수 없다. 다만 아무런 힘이 없는 나는, 할머니의 한탄을 들은 이상 마음으로 간절히 소망하고 목소리를 내는 일밖에 할 수 없다. 온전한 돌봄을 받지 못하는 상태에서 나이 들었거나 아주 어린 사람들, 장애인들, 돈이 없는데 몸까지 아픈 사람들이 절망하지 않고 살 수 있는 환경이 되기만을…. 삶의 비포장도로를 힘겹게 걸어왔는데 그 끝이 시커먼 낭떠러지인 것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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